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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강의 & 강연

'읽다, 일하다, 사랑하다' 출간 기념 독자 만남 후기

내가 쓰는 글들은 거의 두 번째로 쓰는 사람의 글이다. 당사자로 쓰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으로서 쓰는 게 첫 번째로 쓰는 사람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서평이든 칼럼이든 거의 나를 드러내지 않는 형식으로만 쓴다. 솔직히 사건이 되지 못하고 감상으로 가득한 일상이 책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옛날 사람이기도 하고. 자기 안에서 커먼스를 이룩하지 못하는 언어는 일기에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읽다, 일하다, 사랑하다>(풍월당)가 단순히 책 소개나 비평이 되지 않도록 하려고도 애썼다. 정보는 목재위키가 나보다 낫고, 비평은 전문 연구자를 따라갈 수 없다.

작품을 읽고, 논문을 읽고, 자료를 찾고 그때그때 메모를 하지만, 실제 쓸 때는 자료나 메모 없이 떠오르는 대로 한 문장, 한 문장 쌓아서 적층하는 식으로 쓴다. 자료는 다 쓰고 나서 나중에 고쳐 쓸 때 다시 읽으면서 적어 넣는다.

내 글이 대단하다고 여긴 적은 한 번도 없다. 첫 번째로 쓰는 사람들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기에 기생적이고, 그래서 무난하고 허접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글에 내가 없다고도 할 수 없는데, 읽으려고 했던 게 작품이 아니라 삶이어서 그런 것 같다. 위태로운 삶, 약해빠진 삶, 모자란 삶, 패배한 삶,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다시'를 모색하고 붙잡는 삶들에 유난히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그 삶에 대해서 썼다.

이 책을 쓰면서 음악을 많이 생각했다. <풍월한담>에 연재해서다. 독자들이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니까, 문장과 음악이 어떻게 닮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면서 썼다. 어제 독자 만남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스베틀라나가 어떻게 침묵과 휴지를 연주하는지, 애니 프루가 격정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문체로 말을 건네는지를 이야기해 보려 했다. 군데군데 음악 기법들도 비유로 상당히 끌어다 썼다.

어쨌든 서울 약수동 산동네 출신 소년이 이런 책을 하나 냈다는 게 기적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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