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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만드는 일

편집자가 필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열하일기 필사본


이제 몸으로 하는 공부가 시대의 한 대세로 올라선 느낌이다. 단지 정보를 눈으로 읽어 받아들이고, 머리를 굴리며 키보드를 두드려 쏟아내는 일만으로 사람들은 헛헛할 뿐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라고 썼다. 알에 둘러싸인 채 태어나서 껍데기를 깨고 자신을 드러내려는 간절하고 안타까운 투쟁이야말로 인생에 진정한 활기를 불어넣는 행위다. 

이 본능적 투쟁은 인간에게서 사라질 수 없다. 설령 잠시 약화되더라도 반드시 되돌아온다. 인간은 이러한 투쟁 없이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연결시대에 정보 폭풍 속에서 한없이 시들어진 인간 본성을 편집은 어떻게 책으로 가져와 다시 일으킬 수 있을까?

작년에 『비밀의 정원』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나는 이 책의 화제성을 ‘힐링(Healing)’이 아니라 ‘액티비티(Activity, 활동성)’로 해석하자고 말한 바 있다. 독자들은 단지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책을 읽고 무언가를 덧하고 싶은 것이다. 블로그에 글을 올릴 수도 있고, 독서 모임에서 떠들 수도 있으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구절 놀이를 할 수도 있고, 색칠을 해서 자랑할 수도 있다. 윤지영 선생이 말하는 ‘연결 가치’에 대해 편집은 이제 본격적으로 사유하고 책으로 표현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고미숙 선생이 ‘낭송’을 파고든 것은 훌륭한 착목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소리 내 외는 것은 책을 자기화하는 가장 강력한 행동 중 하나다. 장기적으로 조금씩 힘이 붙으면서 영역을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책과 관련한 또 다른 강력한 행동이 있다. ‘쓰기’, 즉 ‘필사(筆寫)’다. 책 내용을 한 줄 한 줄 베껴 적는 것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좋아하는 문장을 공책에 눌러 적는 행위를 통해서 문장을 숙련해서 작가가 되었다. 비록 신경숙이 표절을 하면서 그 위험성이 함께 드러나 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필사야말로 책의 내용을 내 영혼 깊숙이 새기고, 내 피부에 붙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행위로 믿는다. 요즈음에 자주 명문을 필사한 책이 눈에 띄는데, 편집자로서 좋은 착목이다. 누군가 여기에서 행위를 넘어서는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시장이 크게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경제》의 ‘필사’ 관련 기사에 인터뷰를 하면서 필사에 대한 생각을 짧게 밝혀 두었다. 아래에 옮겨 적는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필사를 “생각의 격조와 문장의 격조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훈련법”이라고 정의했다. 좋은 글을 따라 쓰면 글에 적힌 내용을 숙지하며 교양을 쌓을 수 있고, 그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을 익혀 글솜씨가 좋아진다는 설명이다. 장 대표는 시뿐만 아니라 고전 산문도 필사 교재로 추천했다. 장 대표는 “필사는 좋은 문장을 자기 몸에 새기는 행위”라며 “다만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면 그 문장을 이겨내 더 좋은 문장을 만드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사 전문은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062994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