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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소설 / 희곡 읽기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3)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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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넘어서야 작품을 비로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있다면,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3)을 첫손에 꼽고 싶다. 사실 이 작품은 예전에도 읽은 적이 있지만, 그때는 지루하기만 하고 어찌 읽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신비로웠다. 몸속의 시계가 작품의 리듬을 새롭게 일깨우는 기분이랄까, 한 방향으로 계속해서 흐르지 않고 군데군데에서 허리가 부러지고 샛길로 새어 나가면서, 독자와 끊임없이 게임을 벌이는 이 안쓰러운 화자, 그러니까 작가의 이야기 솜씨는 신이 빚은 듯 매끄럽고, 흥미로우며, 풍미가 넘쳤다. 때때로 날카로운 잠언이 깊은 생각을 더해 주고, 때때로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가 마음을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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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성의 폭발!!! 

근대 초기에 이미 이처럼 대화적인 작품이 존재했다는 것이 기적일 뿐이다. 철학이면서 문학이고, 이야기이면서 소설이고, 작품이면서 비평이고, 서사이면서 극이고, 우화이면서 담화이고, 역사이면서 허구이다. 서사의 모든 형태가 이 한 편에 응축되어 있는 놀라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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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와 그의 주인'이라는 제목이 보여 주는 기이한 아이러니. 

하인은 이름이 있는데, 주인은 이름이 없다. 주인은 주인이되, 자크라는 이름을 통해서만 자신의 정체를 알릴 수 있으므로 사실 노예나 다름없다. 

주인이되 주인이 아니고, 하인이되 하인이 아닌 두 사람이 벌이는 열흘 남짓의 모험이 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를 이룬다. 주인이 들으려 하는 자크의 사랑 이야기는, 이야기 중간에 자꾸 끼어드는 온갖 사건들, 이야기들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잠이나 기침 같은 생리 때문에 한없이 지연된다. 마치 인생이 사람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처럼, 자크의 이야기는 유예되면서 뒤쪽으로 밀려 가고, 마침내 어이없는 사건으로 주인과 자크가 헤어져 버리면서 완결 없이 끝난다. 그 사이 사이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작가는 끊임없이 이야기의 완결을 불평하는 독자들을 한편으로 달래면서, 한편으로 설득하면서, 한편으로 위협하면서 계속 소설을 끌고 간다. 

"제가 생각하는 대로 말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와 "사람들은 자기가 가는 곳을 안단 말인가?" 사이의 밀고 당기는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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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소설로 이처럼 만족했다면, 남루하고 우울한 일상 따위야 잠시 날려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