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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소설 / 희곡 읽기

기억과 망각의 이중주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 8점
김중혁 지음/문학과지성사


김중혁의 세 번째 장편소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문학과지성사, 2014)는 최근 한국 소설에서 기이한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테마인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프라이버시의 자발적 유포에 의해 지탱되는 포스트 프라이버시 사회를 향해 무반성적으로 달려들고 있는 한국 사회의 광적 열풍이 작가들의 예민한 무의식을 위협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 2013)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 역시 범죄소설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범죄의 극적인 해결보다는 포스트프라이버시 사회의 기억과 망각이라는 사회철학적 문제를 사유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탐정물 특유의 지적 재미와 말초적 자극이 약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흥미를 준다. 사설탐정으로서 죽은 자의 의뢰를 받고 그가 세상에 남기길 원치 않는 기록들을 말살하는 ‘딜리터’라는 직업의 흥미도 그러하고, 마약과 섹스와 돈이 얽힌 탐욕의 지옥인 연예계라는 사건의 또 다른 배경도 그러하고, 살인과 추리와 희생이 교차하는 범죄의 전개도 그러하다. 

그러나 작가는 문학적 스릴러라는 장르 문법을 이용해서 기억과 망각의 본질, 즉 인간의 삶에서 무엇이 남아야 하고 무엇이 사라져야 하는가, 기억이란 죽은 자의 것인가, 아니면 남은 자의 것인가와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을 끈질기게 탐구한다. 

블로그나 CCTV와 같은 온갖 디지털 기억장치들이 단서를 잃어버린 사건들을 끊질기게 이어준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초현대적 외피를 입고 있지만, 주인공 구동치를 비롯해 주요 등장인물인 김인천, 천일수 등은 수첩이나 일기나 녹음기와 같은 아날로그 기억장치들을 주로 이용하고 사건의 본질적 전개는 주로 이들의 등장 다음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여전히 과거에도 발을 붙이고 있다. 

물론 작가의 깊은 관심은 구동치가 딜리터로서 일하기 시작한 계기인 소설가의 의뢰(즉 소설이란 한없이 썼다가 지우는 작업을 통해 본질만 세상에 공개되는 것이기에 그렇지 못한 문장들, 즉 본인이 쓴 습작이나 일기 등을 죽고 나서 완전히 없애 달라는 의뢰)에서도 나타나듯이 소설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 있다. 구동치의 선배 형사로 현장에서 죽음을 맞이해 주인공에게 깊은 희의를 안겨 주는 김인천 역시 아마추어 소설가라는 점에서 작가의 이해관심은 분명하다. 

마지막 의뢰로 노르웨이까지 찾아가 피오르드에 사진을 던지는 장면은 다소 사족에 가깝지만, 기억이 망각을 이기고 가슴속으로 옮아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소중한 어떤 것(패딩 점퍼)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문장은 문장의 죽음을 딛고서야 소설로 탄생할 수 있는 법이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걸 피오르에 던지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요.” 

아버지의 의뢰로 딜리팅한 하드디스크를 찾기 위해 구동치의 사무실을 찾은 정소윤, 악어빌딩의 각 층에 살면서 이야기에 반짝이는 에피소들을 제공하는 조연들, 산속에서 형제처럼 지내면서 무도를 추구하다가 1980년대 시대의 광풍에 휩쓸려 세속을 전전하게 된 원수도장의 일원들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해서 흥미를 잃지 않도록 우리를 이끌어 가는데, 이와 같이 소설 곳곳에 입체적 풍요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의 솜씨가 정말로 대단하다는 사실을 새삼 환기시킨다. 

좋은 작가가 쓴 흥미로운 소설이다. 김중혁은 우리를 결코 배반하지 않았다. 작가가 쓴 다음 소설을 또다시 기대해 본다.

http://bookedit.tistory.com2014-05-17T11:04:210.3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