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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코로나19 팬데믹과 신자유주의의 종언

코로나19 팬데믹이 습격한 지 세 해째다. 전 세계 사망자 숫자가 605만 명에 이르렀다. 한국도 최근 사망자가 가파르게 증가해 어느새 1만 명을 넘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의료 시스템이 감당할 정도로 감염자 숫자와 확산 속도를 조절했는데도 이 정도였다. 비극적인 일이다.


팬데믹과 서구 국가의 무능


애덤 투즈 미국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교수의 『셧다운』(김부민 옮김, 아카넷, 2022)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우리의 생명뿐만 아니라 경제 역시 맹렬히 공격했다. 세계 경제 규모는 20% 이상 급감했으며, 인구 95%의 1인당 평균 소득이 줄어들었다. 청년들 16억 명의 교육이 중단되어 평생 10조 달러의 소득 손실을 볼 것으로 예측됐다. 사상 유례없는 사태였다.

​이 책은 2020년 1월 20일 시진핑 중국 주석이 코로나19의 존재를 인정한 후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일까지 정확히 한 해 동안 벌어진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생생하게 재현한다. 경제의 파멸을 막기 위한 각국 정부의 피 말리는 대응과 이에 관한 저자의 통찰력 넘치는 해설은 한 편의 르포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2008년 금융위기의 과정과 결과를 면밀히 추적한 『붕괴』, 1930년대 대공황을 다룬 『대격변』 등으로 이름 높은 경제사학자답게 저자는 거시적 시야에서 팬데믹이 일으킨 경제적 파장과 그 의미를 추적해 간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같은 부유한 서구 선진국들이 보여 준 혼란과 무능은 끔찍했다. 발달한 과학기술과 선진화된 의료 시스템에도 하루 수백 명씩 환자들이 방치된 채 죽어갔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말을 빌려, 저자는 이를 ‘조직화된 무책임’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트럼프’로 요약되는 무서구 상태(Westlessness)는 성장 정체, 지정학적 긴장, 포퓰리즘, 브렉시트, 난민 사태, 빈부 격차 등 이들 국가에 감추어져 있던 ‘다중 위기’를 선명히 드러냈다. 그 뿌리에는 신자유주의가 있었다. 팬데믹이 가져온 위기를 치료할 경제 백신이 신자유주의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팬데믹, 그린뉴딜과 에너지 전환을 상식으로 만들다

우선, 팬데믹은 자연과 인간의 어긋난 균형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줬다. 바이러스의 작은 변이만으로도 세계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자본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이 만든 과도한 세계화가 지구 환경에 끝없는 부담을 주고, 그로 인한 자연의 되먹임 결과가 코로나19로 나타났다.

코로나19는 “예정된 위기”였다. 오래전부터 전문가들은 중국발 팬데믹 유행을 경고했고, 전염병이 무역로를 타고 급속히 퍼지리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그에 맞서 싸워야 할 세계보건기구(WHO)와 각국 공중 보건 시스템은 오랜 투자 부족으로 사실상 무력해져 있었다.

저자는 팬데믹이 ‘인류세 위기’의 첫 번째 신호일 뿐, 조만간 닥쳐올 기후 재앙은 더 심각한 위기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극단적 이윤 추구와 각자도생을 조장하는 신자유주의 경제를 버리지 않으면, 더 많은 사망자,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할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팬데믹 이후, 자연과 조화하고 협응하는 경제로 나아가는 그린뉴딜과 에너지 전환은 인류의 상식이 되었다.


팬데믹, 시장의 무능과 불평등의 심화를 드러내다

다음으로, 팬데믹은 시장이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이 비현실적임을 폭로했다. 민영화, 규제 완화, 긴축 재정, 세계화 등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역사상 가장 큰 경제 호황을 가져왔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아시아 국가 부도,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2011년 유로존 붕괴 사태 등 위기가 이어지면서 순식간에 시장의 무능이 드러났다.

