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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밑줄과 반응 2012년 5월 31일(목)



고대 중국에서 민(民)이란 글자는 한쪽 눈을 찔러서 상해를 입힌 노예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하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지배층 인(人)과 피지배층 민(民)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인’이 사람이었다면 ‘민’은 사람도 아니었다. ― 『저항자들의 책』 



누군가의 서평을 읽다가 인용문을 밑줄쳐 두었다. 여기까지 적어 두고 다른 일을 하다가 잊어버리는 바람에 출처를 상실했다. 아마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서평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다. 보통선거와 의무교육이 실시된 이후, 그래서 모두가 한 표만큼의 정체성을 갖게 된 이후, 우리는 이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곤 한다. 역사는 민(民)이 인(人)으로 바뀌는 기나긴 진보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 과정은 어쩌면 늘 피로 젖어 있었다. 저항은 늘 무엇에 대한 저항이지만, 그 대상에 대한 무효 선언만이어서는 안 된다. 저항이란 현 상태의 부정 형식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미래 상태에 대한 긍정 형식으로 표현될 때 참된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 영국의 왼쪽 성향 출판사인 버소(Verso)의 40주년 기념 서적으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저항자들의 기록을 모은 정말 멋진 책이다. 


저항자들의 책
1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