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어떻게 읽는가
2016 독서콘퍼런스, 김은하 책과교육연구소 대표 발표 요약
강릉에서 열린 ‘2016 독서 콘퍼런스’에서 발표된 김은하 책과교육연구소 대표의 발표와 토론 발제를 요약하고, 현장에서 들었던 제 느낌을 살짝 덧붙여둡니다. 김은하 대표의 발표는 「해외 주요국의 독서실태 및 독서문화진흥정책 사례 연구」(2015)와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한 실천 중심 독서교육 활성화 방안」(2016)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 두 논문은 정책적 시사점이 상당히 다를 수 있는 연구인데, “어떻게 ‘비독자’를 ‘독자’로, ‘간헐적 독자’를 ‘습관적 독자’로 만들 것인가?”라는 문제로 집약되어 연결되면서, 한국의 독서정책 또는 독서운동에서 중요한 방향성이 보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용어 정리부터 할까요. 책은 ‘종이책과 전자책을 포괄’하는 명칭입니다. 전자 매체 읽기는 ‘책의 형태로 편집되어 일정한 단위를 갖추지 않은 읽을거리를 전자매체를 이용해 읽는 행위입니다. 그중에서도 주로 웹툰과 웹소설 등을 읽는 것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독서율은 ‘일 년에 한 번 이상 종이책 또는 전자책을 읽은 인구의 비율’입니다. 습관적 독자는 ‘매일 책을 읽거나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 번 책을 읽는 사람’입니다. 간헐적 독자는 ‘한 달에 몇 번, 몇 달에 한 번 읽는 사람’입니다. 비독자는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선, 「해외 주요국의 독서문화진흥 현황과 사례」에 나오는 자료를 요약해서 소개합니다. 이 발표는 「해외 주요국의 독서실태 및 독서문화진흥정책 사례 연구」(2015)와 이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독서실태조사연구」(2016)에서는 좀처럼 파악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주어 출판 편집자로서 생각할 거리가 정말 많았습니다.
― 한국인의 독서율은 74.4%로, OECD 평균인 76.5%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 숫자는 ‘평균의 함정’을 보여 준다. 한국은 ‘독서 양극화’가 가장 심각한 나라로 한국의 독서율은 성별, 계층별, 나이별로 엄청난 편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독서율이 높은 나라는 습관적 독자도 많다. 하지만 한국은 습관적 독자(25.1%)는 OECD 국가(평균 40.1%) 중 가장 적고, 간헐적 독자(49.3%)가 OECD 국가(평균 36.4%) 중 가장 많다.
― 한국은 젊은 세대(16~24세, 87.4%)의 독서율은 OECD 국가(16~24세, 평균 78.1%) 중 가장 높으나 중노년(55~65세, 51%)의 독서율은 OECD 국가(55~65세, 평균 73.9%) 중 가장 낮다. 독서율의 연령별 차이가 36.4%p에 달해서 연령에 따른 독서율의 격차가 가장 극심하다. OECD 국가는 평균 –4.2%p이고, 영국은 중노년이 더 책을 많이 읽어서 8.2%p 높아진다.
― 독서 능력과 언어 능력은 어느 나라에서나 정비례하기 때문에, 젊은 세대와 중노년 세대의 언어 능력 차이(48.8점)가 OECD 국가 중 가장 크다. 여성 독자는 나이가 들수록 독서율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언어 능력도 같이 떨어진다. 이는 중노년 세대가 도서관이나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점을 고려해야 하나, 유의미한 격차를 보이므로 별도 연구가 필요하다.
― 한국은 학업 및 업무 관련 독서율(49.49%)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고, 습관적 독자 역시 이런 독서를 주로 한다. 따라서 필요한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간헐적 독자 또는 비독자로 돌아설 확률이 높다.
― 한국은 중졸 이하 저학력자의 독서율(51%)이 OECD 국가에서 가장 낮은 편이며, 초대졸 이상의 고학력자의 독서율(89%)와의 격차도 38%p로 매우 크다.
이상을 요약하면, 한국의 비독자 또는 간헐적 독자는 주로 다음과 같다. (1) 45세 이상의 중노년 세대, (2) 청장년 남성, (3) 중졸 이하 저학력자. 그리고 잠재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사람도 포괄할 수 있다. (1) 학습 또는 과업 관련 독서에 치중하는 사람들, (2) 45세 이상의 여성.
우리나라와 해외 주요국 연령대별 독서율 비교(출처 : 내일신문)
따라서 서점에 자주 오는 사람들 또는 도서관의 주요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욕구를 주로 반영하는 독서 진흥정책은 이들을 계속해서 독서 소외자로 만듭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오지 않은 사람들, 책을 어쩌다 읽거나 전혀 읽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독서 정책은 정교한 연구를 거쳐서 표적 독자에 맞추어 각각 다르게 마련해야 합니다. 강연을 들으면서 제가 정리했던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앞으로 독서 정책은 ‘읽기 습관의 창출’ 및 ‘비독자의 독자화’에 집중해야 합니다. 도서관에 책이 산더미처럼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실제로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니까요. 비독자를 찾아내서 독자로 만들고, 잠재적 비독자가 실질적 비독자로 떨어지지 않도록 사회적 계기를 마련해 주는 구체적 일들을 생각하고, 출판이 이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국내 비독자에 대한 실증적 연구입니다. 독자의 맨얼굴을 알지 못하고 왈가왈부해 봐야 헛된 몽상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김은하 대표는 말합니다.
