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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논어 공부

[논어의 명문장] 후생가외(後生可畏, 젊은이들은 두려워할 만하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젊은이들은 두려워할 만하다. 뒤에 오는 사람이 지금 사람만 같지 못하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마흔 살 쉰 살이 되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으면,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없다.”

子曰:“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矣.”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성어가 여기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공자가 자신의 가장 뛰어난 제자였던 안회(顔回)를 염두에 두고 했다는 설이 있다. 옛것을 숭상했던 공자로서는 예외적이다. 제자들을 격려하면서 한 말로, 젊은이로서 앞날이 많고 힘이 넘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학문의 도를 얻기 위해 거듭 노력해 마흔이 될 무렵에는 그 이름이 저절로 알려지기를 바라라는 뜻이다. 리링에 따르면, 공자는 “그를 흠모하여 계속해서 찾아주는 사람이 없어지고, 늙어서 물러난 뒤에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등을 두려워했다. 율곡 이이가 스물세 살 때(1558) 도산에 있는 퇴계 이황을 인사차 방문했을 때, 이황은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로 그를 극찬했다는 일화가 널리 전한다. 

이 구절에서는 무문(無聞)이라는 말을 둘러싼 해석 논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문(聞)을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으로 해석했으나, 왕양명은 마흔이 되어도 도를 듣지 못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내용은 상당히 다르지만, 어느 쪽이나 젊을수록 더욱 학문에 정진해서 마흔 살 무렵에는 일가를 이루라고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後生 : 젊은이라는 뜻이다. 부남철은 ‘후학’으로 해석했다. 

焉 : 문장 앞에 올 때에는 의문사로 “어찌”라는 뜻이다.

來者 : 후생의 미래를 말한다. 이우재는 ‘올 것’이라고 풀이했다. 

今 : 지금 사람이라는 뜻인데, 공자 자신의 현재 상태를 말한다. 

知來者之不如今也 : 부남철은 “성장하고 있는 그들이 지금의 내 수준에 미치지 못함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해석했다. 이한우는 “[후생의] 장래가 [나의] 지금만 못할 줄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풀이했다. 모두 비슷비슷한 풀이로 특별할 바는 없다.

聞:황간은 “명성과 명예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왕양명은 “도리를 듣지 못한 것이지, 명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리쩌허우는 “덕을 진취하고 학업을 닦아야 하니, 세월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라는 왕양명의 해석을 좇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화(良貨)」 편에 “나이 마흔이 되어서도 [남들에게] 욕을 먹으면 그것으로 끝날 뿐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과 같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斯 : ‘이에, 그렇다면’이라는 뜻이다. 

也已矣 : 강한 단정의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