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론과 서평/책 읽기

(134)
좋은 물건을 만드는 일은 영혼을 단련하는 것과 같다 누구나 자기 일을 통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배울 수 있다. 집은 짓든, 가구를 만들든, 음식을 요리하든, 경지에 오른 장인은 모두 깊은 영성의 탐구자이기도 하다. 그들의 손길이 닿으면, 일상의 제품은 영혼의 작품이 된다. 물건 만드는 일은 영혼을 불어넣는 일이요, 영적 깨달음을 누적하는 일이다. 좋은 물건을 만나면 경건하고 거룩한 마음이 먼저 일어서는 이유다. 『울림』(니케북스, 2022)에서 독일의 바이올린 장인 마틴 슐레스케는 말한다. “악기를 만들다 보면 특별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작업실에서 경험하는 거룩한 순간. 그 순간에 나는 삶의 외적·내적 일들을 새롭게, 다르게 지각한다. 단순히 습득된 지식을 넘어서는 경험이다. 나는 모든 사람의 일상에도 이같이 계시의 순간들이 주어질 거라고 확신한다. 우..
여성은 왜 출세하지 못하는가 노동을 통해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고 자신이 꿈꾸는 바를 사회 속에 구현할 힘을 갖추는 일은 한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근본적 수단이다. 한 사람이 노년에 이르러 은퇴할 때까지 역량과 성과 이외의 이유로 차이 나지 않게 경력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성공을 이룩할 수 있는가는 행복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2021년 한국사회학회에서 엄유식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등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성별 격차는 최근 들어 더 나빠지고 있다. 관리직과 비관리직을 가리지 않고 지난 10년 동안 격차가 꾸준히 증가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격차는 더 심해졌다. 연령, 학력, 근속 연수의 성별 분포가 동등해지는 상황에서도 성별 관리직 비율 차이는 설명되지 않는 이유로 심화했다. 여성이 남성만큼..
부모와 싸우는 아이들이 더 행복하고, 말다툼 잦은 연애가 만족도를 높인다 분노와 적대의 시대, 대화가 사라지다 갈등의 시대다. ​공적 대화가 완연히 엉망이 된 듯한 정치가 우리를 짜증 나게 한다. 화해보다 분노를, 화합보다 적대를 부추기는 말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내 말만을 거듭하는 세태가 우리를 불안에 빠뜨린다. 소셜 미디어는 ‘공공의 소리 지르기’ 경연장이다. 극단적이고 부도덕한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올린 사용자가 좋아요나 공유를 통해 인플루언서가 된다. 적대감, 두려움, 분노를 생산할수록 돈이 되기에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을 음모를 퍼뜨리고 분노를 자극하는 포스팅을 올리도록 독려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나 배려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그사이에 흔적도 없이 묻혀버린다. 의견 다른 이들끼리 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하고, 웃으면서 헤어지는 일은 갈수록 보..
양자 컴퓨터란 무엇인가 현황 ​양자 컴퓨터는 현재의 컴퓨터가 정보를 처리하는 원리를 기반으로 하면서 ‘양자’라는 새로운 성질을 더해서 기능을 향상한 컴퓨터이다. (1-18쪽) 양자 컴퓨터에는 세상을 바꿀 능력이 있다. 컴퓨팅 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때문이다. 주판, 시계, 계산기, 컴퓨터 등 지금까지 발명된 모든 계산 도구는 숫자를 계산하는 규칙을 물리 현상으로 대체하여 계산한다. (1-33쪽) 양자 컴퓨터는 원리적으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 스위치를 사용하는 계산기(트랜지스터)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다. 사람들 착각과 달리, 양자 컴퓨터는 현재 우리 곁에 이미 존재한다. 2019년 1월부터 IBM에서는 양자 컴퓨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2019년 10월에 구글은 “최첨단 슈퍼컴퓨터로도 푸는 데 1만 년 걸리는 문제를..
식량 위기와 문명의 종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세계 식량 위기가 현실화했다. 두 나라는 세계 최대 밀 수출국으로 전 세계 밀 공급량의 27%를 맡는다. 러시아산 밀 수입 비중이 60%가 넘는 아프리카 국가는 당장 기아 위기에 몰렸다. 식용유 공급망도 붕괴했다. 두 나라는 세계 해바라기씨유 공급을 절반 이상 책임진다. 두 나라 수출이 막히자, 그 영향이 인도네시아로 이어졌다. 전 세계 팜유 생산량의 50%를 떠맡은 인도네시아에서 식용유 품귀를 이유로 수출을 중단한 것이다. 여기에 이상기온으로 인한 가뭄, 홍수, 산불 등 기후 재앙까지 겹쳐져 전 세계적으로 식량 부족이 심화 중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 세계은행 등의 수많은 전문가가 국제 식량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문명과 식량』(눌와, 2018)에서 루스 디프리스 미국 컬..
삶을 증오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우리는 인간처럼 행동하는 기계를 제작하고, 기계처럼 행동하는 인간을 생산한다. 옛날에는 노예가 될지 모를 위험이 있었다면, 지금은 로봇이나 자동인형이 될 위험이 있다.” ​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김영사, 장혜경 옮김, 2022)에서 독일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말한다. 이 말에는 현대인을 움켜쥔 삶의 아이러니가 섬뜩하게 표현돼 있다. ​ 오늘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생동감 넘치게 살지 못하고, 무력하게 일상의 쳇바퀴를 굴리고 있다는 느낌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드물다. ​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일상생활의 급진적 자동화, 자기 생각의 독립적 표현보다 남의 생각에 대한 공감과 공유를 조장하는 소셜미디어, 하루 24시간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문자와 메일 등 스마트 업무 환경 등은 생각의 로봇화를 촉..
앞으로 100년,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20세기가 저물었다. 조짐은 벌써부터 있었다. ​2008년 금융 위기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파산했다. 2018년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으로, 짧게는 1990년 이후의 자유주의적 다자주의 무역 질서가, 길게는 1945년 이후로 75년 동안 지속해 온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가 쇠퇴기를 맞이했다.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짧은 평화’라 불리는 미국 단극체제의 지속 불가능을 알리는 일격이다. 더 나아가 달러 공동체 해체나 인터넷 종언을 알리는 위험 신호다. 귀책이야 전적으로 러시아에 있으나, 해외 금융기관에 맡긴 자금 등이 정치적 사태 때문에 한순간 인출 불능이 되거나, 국제 정보 시스템이 접속 불능이 될 수 있다면 누가 그 시스템을 신뢰하겠는가. 다시 체제 선택을 강요당하는..
서유기 81난 - 인간이 겪어야 할 모든 고난 이야기 서유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 손오공 인생 내력 (2) 현장의 탄생 비화와 취경단 모집 (3) 불경을 얻기까지 벌어진 모험 과정 -> 세 번째 부분이 81난으로 전체 분량의 80% 81가지 에피소드에서 현장이 실제 겪는 고난은 77가지이다. "사부님께서는 걸음마다 어려움이 있고, 곳곳에서 재난을 만나야 하시니." - 재난은 필연이다. "불문에서는 '구구팔십일'의 수를 채워야 참된 도에 귀의하게 되는 법이다." 시련은 열반으로 가는 길이다. - 떠날 때 삼장은 입으로는 불경을 외되, 행동은 그에 미치지 못한 평범한 승려에 불과했다. 손오공 왈, "사부는 외울 줄만 알지, 그 의미를 깨달으려고 하지 않는다!" - 당신은 범어를 붙들고 계시는군요. 도라는 것은 본디 중국에 있는데 서방에서 구하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