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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행(北風行) 차가운 북쪽에는 촉룡(燭龍)이 살아 떠오르는 아침해처럼 빛난다는데, 어찌하여 이 땅에는 해도 달도 비추지 않고 북풍만 하늘에서 세차고 매섭게 불어오는 걸까. 방석처럼 커다란 연산(燕山)의 눈꽃만 송이송이 흩어져 헌원대(軒轅臺)에 쌓이네. 임 그리운 유주(幽州)의 아낙은 12월이 되면 노래 그치고 웃음 거둔 채 미간을 찌푸리고는 문에 기대 행인들을 바라보며 남편을 떠올리네, 장성에서 매운 추위에 떨 그대여, 슬프구나. 이별할 때 칼을 차고 변방을 구하리 하고 가면서 호피에 금박 입힌 이 화살통을 남겨두었지. 속에 든 흰 깃 화살 한 쌍에는 거미가 줄을 치고 먼지가 덧쌓였구나. 화살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사람은 싸우다 죽어 돌아오지 못하나니 이 물건 차마 더는 볼 수 없어서 불살라 이미 재로 변했다네. 황하..
[후한서 이야기] 조조의 도굴 《동아일보》에 강인욱 선생의 연재 기고 「도굴 당한 ‘도굴 왕’ 조조의 무덤… 헛된 욕망의 쳇바퀴」에 조조의 도굴 이야기가 실렸다. 유명한 일화다. 도굴이 기승을 부리게 된 시점은 국가가 등장하고 왕이나 귀족들이 경쟁적으로 자신의 무덤에 수많은 보물을 넣어 저세상에서도 영화를 이어가고자 하면서부터다. 보물을 묻은 화려한 무덤이 많아지면서 무덤 속 보물을 탐내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삼국지의 간웅(奸雄) 조조는 중국 역사의 대표적인 도굴의 왕으로 꼽힌다. 중국 사서 ‘후한서’에 따르면 원소와 조조가 전쟁할 때 조조가 무덤을 파헤치는 부대인 발구중랑장(發丘中郞將)과 보물을 긁어모으는 모금교위(摸金校尉)라는 부대를 만들었다. 이들이 기원전 2세기 살았던 한나라 왕족인 양효왕(梁孝王)을 비롯해 여러 무덤을 도굴해..
저물녘 산속에서 갑자기 감회가 일어(日夕山中忽然有懷) 저물녘 산속에서 갑자기 감회가 일어(日夕山中忽然有懷) 이백 달은 누각 사이 봉우리를 머금고(月銜樓間峰), 샘물은 섬돌 아래 돌을 씻어 내리네(泉潄階下石). 깨끗한 마음 이로부터 얻으니(素心自此得), 참된 즐거움은 바깥에서 얻는 게 아니라네(眞趣非外借). ==== 산속 개울에서 달 보면서 발 담그고 싶은 밤이네요.
온정균(溫庭筠)의 「정서번(定西蕃) 3」 정서번(定西蕃) 3 온정균(溫庭筠) 내리는 보슬비, 새벽의 꾀꼬리, 봄날은 저무는데(細雨曉鶯春晩), 옥 같은 사람, 눈썹 같은 버들잎(人似玉, 柳如眉), 더없이 그립구나(正想思). 비단 휘장, 비취 주렴, 걷으려 하는데(羅幕翠簾初捲), 거울 속에는 꽃 가지 하나 놓여 있네(鏡中花一枝). 변방 소식에 애간장이 끊어지는데(腸斷塞門消息), 기러기마저 드물게 날아오누나(雁來稀). ===== 제목의 정서번(定西蕃)은 당나라 말기, 송나라 초기에 만들어진 노래 곡조 중 하나이다. 사패마다 글자 수가 정해져 있어서 여기에 맞추어 가사를 지어야 했다. 이 작품은 변방으로 군역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모습을 애절하게 그려낸다. 시절은 봄날이다. 보슬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새벽, 짝을 찾는 꾀꼬리 소리에 아내는 문..
