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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해리 포터』…독자는 소설에 매혹됐다(중앙일보)

《중앙일보》에 민음사,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등 주요 문학 출판사를 중심으로 열다섯 군데 출판사의 역대 베스트셀러에 대한 분석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리스트를 넘겨받아서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와 함께 분석해 보았습니다. 기사에도 나와 있지만, 아무리 문학 작품이 기본 부수를 팔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해도, 역시 슈퍼 베스트셀러는 문학이었습니다. 그다음이 이른바 문학의 한 부류로 볼 수 있는 에세이였죠. 리스트에는 빠져 있지만, 그다음은 아마도 학습서 또는 실용서일 겁니다.

슈퍼 베스트셀러들이 문학으로 쏠려 있는 것은,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될 만한 초기의 어떤 문턱을 넘어서고 나면, 누구나 재미와 감동과 정보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종합 양식이기 때문일 겁니다. 특정 욕구가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독자 전체가 만족할 수 있는 장르인 셈이죠. 문학은 독자들이 인문학 등 다른 분야의 독서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된다는 점에서도 문학의 위력을 확인한 것은 아주 기쁜 일입니다. 

사실 저는 베스트셀러 목록을 문학과 비문학으로 나누어 발표하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문학을 특별히 더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문학이 다른 분야의 책들로 나아가는 일종의 독서의 지름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문학은 독자들의 감성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을 이해하려는 갈망을 충동합니다. 문학 독서의 활성화는 읽기의 문턱을 낮추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전체 독서의 활성화에 가장 강력한 촉매 작용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위기에 빠진 한국 출판을 살리는 데 별도의 비용을 들이지 않는 한 방법으로 외국 베스트셀러 발표처럼 문학 베스트셀러를 앞세우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한 방법이 될 겁니다.

아래에 기사를 옮겨 둡니다.




『삼국지』『해리 포터』…독자는 소설에 매혹됐다


출판 불황 시대라고 하지만 팔리는 책은 팔린다. 멀게는 1960년 4·19 혁명의 해방공간에서 탄생한 최인훈의 중편소설 『광장』부터 가깝게는 우리 감수성의 턱밑까지 파고든 2012년 일본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까지, 베스트셀러는 늘 있어 왔다.


15개 출판사가 뽑은 ‘최고의 책’

“소설이 12권 … 깜짝 놀랄 만큼 많아”


문학 출판사들을 중심으로 매출 규모 등을 고려해 모두 15개 출판사에 자신들의 역대 최대 베스트셀러가 어떤 책인지 물었다. 두 권 이상 시리즈인 경우 가장 판매량이 많은 1권을 기준으로 했다. 15권 리스트를 백원근(49)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와 장은수(48)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두 출판 전문가와 함께 들여다 봤다. 좋았던 옛날을 추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공 배경을 따져보기 위해서다.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탄생하나. 성공 비결 탐구다.

리스트를 받아든 장 대표는 “깜짝 놀랄 정도로 소설이 많다”고 했다. 문학 출판사가 많이 들어 있어 그렇기도 하겠지만 김영사의 김우중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등 세 권만 빼고 나머지가 전부 소설이었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소설가 이문열씨가 평역(評譯)한 10권짜리 중국 소설 『삼국지』의 1권. 88년에 출간돼 지금까지 250만 부가 팔렸다고 민음사는 밝혔다. 창비의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 문학수첩의 『해리 포터』 1권(전 7권)이 나란히 220만 부 팔려 뒤를 이었다.

현대문학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살아 있는 베스트셀러다. 2012년 출간된 후 판매 순위 집계 상위권에 줄곧 머물며 지금까지 50만 부 넘게 팔렸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용의자 X의 헌신』 등 국내에 여러 권 소개된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중 가장 많이 팔렸다.

백 대표는 “명불허전, 일본소설의 위력과 한국소설의 오락적 궁핍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 같은 소설의 강세에 대해 장 대표는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독자를 매혹, 감동케 하는 것은 역시 소설임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15권의 판매 부수를 합치면 2021만 부다. 한국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말하기 어려운 수치. 두 사람은 “성공 비결 중 하나는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백 대표는 그 사례로 1995년 1권이 출간된 『로마인 이야기』를 들었다. 세계화 화두를 내세웠던 김영삼 정부 시절 출간돼 그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바깥 세상에 대한 관심이 교양 욕구로 이어지며 로마사에 대한 관심으로 표출됐다는 얘기다. 소수의 독자들에게 먼저 읽혀 입소문 확산을 노린 출판사 의 마케팅, 정부 시책에 부응한 ‘공무원 부대’의 구입도 영향을 미쳤다.

장 대표는 “대중이 바라는 바를 한 발 앞서 포착해 건드린 결과 판매가 폭발한 책이 여럿”이라고 했다. 91년 출간된 『소설 토정비결』, 96년에 나온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이 그런 책들이다. 변혁의 시대였던 80년대가 가고 90년대 들어 사람들이 재미와 교양을 바라는 시기에 맞춤하게 출간됐다는 얘기다.

알 수 없는 책의 운명, 운도 영향을 미친다. 문학동네의 밀리언셀러 『연금술사』는 93년 고려원에서 『꿈을 찾아 떠나는 양치기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던 책이다. 하지만 문학동네가 판권을 사 2001년 ‘연금술사’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지 3년 만인 2004년 판매가 폭발했다. 주인공 산티아고의 자아 찾기라는 핵심 메시지가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등 지리멸렬한 현실세계에 지친 대중들에게 위로가 됐다는 분석이다.

2001년 출간된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기획·번역 단계까지만 해도 소설을 바탕으로 한 명품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국내 공연 계획이 없었으나 출간 직전 성사되며 책 판매에 불이 붙었다. 소설을 기획한 북레시피의 김요안 대표는 “성공 비결은 운이죠, 운”이라고 말했다.



15개 출판사 역대 최대 베스트셀러

-문학과지성사, 『광장』/75만 부(1976년 이후 집계)/1961년

-민음사, 이문열 평역(評譯)『삼국지』 1권(전 10권)/250만 부/1988년

-김영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150만 부/1989년

-해냄, 『소설 토정비결』 1권(전 3권)/120만 부/1991년

-시공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32만 부/1993년

-한길사, 『로마인 이야기』 1권(전 15권)/80만 부/1995년

-웅진,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190만 부/1996년

-문학수첩, 『해리 포터』 1권(전 7권)/220만 부/1999년

-문학동네, 『연금술사』/150만 부/2001년

-문학세계, 『오페라의 유령』/120만 부/2001년

-청미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50만 부/2002년

-은행나무, 『공중그네』/82만 부/2005년

-열린책들, 『나무』/130만 부/2008년

-창비, 『엄마를 부탁해』/220만 부/2008년

-현대문학,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52만 부/2012년


※출판사, 도서명/판매 부수/출간 연도, 판권 옮긴 경우 현재 출판사 기준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