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813)
금수저 연예인이 늘어나는 이유 1980년대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은 계급의 종말을 선언했다. 부모의 재산, 지위, 학력 등이 아이들 성공에 더 이상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오직 아이들이 갖춘 능력만이 신분 이동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거짓이었다. 실제론 “부모 잘 두는 것도 능력”이라는 혐오스럽고 분노를 일으키는 말이 갈수록 현실이 되었다. 특히, 선망하는 직업, 좋은 직장에 대한 사회적 봉쇄가 심각해졌다. 『계급 천장』(사계절 펴냄)에서 샘 프리드먼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와 대니얼 로리슨 미국 스워스모어대 교수는 타고난 계급에 따라서 사회적 성공 가능성이 어떻게 다른지를 선연히 보여준다. 수많은 조사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이들은 개인 노력과 재능만으로 좋은 직업을 얻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
읽는 문화에 대한 단상 1 읽기 자체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인터넷은 인간을 지나치게 읽기만 하게 만들었다. 인터넷 자체가 거의 텍스트 덩어리이므로 이는 당연하다. ​ 2 읽기는 늘어났지만, 독서는 줄어들었다. 출판은 더 이상 읽을거리의 최상위 공급자가 아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책, 신문, 잡지 등 출판산업이 공급하는 상품을 읽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여가 중 독서 시간, 도서관 이용률 및 대출률, 서점 방문 비율 등도 마찬가지다. 그 하락 추세는 젊은 세대로 갈수록 현저하다. 이러한 추세를 역전시킬 방법은 솔직히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잘해야 늦출 수 있을 뿐이다. (내 생각엔 아마 꾸준히 하락하다가 성인 독서율 30~35%에서 정체 상태에 접어들 것 같다. 한 사회의 3분의 1 정도는 책을 통한 자기 수양이 중..
출생률 저하와 한국 출판 선진국에서 출생률 저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성의 사회적 독립성이 중요해질수록 출생률은 떨어진다. 교육받고 똑똑한 여성이 취업을 통해 경제적 독립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 아이의 출산과 양육보다 자기실현을 더욱더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출생률 저하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선진국의 공통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회 발전 속도로 인해 이에 미처 적응할 여유가 없었다. 그 결과가 기록적 저출산(2023년 0.68명 예상)이다. ​출생률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선진국은 세 나라밖에 없다. 스웨덴(제도적으로 양성평등 강제), 프랑스(정상 가족 해체), 미국(이민)이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같은 보수 정당들은 대개 미국식 해결책을 염두에 두는 듯하다. 그중에서도 선별 이민이다. 고학력 ..
최초의 이주 동물 21세기가 시작할 무렵 캐나다 킹스턴 시 부근의 폐광을 탐사하던 고생물학자들은 바위에서 알 수 없는 무늬 혹은 자국을 발견했다. 더 조사해보니 그 무늬들은 그때까지 발견된 발자국 화석 중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화석이 오래전에 멸종한 가재와 지네의 잡종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길이는 약 45센티미터로, 발자국이 너무 많아 정확한 다리 수를 알 수는 없었지만 대략 16~22개 사이라고 했다. 학자들은 화석 무늬로 보아 이 동물이 꼬리를 끌면서 모래사장을 황급히 기어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모든 동물들이 바다에 살고 있을 때 이 동물은 막 대양에서 나와 육지로 올라온 것이었다. 이 가재 지네(lobsterpede)는 약 5억 3000만 년 전에 완전히 다른 두 서식처 사이를 이동했으니 상징적으로는..
민주주의는 가장 좋은 사고법이다 뇌는 우리 몸에서 가장 신비한 기관이다. 단순한 세포로 이루어진 뇌가 어떻게 복잡한 생각과 고차적 지능을 생성하는지 아직 우리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생각의 물리적 기초는 뇌, 특히 포유류에만 존재하는 신피질인 만큼, 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이에 맞추어 사는 건 우리 자신을 알고, 삶의 지혜를 얻는 좋은 지름길 중 하나다. 『천 개의 뇌』(이충호 옮김, 이데아, 2022)에서 미국 신경과학자 제프 호킨스는 우리 뇌가 본래 민주적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막 태어났을 때, 우리 뇌는 보고 듣고 배우도록 조직은 되어 있으나, 실제로 아는 건 하나도 없다. 태어나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느냐에 따라서 우리 뇌는 다르게 발달한다. 우리 뇌가 세상을 배우는 방식은 독특하다. 뇌는 구체적 사물이나 ..
오리엔트 1만 2000년, 그 장대한 역사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동양과 서양으로 나눠 이해하고, 특히 서양 문명 중심으로 서사화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인류의 실제 발자취를 돌이켜볼 때, 동서양 중간에는 중양(中洋), 즉 오리엔트가 있어서 인류 문명의 토대를 놓고 동서양을 연결하면서 언제나 역사의 주역으로 활약해 왔다. 인류의 뿌리 문명에 속하는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 문명이 모두 오리엔트 땅에 속해 수천 년간 서로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았고, 인류 정신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가 이곳에서 발원했다. 오리엔트를 알아야 역사를 더 잘 알 수 있다. 이희수의 『인류본사(人類本史)』(휴머니스트, 2022)는 오리엔트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던 서양 중심의 인류사에 도전해 오리엔트의 역사를 포함하는 본래의 인류사를 보여주겠다는 포..
혼밥과 외로움 그동안 스스로 결정해서 혼자 먹는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왜 혼자 밥을 먹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현미밥을 씹듯 오래 곱씹었다. 그러다 결론에 이르렀다. 인간관계에서 추방되어 혼자 먹게 되었다고. 혼자 먹는 일이 자유로운 선택이었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 먹겠다는 선택 역시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누군가와 먹고 싶다고 해서 함께 먹을 수 있지 않았다. 혼자 먹는 건 자유라는 이름으로 강제되는데, 홀로 밥 먹는 게 간편하다고 스스로 정당화했다. 인간관계를 상실해서 고독하게 밥 먹고 있다고 자각하는 건 괴로우니까. 이러한 정당화를 간파한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시장에 종속된 채 고독과 고립에 굴복하도록 강요받는데, 이때 자신의 고립을 자신이 선택한..
단지 조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화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상에는 ‘우영우’를 보고 말하는 다수와 아직 보지 않은 소수만 있는 듯하다. 우영우 변호사 앞에 ‘이상한’이 붙은 것은 독특한 행동 때문이다. 그녀는 법조문과 판례를 줄줄 외우는 비상한 기억력에, 틀에 박히지 않은 발상을 거듭하는 창조성을 보이는 한편, 회전문을 통과하는 게 남들보다 힘들고 예민한 감각 탓에 불안에 자주 빠진다. ‘자폐 스펙트럼’ 현상이다. 『뉴로트라이브』(알마 펴냄)에서 미국의 과학 전문 기자 스티브 실버만은 자폐인을 ‘뉴로트라이브’라고 부른다. ‘신경’을 뜻하는 뉴로(Neuro)와 ‘부족’을 뜻하는 트라이브(Tribe)를 합쳐 만든 신조어이다. 뇌가 독특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신경학적 소수자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