온정균(溫庭筠)의 「보살만(菩薩蠻) 4」 보살만(菩薩蠻) 4 푸른 꼬리 금빛 깃털 물수리 한 쌍(翠翹金縷雙鸂鶒), 물결무늬 살짝 이는 봄 연못이 파라네(水紋細起春池碧). 연못가 해당화는(池上海棠梨) 비 갠 후 가지를 붉은 꽃으로 채웠구나(雨晴紅滿枝). 수놓은 저고리로 보조개를 살짝 가리는데(繡衫遮笑靨) 안개처럼 무성한 풀에는 나비가 달라붙었네(烟草粘飛蝶). 청색 창살 밖엔 향기로운 꽃들이 만발한데(靑瑣對芳菲) 옥문관 너머 임 소식은 드물기만 하구나(玉關音信稀). ==== 온정균(溫庭筠, 812∼870)은 만당(晩唐)의 시인으로 노래 가사를 잘 지어서 이름이 높았다. 제목의 보살만(菩薩蠻)은 기루에서 주로 불리던 노랫가락의 한 종류이다. 온정균은 이 노랫가락에 맞추어 여러 편 작품을 지었는데, 이 작품은 그중 한 편이다. 봄의 화려한 색채감이 돋..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9] 유어예(游於藝) ― 논다는 것은 무엇인가 7-6 공자가 말했다. “도에 뜻을 두고, 덕에 익숙하고, 인(仁)에 기대고, 예(藝)에 노닐리라.” 子曰,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 ‘논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연스럽고 자유스럽다는 뜻이다. 이 장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에 대해 성찰하도록 만든다. 자유는 어떤 일을 하는 데 방해받지 않는 것이다. 외부의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방해는 한 사람이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힘이다. 자연으로부터 올 수도 있고, 사회로부터 올 수도 있다. 배움이란 결국 자유로워지기 위한 기술이다. 리쩌허우는 말한다. “숙달하여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자유와 즐거움을 얻는다.”이을호는 이 장이 “도(道)-덕(德)-인(仁)-예(禮)의 종합적 구조를 형성하였음”을 가리킨다고 본다. 천..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8] 사부모(事父母) ― 효(孝)란 무엇인가 4-18공자가 말했다. “부모를 섬김에 부드럽게 간해야 하니, 자기의 뜻이 부모를 따르지 않음을 드러내면서도 부모를 공경하여 어기지 않고, 힘들더라도 원망하지 않는다.” 子曰, 事父母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이인(里仁)」) 이 구절을 읽을 때에는 극히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면 부모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뜻으로 읽기 쉽다. 부모-자식의 관계는 천륜(天倫)에 해당하므로, 사회생활에서 맺는 상하 관계나 친구 사이 관계인 인륜(人倫)과는 비할 수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중요성이 곧 부모의 뜻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뜻하지는 않는다. 『효경』에서 증자가 “부모 말씀을 좇기만 하는 것을 효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답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이것이 무슨 말인가? 옛날에 천..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7] 호학(好學) _ 배우기를 좋아하다 5-28 공자가 말했다. “열 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나처럼 충성스럽고 신의 있는 사람이 거기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이 장에 대하여 주희는 아름다운 자질은 얻기 쉬우나 지극한 도는 듣기 어려우므로, 배움이 지극하면 곧 성인이 될 수 있고 배우지 않으면 시골뜨기에 한낱 머무를 뿐이므로 사람은 배움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정약용은 이는 공자가 자신을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배움을 좋아하는 것이 고귀한 일임을 설명한 뜻이라고 했다. 『논어』 전체에 걸쳐 충(忠)과 신(信)은 군자가 되려는 이들이 반드시 힘써야 하는 덕목으로 칭송된다. 사람됨이 충성스럽고 미덥기만 해도 이미 훌륭한 성품이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