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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책과 미래] 삼성SDS의 독서교육


‘생각의 힘, 독서!’ 

어느 도서관 프로그램 제목으로 보이겠지만, 올해 삼성 SDS에서 실시한 신입사원 입문교육 특강 제목이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깜짝 놀랐다. 읽기와 관련한 일을 평생 해왔지만, 대기업 신입사원 교육에 독서 관련 강의가 포함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한 차례도 없었던 것이다.

일회성 특강만 듣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통제의 승부사 사마의』(위즈덤하우스), 『딥 러닝 첫걸음』(한빛미디어) 등 최고경영자가 직접 고른 도서 여덟 권을 읽고, 두 차례에 걸쳐 네다섯 명씩 조를 이루어 독서 토론을 하게 했다. 좋은 사원이 되려면 ‘생각하는 힘’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 힘을 기르는 데 독서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삼성 SDS 같은 정보기술기업이 ‘생각하는 힘’을 필요로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인공지능 시대의 인재는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지금껏 자동화되지 않았던 것을 자동화하는 솔루션을 발명하는 사람이고, 하나는 자동화 이후에 인간이 추구할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는 사람이다. 둘 모두 상식적이고 습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힘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인간이 지배적 사고방식을 답습하는 것을 상식이라 하고 익숙한 해결방법을 반복하는 것을 습관이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가 아니라 ‘상식의 운반자’ 또는 ‘습관의 노예’에 가깝다. 진짜 생각하는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누구나 자신이 생각을 할 줄 안다고 여기지만, 인간은 사실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의 수행기관인 뇌는 에너지를 아주 많이 사용한다. 따라서 극심한 환경 변화 같은 강한 외부 충격이 없는 한, 삶의 어느 시기에 형성된 뇌의 ‘경로 의존성’을 잘 활용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알파고 등장 이전에는 이 일만 잘해도 인재라 불렸지만, 인공지능 시대의 실감은 아무래도 상식이나 습관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점차 자동화되리라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상식이나 습관 바깥에서 뇌를 움직이는 일이다. 물론 ‘자동화된’ 경로를 벗어난 생각들은 주로 몽상이나 공상에 머물거나 해결책 없는 발상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출근길에 우연히 샛길로 들어섰다 지름길을 알아채는 것처럼, 때로는 기존 경로를 이용하지 않으면서도 쓸모 있는 경로를 발견하기도 하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창조라고 부른다. 다니던 길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말한다. 

“창조자는 스스로 특수한 미로를 만드는 사람이다. 동시에 비상구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벽을 더듬고, 거기에 머리를 부딪쳐 가면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창조자가 될 수 있다.” 

창조성 있는 사람은 일부러 생각을 미로에 빠뜨린 후, 거기에서 새로운 출구를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다. 독서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용해 자기 생각을 다시 쓰는 방법이다. 따라서 꾸준히 책을 읽는 것은 창조를 자주 연습하는 것과 같다. 삼성 SDS가 직원들의 창조성을 촉진하는 옳은 길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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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칼럼, 지난주에는 삼성의 독서교육을 다루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