신자유주의 허위의식과 반대로 탐욕에 젖어 투기에 나섰던 자본은 정부 도움 없이 위기를 탈출하지 못했다. 게다가, 무책임하게도, 자신들이 부르짖던 대로 시장 원리에 따라 돈을 잃지도 않았다. ‘대마불사’였다. 구제금융 투입으로 억지로 위기를 극복하면서, 이익은 사유화하고 위험은 사회화하는 파렴치의 극치를 보였을 뿐이다. 위기는 이들을 더 부자로 만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다르지 않았다. 2020년 3월, 감염병을 막기 위한 봉쇄 정책의 여파로 세계 금융 시스템을 지탱하는 기초 안전 자산인 미국 국채가 붕괴 위기에 놓였다. 지옥문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대응대로 미국 연방준비제도, 재무부, 의회가 빠르게 개입해 위험을 떠안으며 경기부양에 필요한 막대한 돈을 풀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였다. 선진국뿐 아니라 신흥 시장국 등 다른 나라도 그 뒤를 이어 통화량 공급에 뛰어들었다.

신자유주의는 또다시 작동하지 않았다. 서민들 고통에는 꿈쩍 않던 정부가 권력자와 부유층의 시장인 자산과 금융시장을 살리기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증명했을 뿐이다. 결과는 또다시 기록적 불평등이었다. 2020년 미국의 가계 순자산은 15조 달러 이상 증가했으나, 혜택은 대부분 전체 주식의 약 40%를 소유한 상위 1%, 전체 주식의 84%를 소유한 상위 10%에게 돌아갔다.

​위기가 지나면 격차는 벌어지고 양극화는 심해졌다. 저자는 엄청난 부채를 연료 삼아서 투기와 성장을 계속하고 불평등을 격화하는 체제가 지속되기도, 정당화되기도 힘들다고 말한다. 팬데믹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불평등을 흡수하거나 상쇄할 길을 찾을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었다.


팬데믹, 미중 패권 전쟁을 본격화하다


마지막으로, 팬데믹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을 본격화했다.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한 중국의 눈부신 성장 역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중국경제가 미국을 추월할 지경에 이르자 지정학적 긴장과 함께 ‘새로운 냉전’이 시작됐다.

미국은 중국의 패권을 억누르려 하나, 세계화는 중국 없는 경제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들었다. 더욱이 기후 위기, 다음번 팬데믹 등 중국의 협력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산재해 있다. 정치적・군사적 경쟁과 경제적・환경적 협력을 끝없이 줄타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이러스 대응은 두 체제의 경쟁을 압축해 보여줬다. 신속하고 집중적이고 가혹했던 중국의 대응은 바이러스 통제에 나름 성공하면서 ‘중국몽’을 이어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저히 수행할 수 없는 방법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극우 포퓰리즘’에 빠진 미국의 대응은 끔찍한 혼란과 난동의 연속이었다. ‘아메리칸드림’은 산산이 부서지면서 미국의 민낯이 선연히 드러났다. 신자유주의에 따른 오랜 민영화로 보건 체계가 망가지고 사회안전망이 무너져서 미국에는 위기 대응에 필요한 공공 자원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은 과학과 기술의 언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신과 음모론에 시달리는 등 실존적 위기에 도달했다. 결과는 100만 명에 이르는 기록적 사망자였고, 미국 대선 후 폭도들의 의사당 습격이었다. 신자유주의도 그와 함께 사망을 고했다. 중국에 맞서려면 미국은 새로운 사회 계약을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바이든의 뉴딜인 ‘더 나은 재건 계획’이었다.


신자유주의 이후를 상상하기


『셧다운』은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세계 각국의 대응과 그 파급 효과를 설명하고 분석한 첫 번째 책이다. 재난의 와중에 쓰였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위협을 과소평가하는 등 아쉬운 점이 없진 않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케인스의 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우리는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팬데믹 이후, 각국 정부는 사회적 압박에 못 이겨 재난지원금 등 급진적 지원책을 도입했다. 신자유주의에선 감히 꿈꾸지 못할 혁명적 정책이었다. 이 때문에 저자는 2020년이 “신자유주의 너머에 있는 새로운 체제의 전령”이 찾아온 “대문자 역사의 신기원”이라고 말한다. 민주국가가 민생을 위해서라면 자유와 다양성을 지키면서도 경제를 통제할 수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우리한테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사회적 분열을 바느질하고, 자연과 균형을 회복하는 새로운 정치 경제적 상상력이 존재할 수 있다. 아니, 존재해야만 한다. 600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도 생각을 바꾸지 못한다면, 인류에게 어떠한 희망이 있단 말인가. 저자는 말한다.

“현상 유지는 우리가 택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선택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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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답니다.


<문화일보> 서평입니다.
보충했습니다.

 

애덤 투즈, 『셧다운』(김부민 옮김, 아카넷,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