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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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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과 신자유주의의 종언 코로나19 팬데믹이 습격한 지 세 해째다. 전 세계 사망자 숫자가 605만 명에 이르렀다. 한국도 최근 사망자가 가파르게 증가해 어느새 1만 명을 넘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의료 시스템이 감당할 정도로 감염자 숫자와 확산 속도를 조절했는데도 이 정도였다. 비극적인 일이다. ​ 팬데믹과 서구 국가의 무능 ​ 애덤 투즈 미국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교수의 『셧다운』(김부민 옮김, 아카넷, 2022)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우리의 생명뿐만 아니라 경제 역시 맹렬히 공격했다. 세계 경제 규모는 20% 이상 급감했으며, 인구 95%의 1인당 평균 소득이 줄어들었다. 청년들 16억 명의 교육이 중단되어 평생 10조 달러의 소득 손실을 볼 것으로 예측됐다. 사상 유례없는 사태였다. ​이 책은 2020년 1월 2..
난파한 세계에서 널빤지 하나씩을 붙잡고 우리는 흔히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다. 출항과 귀항, 정박과 운행, 폭풍과 잔잔함 등 항해의 여정에는 인생 전체가 압축적으로 형상화돼 있다.​ 바다는 한순간 삶을 파괴하는 무섭고 불확실한 운명을, 난파는 살면서 마주치는 끔찍한 비극들을 상징한다. 우리는 위험을 넘을 때마다 세파를 헤쳐간다고 생각하고, 쓰라린 실패와 마주치면 배가 뒤집혀 침몰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독일 철학자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난파선과 구경꾼』(새물결 펴냄)에 따르면, 호메로스, 탈레스, 루크레티우스, 몽테뉴, 파스칼, 볼테뉴, 괴테, 쇼펜하우어, 니체 등 사유의 대가들 역시 ‘삶은 항해’라는 은유에, 특히 난파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왔다. 호메로스가 오디세우스를 바다로 몰아넣어 무수한 난파 속에서 자신을 깨닫게 하듯, 수많은 사..
견디다(耐), 한마디를 꽉 붙잡고 지나가라 최근에 홍자성의 이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의 교감 작업을 거쳐서 새로운 번역으로 나왔다. 이 책의 제목은 ‘풀뿌리를 씹는 이야기’란 뜻이다. “사람이 풀뿌리를 씹을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라는 송대 학자 왕신민의 말에서 왔다. 비참할 때 어려움을 참고 견딜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은 처세의 지름길을 열어 주고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는 영원한 베스트셀러다. 1917년 한용운 번역으로 국내에 처음 출판된 후, 지난 100년 동안 수많은 책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안대회 번역본은 판본의 정미함에서 지금껏 나온 모든 책을 압도한다. 에는 크게 두 가지 원본이 존재한다. 저자 홍자성이 직접 간행에 참여한 초간본(初刊本)과 청나라 때 강희제 명령으로 출판된 청간본(淸刊..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 건물은 어느 때 가장 아름다울까. 도면 속에서 아직 상상의 존재로 머물러 있을 때일까. 완공된 직후 누구도 몸담지 않았을 때일까. 수백 수천 년 시간을 견딘 흔적을 담았을 때일까. 부서져 폐허로 남아 한때의 웅장함을 떠올리게 할 때일까. 한 인간에게 집은 언제 가장 의미 깊을까. 막 지어진 신축 아파트를 아름답고 깔끔하게 꾸며서 입주했을 때일까. 지지고 볶고 하면서 수십 년 어울려 살아서 구석구석 기억의 자국이 새겨졌을 때일까. 모센 모스타파비와 데이비드 레더베로가 함께 쓴 『풍화에 대하여』(이유출판, 2021)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다른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건물 역시 태어나자마자 소멸을 향해 기울어져 간다. “영원히 존재하는 건물은 없고, 모든 건물은 결국 자연의 힘에 굴복하고 만다.”..