우선적으로 지역마다 독자의 읽기 습관, 경험, 태도를 조사하고, 이들 가운데 비독자와 간헐적 독자를 타깃 독자로 설정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를 양적 ․ 질적 연구를 통해 조사합니다. 그다음 이들을 가장 잘 이해하는 직능단체, 시민단체, 행정 인력과 네트워킹을 형성하여 독서 캠페인의 전략을 짜고 시행합니다.
지역별로 독자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진행하고, 이 연구에 바탕을 두고 정부, 시민 사회, 기업을 네트워크로 묶어 집중적으로 투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판 역시 이 문제를 고민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발표인 「타깃 독자에 맞는 독자개발」은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한 실천 중심 독서교육 활성화 방안」(2016)과 이어진 것입니다. 이 연구는 경기도교육청의 의뢰로 학생 300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것으로, 이런 대규모 실증적 연구는 아주 드물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의 목표 중 하나는 “청소년 독자가 원하는 독서지도 방법”입니다. 오전 발표에서 세계 최고의 독서율을 자랑한다는 한국 청소년들의 독서 현실을 실증적으로 논한 글이기에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특히, “청소년 대상의 독서 지도와 대회가 비독자와 간헐적 독자를 더욱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는 점이 무척 중요합니다. 아래에 요약해 둡니다.
― 초등학생은 습관적 독자의 비율이 높으나,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간헐적 독자와 비독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고등학교의 경우, 간헐적 독자와 비독자가 3분의 2를 차지한다.
― 초등학생은 6학년을 기점으로 전자매체 읽기 빈도가 급격하게 늘어난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종이책보다 전자매체 읽기 빈도가 훨씬 더 높다. 종이책을 자주 읽는 학생들은 전자매체 읽기도 자주 하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 평균적으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자주 책과 전자매체를 읽으며, 도서관을 자주 방문한다.
― 어릴 때 가정에서 자주 책을 읽어 준 아이들이 종이책을 자주 읽는 경향이 있으나, 전자매체 읽기와는 상관관계가 없다.
― 중고등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독서지도 방법은 ‘자기 수준과 관심에 맞는 책을 고르는 방법’이고, 가장 선호하지 않는 방식은 ‘독서기록 쓰기’와 ‘독서 관련 대회’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진행된다. 즉, 현행 독서교육은 오히려 비독자를 만들어낼 가망성이 높다.
― 초등학생의 경우, 습관적 독자는 책의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간헐적 독자는 만화책의 선호도가 월등히 높다. 중고생의 경우, 습관적 독자는 문학(특히 장르소설)을 가장 선호하지만 간헐적 독자는 만화를 가장 선호한다.
― 초등학생의 경우, 습관적 독자는 ‘즐거움’이나 ‘지적, 도덕적, 정서적 성장’ 등 내적 동기가 강하지만, 간헐적 독자는 ‘읽으라고 해서’나 ‘원하는 보상을 위해’ 등 외적 동기가 강하다. 중고등학생의 경우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 초등학생의 경우, 습관적 독자는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한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고, 간헐적 독자 또는 비독자는 ‘독서가 지겹고 싫었기 때문에’를 가장 큰 장애로 꼽는다. 중고생의 경우도 비슷하다.
― 가정의 책 읽어 주기 경험이 적고, 가정 내에서 책과 관련된 상호작용(책 추천, 도서관과 서점 방문, 읽기 모델)이 빈번하지 않다.
이상의 연구 결과를 읽어보면, 청소년 독서의 진흥에는 초등학교 6학년 무렵에 찾아오는 ‘독서 절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대단히 어려운 과제로 보입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습관적 독자’가 ‘간헐적 독자’ 또는 ‘비독자’로, ‘책 독자’가 ‘전자매체 독자’로 바뀝니다. 그리고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문제가 평생 극복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런 극심한 변이를 보이는 것은 교과서 학습 중심의 현행 입시제도 때문일 겁니다. 토론회에서 김 대표가 독서 활성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교과서 폐지’를 내세운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자신이 원하는 책을 골라 수업을 진행한다면 적어도 청소년 시기에는 비독자가 전혀 있을 수 없고, 읽기 습관이 붙은 아이들은 평생 독자로 남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머나먼 현실.^^;;
학교 현장에서 독자를 개발하기 위하여 우선 실천할 것은 습관적 독자에게는 읽을 시간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간헐적 독자 또는 비독자에게는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 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해 보입니다. 특히, 독서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일수록 자기 눈높이에 맞는 책을 스스로 골라서 읽고 싶어 하고 독후감이나 독서 관련 대회를 아주 싫어한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방법으로 독서를 진흥할 수는 없기에 현재의 대회 중심으로 진행되는 학교 독서교육 프로그램을 전반적으로 손보아야 필요성이 높습니다. 아래는 해외 성공 사례를 염두에 두고 김은하 대표가 제안한 프로그램들입니다.
― 웹툰-종이책, 장르소설-고전을 연결하는 도서 큐레이팅 (예, 웹툰 “연애혁명”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런 책들을 읽어봐)
― 청소년 친화적인 도서관 공간의 구성3) (주제별 서가, 만화와 장르 소설 서가, 게임과 동아리 공간)
― 웹툰 작가의 도서관 안내문, 독서 캠페인 디자인 참여
― 비경쟁적인 독서동아리 지원, 경쟁적 대회의 폐지
― 학년별 추천도서의 수준별 다양화
― 래퍼나 아이돌, 스포츠스타 등 청소년이 동일시하고자 하는 이들을 담은 독서 포스터나 영상 제작
― 청소년이 되기 이전,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가정에서의 책 읽어주기 교육
·― 학교의 정기적인 도서관과 서점 방문
한국인이 어떻게 읽는가를 알지 못하고, 출판을 잘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여기가 출발점일 것입니다. 모든 편집자나 마케터가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해서 여기에 옮겨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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