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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논어 공부

[논어의 명문장] 부지육미(不知肉味, 고기 맛을 잊었다)


선생님께서 제나라에 있었을 때, 소(韶)를 듣고는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으셨다. [그러고는] 말씀하셨다. “음악을 하는 것이 여기에까지 이르렀을 줄은 생각지 못했구나.”

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曰:“不圖爲樂之至於斯也.”


부지육미(不知肉味), 즉 “고기 맛을 알지 못했다”는 구절은 「술이(述而)」 편에 나온다. 『논어』에는 가끔 대단히 감각적 표현이 나오는데, 나는 이 구절을 첫손에 꼽고 싶다. 공자 당시에 고기는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따라서 고기란 가장 강렬한 세속적 쾌락을 상징한다. 이에 비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색(色)”밖에 없을 것이다. 좋은 예술은, 즉 문명과 문화는 덧없이 사라질 육체의 말초적 즐거움을 넘어서 삶의 진정한 가치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서른다섯 살, 조국인 노나라에서 쫓겨나 제나라로 건너와 있던 공자의 삶은 불우했을 것이다. 예와 관련해 다소 이름이 나기는 했지만, 제나라 경공은 그를 등용하려 하지 않았고 덧없이 세월만 지나갔다. 그러나 언제, 어디에서나 배울 것은 있는 법. 이때 공자를 흠뻑 적신 것은 순임금이 지었다는 음악인 ‘소(韶)’였다. 소 음악을 듣고 석 달 동안이나 고기 맛을 잊어버리고 살면서 공자는 자신이 세운 길,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克己復禮]로써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마음을 더욱 확신했을 것이다. 먼 옛날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문명의 힘을 문신처럼 자신 안에 새겼을 것이다. 고기 맛을 잊어버린 이 긴 시간은 태평성대를 이어간 요순의 질서, 즉 선양으로 상징되는 문명 시스템에 대한 충일한 수용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공자의 성인다움은 어쩌면 학문에 있다기보다는, 학문이나 예술로부터 주어진 충격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는 지극한 정성[誠]에 있는 것이 아닐까. 


在齊 : 공자는 서른다섯 살 무렵 노나라의 난을 피해서 제나라로 피신했다. 이때 제나라의 중신인 고소자(高昭子)의 집에서 머물면서 등용을 꿈꾸고 경공(景公)에게 유세했다. 그러나,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안영(晏嬰)의 반대로 인해 등용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위협을 받고 황급히 제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공자가 소(韶) 음악을 들은 것은 아마도 이 무렵일 것이다.

韶 : 소(韶)는 순임금이 지은 음악으로, 그 내용은 요임금의 선양과 순임금의 즉위 과정을 담고 있다. 공자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었는데, 「팔일(八佾)」 편에서 소 음악을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선하구나.”라고 찬양한 바 있다. 선양을 통해서 정권이 평화적으로 덕 있는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역사적 의의를 높이 산 것이다.

三月不知肉味 : “삼월”은 말 그대로 석 달이라는 뜻이 아니라 세월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한 계절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으로 ‘오랜 기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기』 「공자세가」에는 앞에 “학지(學之)” 두 글자가 첨가되어 있다. 이 말에 따르자면, “소 음악을 배우느라 석 달 동안”이라고 풀이해야 한다. 어쩌면 리링의 주장처럼 이 두 글자는 쓸모없이 덧붙은 것일 수 있다. 아름다운 음악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가장 강렬한 세속적 쾌락의 상징인 고기 맛을 잊도록 만든다. 물론 공자는 배움의 인간이었고, 요순을 따르고자 했으므로 당연히 소 음악을 익히려 했겠지만, 좋아하는 것을 힘써 배우느라 고기 맛을 잊었다는 정도로는 그 충격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기분이 든다. 주희는 “부지육미(不知肉味)”를 “마음이 오로지 이 음악에 한 가지로 쏠려 다른 것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라고 풀이했다. 이우재는 이 구절을 『대학』에 나오는 다음 구절과 이어서 풀이한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하지만 부지(不知)를 고기를 아예 찾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이때는 같은 「술이」 편에 나오는 “발분망식(發憤忘食)”, 즉 분발하면 밥 먹기를 잊는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보는 것이다.

圖 : 생각하다, 도모하다는 뜻이다.

爲樂之至於斯 : ‘위(爲)’는 짓다, 창작하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연주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之)는 대개 주격으로 본다. 그러나 爲樂之에서 樂을 동사인 ‘즐기다’로 보고, 之를 ‘음악’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로 보아 “음악을 즐기는 것이”로 해석해 볼 여지도 있다. 至於斯 역시 여러 해석이 있다. 황간은 사(斯)를 제나라로 보고, ‘소(韶)가 제나라에까지 이르렀을 줄’ 생각하지 못했다고 풀이했다. 동양고전연구회는 황간의 해석을 좇아 “이 음악이 이 나라에까지 이를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라고 옮겼다. 연구회에 따르면, 소 음악은 천자의 음악으로 순임금이 지은 것인데, 순임금의 후예를 봉한 진(陳)나라에 전해졌다. 나중에 진경중(陳敬仲)이 제나라로 도주한 후, 제후의 나라인 제나라에서 소 음악을 연주해 참월하게 된 것을 공자가 가슴 아파하면서 한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번역은 주희를 따른다. 주희는 이 구절을 소 음악의 아름답고 훌륭함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찬미한 것이라고 보았다. 황간의 해석에 따르자면, 공자가 석 달이나 고기 맛을 잃은 이유가 직관적이지 않아 보인다. 신정근은 이 구절을 “음악을 감상하다가 이렇게 될 줄 전혀 몰랐네.”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