3・1운동을 돌아보라 1919년 3월 1일 오후, 전국 일곱 도시에서 동시에 독립선언식이 거행됐다. 이것이 3・1운동의 시작이었다. 이 일을 계기 삼아 한반도 전역에서 시위와 봉기가 한 해 넘게 이어지면서 훗날 독립의 기틀이 되었다. 함석헌은 말했다. “3・1운동 없으면 오늘은 없다.” 민족이든, 국가든, 개인이든, 우리의 현재는 모두 이 운동의 유산이다. 그러나 3・1운동에는 ‘익숙한 무지’가 작용한다. 너무 당연해 더는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 상태 말이다. 우리 중 대부분은 사실 3・1운동을 잘 모른다. 구체적으로 이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참여자가 어떤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체제를 꿈꾸었는지 등을 물으면, 대답은 교과서 수준의 일면적 진실을 넘어서지 못한다. ‘장터와 태극기’가 표상하는 ‘낮의 3・1운동’만 알기 때..
페미니즘 그래픽노블 시리즈 - 진실의 그래픽 아민더 달리왈의 『우먼월드』(롤러코스트, 2020)는 ‘남자 없는 세계’라는 설정을 통해 현재의 가부장제 세상을 다시 상상한다. 유전 이상이 생겨 남자들이 요절하거나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미래 세계가 배경이다. 여기에 엄청난 자연 재해까지 겹쳐서 인류 문명 전체가 파괴된 상황. 이런 세계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연대하고 협력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가를 ‘비욘세의 허벅지 마을’이라는 작은 마을 사람들의 삶을 통해 조명한다. 법도, 경찰도, 군대도 없는 세상에서 남아 있는 정자의 보존과 관리 등 인류 존속 문제를 위해 애쓰는 한편, 사랑의 열망과 불안 등에 시달리면서 일상의 작은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고민하고 협동하는 여성들 이야기가 무척 감동적이다. 무릉도원 같다. 인스타그램에 연재되면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
입소문 효과 사람들은 흔히 묻는다. 소셜미디어에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알리고, 주변 사람이 다 좋아라 하는데, 왜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고 책은 팔리지 않을까? 평균적으로 사람들은 매일 1만 6000단어 분량의 정보를 공유하며, 시간당 1억 건 이상 브랜드 관련 대화를 나눈다. (옛날 숫자임) 모든 구매 결정의 20~50퍼센트는 입소문이 주요 원인이다. 아마존닷컴에 별 다섯 개짜리 서평은 별 하나짜리 서평보다 20권 더 책을 팔리게 한다. 매일 주고받는 대화는 광고보다 10배 이상 효과가 크다. 누구나 입소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기업이든, 가게든, 단체든, 정당이든, 개인이든. 게다가 입소문은 무엇이라도 인기를 끌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사람들 입을 어떻게 여느냐다..
먹힌 심장 - 궁극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당신이 먹은 건 사실 굴리엘모 과르다스타뇨의 심장이었소, 부정한 아내로서 당신이 그렇게도 사랑했던 그자 말이오. 돌아오기 직전에 이 손으로 직접 그 가슴에서 잘라 온 것이니 그자의 심장이 틀림없소.” 부인은 그리도 사랑했던 사람의 심장이라는 얘기를 듣고 너무나 비통해져서 할 말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입을 열었지요. “당신은 기사답지 않게 비열하고 극악한 일을 하셨군요. 그분이 내게 강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분을 사랑한 것이니 이 일로 당신의 명예가 더럽혀졌다면, 그분이 아니라 내가 벌을 받았어야 해요. 하지만 하늘이여 도우소서. 굴리엘모 과르다스타뇨 씨처럼 그렇게도 훌륭하고 그렇게도 고매하신 기사의 심장 요리를 먹었으니, 내 입으로 다시는 다른 음식이 지나가지 않게 하소서.” _ 조반니 보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