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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읽기에 대하여

뇌과학으로 밝혀낸 인간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뇌과학으로 밝혀낸 인간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지난 4월 5일, 차기정부 출판산업 진흥을 위한 국회 토론회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의 사회를 맡았다. 이 토론회에서 제기된 출판계의 여러 제안들은 정부나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시행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토론회에서 서울대 장대익 교수의 발표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독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주로 인문사회적 관점에서 접근해 왔다. 그런데 장 교수의 발표는 진화론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독서의 필요성을 과학적으로 잘 해명한 후, 독서를 하는 것이 인류에게 어떤 진화적 필연성을 가져다주었는지를 짧은 시간 동안 잘 설명해 주었다. 발표를 들으면서 읽기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아래에 장대익 교수의 발표문 「독서력과 시민의 품격」을 내 생각을 조금 덧붙여서 요약해 둔다.


호모사피엔스는 20만 년 전에 나타났는데,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것은 고작 8000년 전이고, 수메르 인들이 점토에 새긴 문자로 정보를 주고받은 것은 6000년 전이다. 인류의 뇌는 독서에 적합하도록 진화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독서는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고,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낭비 활동이다. 하지만 문명이 들어선 이래, 인류 문명에서 독서는 계속해서 그 중요성이 커져 왔다. 진화론에 따르면, 독서가 인간에게 비용을 넘어선 이득을 가져다주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문명은 인간이 독서에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적인 차이는 0.4%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두 종이 이룩한 사회의 모습은 너무나 차이가 크다. 이 차이가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인간이 침팬지보다 생물학적으로 월등하게 더 뛰어나서가 아니다. 인간 사회와 침팬지 사회의 차이를 가져온 것은 ‘사회적 학습 능력’ 때문이다. 침팬지와 달리 인간은 ‘기록’을 통해 자신이 획득한 경험을 세대를 뛰어넘어 전달할 수 있었고, 이러한 집단 작업이 가능한 것이야말로 문명의 탄생, 축적, 번영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다. 문명을 통해 인간은 ‘사회적 학습자’로 진화했고, 이러한 진화를 촉진한 것이 문자 텍스트(넓은 의미의 ‘책’)의 존재다. 정보 물리학의 관점에서, 책은 정보 전달의 성공률(복제 충실도)을 획기적으로 높였으며, 독서는 인간의 사회적 학습을 촉진하고, 인간을 사회적 학습자로 진화시킨 ‘문명의 엔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 것은 문명의 형성에 참여하는 일이며, 진화의 도정에 함께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인간이 책을 읽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다.

인간이 책을 읽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인간 뇌의 학습 특성’ 때문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굳이 책을 읽지 않고도 온라인 등 디지털 경로를 통해서 언제 어디에서든지 손쉽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그런데 여전히 불편하게 왜 책을 읽어야 할까? 사람들은 흔히 뇌의 시각 피질을 주로 활용하는 빠른 정보 습득(fast learning)을 최선의 공부법인 것처럼 간주한다. 하지만 방대한 규모의 정보가 축적되고 있고, 그러한 정보에 대한 접근이 거의 항상 가능한 오늘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주어진 문제를 비판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다. 

주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존재하는 것을 다르게 생각하고, 낡은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창의성이라면, 창의성은 ‘느린 생각(slow thinking)’을 통해 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인간의 뇌는 느린 생각을 즉시 처리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인간의 뇌에서 ‘느린 생각’을 담당하는 것은 전전두 피질인데, 전전두 피질은 상당한 에너지 소모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뇌가 ‘느린 생각’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별도의 훈련이 필요한데, 이는 시청 등 디지털 정보 습득 과정에서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뇌 전체를 활용하는 독서야말로 느린 생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만들어 내는 행위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을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기존에 연결하지 않았던 지식을 연결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은 이 때문이다. ‘창의적 연결 능력’을 갖춘 인재들은 독서를 통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육성할 수 있다.

인간이 책을 읽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독서가 뇌의 공감 능력을 끌어올린다는 데 있다. 타자에 대한 공감은 시민으로서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데 필수적 능력이다. 또한 타자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면, 인간으로서 학습 자체가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 책을, 특히 문학 작품을 많이 읽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정서에 반응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2012년에 참가자들에게 책을 읽힌 후 실험을 마칠 무렵 연구자가 실수인 척 책상에 있던 볼펜 통을 떨어뜨리고 누가 볼펜 줍는 일을 잘 돕는지 알아내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글을 읽는 동안 등장인물에게 정서적으로 더 많이 공감한 사람일수록 도움을 주려고 애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타자의 처지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의 품격이 올라간다. 일찍이 그리스인들은 ‘환대’가 인격의 고매함을 보여 주고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알고, 이를 사회 운영의 기본 원리로 삼았다. 

뇌는 놀라운 기관이다. 인간은 누구나 비슷한 뇌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뇌는 개인의 경험과 학습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 뇌의 ‘가소성’이라고 한다. 사람의 뇌는 해부학적으로도 변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뇌를 쓰느냐에 따라,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뇌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말이다. 책을 읽는 것은 뇌의 잠재능력을 활성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상의 사실을 전제로 한 후, 장대익 교수는 독서력을 다음과 같은 세 단계로 정의함으로써 각자 자신의 독서력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1) 독서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능력(지식 습득력), (2-1) 독서를 통해 저자 및 등장인물의 관점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관점 전환력), (2-2) 독서를 통해 저자 및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능력(공감력), (3) 독서를 통해 자신만의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통찰력)이다. 그리고 한 사회의 전체 독서력의 수준이 곧 ‘시민의 품격’을 나타낸다고 하면서, 우리 사회의 인지적, 정서적 미성숙 상태에 대해 성찰해 보자고 이야기했다.


장대익 교수의 좋은 발표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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