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론과 서평/책 읽기

먹힌 심장 - 궁극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당신이 먹은 건 사실 굴리엘모 과르다스타뇨의 심장이었소, 부정한 아내로서 당신이 그렇게도 사랑했던 그자 말이오. 돌아오기 직전에 이 손으로 직접 그 가슴에서 잘라 온 것이니 그자의 심장이 틀림없소.”
부인은 그리도 사랑했던 사람의 심장이라는 얘기를 듣고 너무나 비통해져서 할 말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입을 열었지요.
“당신은 기사답지 않게 비열하고 극악한 일을 하셨군요. 그분이 내게 강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분을 사랑한 것이니 이 일로 당신의 명예가 더럽혀졌다면, 그분이 아니라 내가 벌을 받았어야 해요. 하지만 하늘이여 도우소서. 굴리엘모 과르다스타뇨 씨처럼 그렇게도 훌륭하고 그렇게도 고매하신 기사의 심장 요리를 먹었으니, 내 입으로 다시는 다른 음식이 지나가지 않게 하소서.” 
_ 조반니 보카치오, 『데카메론』, 박상진 옮김(민음사,  2012) 중에서 

=====

이 작품에 나오는 100가지 이야기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넷째 날 아홉 번째 이야기인 '먹힌 심장'의 설화이다. 

무대는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 귈리엘모 데 로실리오네와 그 부인, 귈리엘모 데 과르다스타뇨 사이의 삼각관계와 그로 인해 일어난 치정 살인을 다루고 있다. 

과르다스타뇨와 로실리오네는 친구 사이. 그러나 로실리오네의 부인과 과르다스타뇨는 사랑에 빠져 밀회를 즐긴다. 

분노한 로시리오네는 친구를 살해하고, 그 심장을 뽑아서 요리한 후 몰래 부인에게 먹이고는 그 사실을 알린다. 위의 대사는 전말을 알게 된 부인이 부르는 백조의 노래다. 

"내 입으로 다시는 다른 음식이 지나가지 않게 하소서."

부인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거나 구역질을 함으로써 남편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대신, 그 의도를 배반하고 과르다스타뇨와 영원한 사랑을 선포한다. 

심장은 폭력에 의해 살해된 연인이 남긴 사랑의 유물이다. 

규범적 사회질서(신의 도덕)는 인간 마음의 자연스러운 발로를 가로막고 억압한다. 사랑은 그 힘 앞에 잔혹히 죽임을 당하고, 부인은 그 심장을 먹는 야만적인 처벌을 당한다. 이는 사랑의 살해에 동참하라는, 기존 질서에 가담하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인의 심장을 몸 안에 들이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일찍이 예수가 보여 주었듯이, 신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은 신과 하나가 되는 일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이런 사랑이 아닌가. 서로 떨어지지 않고 영원히 하나가 되게 하소서. 예기치 않게도, 로시리오네는 아내의 궁극적 사랑을 완성시켜 준 셈이다. 

두 가지 갈림길에서 아내는 남편의 처벌을 사랑의 기쁨으로 승화한다.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이고, 근대이다. 더 이상 낡은 도덕이 절대적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세계, 각자 자신의 두근대는 마음을 좇아서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세계가 출현한 것이다.  

동시에 이것이 문학이다. 보카치오는 정말 훌륭한 작가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천박한 것이고, 패배하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준다. 부인은 연인의 심장을 물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의 상징으로 소화함으로써 재난을 문학적으로 승화해 극복한다. 

기대를 배신당하고 오히려 굴욕적 패배를 당한 남편은 격분해 부인을 쫓고, 부인은 창 밖으로 뛰어내려 자신의 노래를 영원히 실현한다. 

"내 입으로 다시는 다른 음식이 지나가지 않게 하소서."

사랑이 가장 순수한 상태로 실현된, 그 절정에 영원히 머무르는 것, 이보다 더한 사랑이 어디에 있을까. 

ps. 먹힌 심장 이야기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인도 펀잡 지방에서 처음 나타난 이래, 페르시아, 스페인, 프랑스를 거쳐 보카치오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이후에도 계속 진화하면서 에즈라 파운드 등의 시에도 재현된다.

 

조반니 보카치오, 『데카메론』, 박상진 옮김(민음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