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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책 표지가 거절되는 수많은 이유에 대하여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에릭 카테가 표지 디자인 작업 과정에 대해 짤막한 글을 썼습니다. 표지 디자인이 거절되는 이유를 나열하고,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숙고한 글입니다. 참고하세요.




책 표지가 거절되는 수많은 이유에 대하여


에릭 카테(Erik Carte)



나는 프리랜서 표지 디자이너다. 여러 해 동안 나는 소수의 출판사를 위해 책 몇 권을 디자인해서 수입을 보충해 왔다. 잦은 야근이나 불법 소프트웨어, 우울한 수입은 일단 젖혀두고, 아마도 독립한 북 디자이너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디자인한 표지가 거절되는 수많은 이유들일 것이다. 여기에 내 표지 디자인이 거절당한 이유를 적어둔 짧은 목록이 있다. 


· 너무 상업적이다

· 충분히 상업적이지 않다

· 남자들한테 팔리지 않을 것 같다

· 여자들한테 팔리지 않을 것 같다

· 너무 디지털 느낌이 난다

· 너무 모방적이다

· 정말로 너무 아니다

· 충분히 눈에 띄지 않는다

· 너무 눈에 띈다

· 너무 전위적이다

· 별로 훌륭하지 않다

· 너무 추악하다

· 너무 예쁘다

· 너무 단순하다

· 너무 복잡하다

· 요소가 너무 많다


(중략) 


책의 표지를 디자인하는 과정은 책을 읽고, 가장 마음에 드는 서체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 책의 앞면을 장식하는 일보다 훨씬 많은 과정을 포함한다. 좋은 표지는 책의 진정한 정신을 대변하고, 책의 고유한 특성을 표현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니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서 많은 표지들이 다른 많은 표지들과 비슷한 시각적 클리셰를 제공하는 일로 전락해 버리곤 한다. 온라인 서점에 가보라. [아무리 훌륭하게 디자인되었다 할지라도] 책은 흔히 내용을 소개하는 짤막한 설명문과 함께 흔해 빠진 사진 한 장으로 바뀌어 쇼핑 카트에 담기곤 한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의 표지 디자인은 독자들이 클릭하려는 다른 책들보다 훨씬 훌륭해야 한다.

하나의 책 표지가 승인을 얻으려면, 당신이 일하는 디자인 부서 또는 회사의 아트 디렉터로부터 사인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마케팅 부서, 저자, 편집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때때로 저자의 배우자, 우유 배달부, 옆집 이웃의 말을 들어야 할 때도 있다. 따라서 자신이 생각하는 책 표지가 서점에 놓였을 때 이미지를 고려하는 일은 디자이너에게 아주 민감한 정치적 게임이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어떤 디자인이 패배자로 낙인찍히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편집자는 책이 팔리기를 원하고, 디자이너는 책이 훌륭하게 보이기를 원하며, 저자는 스스로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표지와 그 책의 표지가 딱 들어맞기를 바란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이 세 가지는 서로 들어맞는 경우가 없다. 디자이너는 “무엇이 훌륭하게 보이는지”를 정의하기 어렵고, 편집자는 “무엇이 팔릴 것인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며, 작가들은 책과 너무 밀착해 있는 까닭에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 힘들어한다. 미학의 언어와 언어의 미학은 서로서로 신뢰를 필요로 한다. 편집자가 팔리는 책이라는 말로 지칭하려는 바가 무엇인지를 디자이너가 좀 더 숙고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수준까지 서체를 밀어붙임으로써 비즈니스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궁극적으로 책이란 저자의 것이다. 그리고 저자들은 디자이너보다 그 책을 더욱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실제로 가장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저자다. 설령 그들이 좋은 디자인의 기본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http://www.casualoptimist.com/blog/2016/04/28/the-many-ways-a-book-cover-is-rej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