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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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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연예인이 늘어나는 이유 1980년대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은 계급의 종말을 선언했다. 부모의 재산, 지위, 학력 등이 아이들 성공에 더 이상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오직 아이들이 갖춘 능력만이 신분 이동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거짓이었다. 실제론 “부모 잘 두는 것도 능력”이라는 혐오스럽고 분노를 일으키는 말이 갈수록 현실이 되었다. 특히, 선망하는 직업, 좋은 직장에 대한 사회적 봉쇄가 심각해졌다. 『계급 천장』(사계절 펴냄)에서 샘 프리드먼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와 대니얼 로리슨 미국 스워스모어대 교수는 타고난 계급에 따라서 사회적 성공 가능성이 어떻게 다른지를 선연히 보여준다. 수많은 조사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이들은 개인 노력과 재능만으로 좋은 직업을 얻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
민주주의는 가장 좋은 사고법이다 뇌는 우리 몸에서 가장 신비한 기관이다. 단순한 세포로 이루어진 뇌가 어떻게 복잡한 생각과 고차적 지능을 생성하는지 아직 우리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생각의 물리적 기초는 뇌, 특히 포유류에만 존재하는 신피질인 만큼, 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이에 맞추어 사는 건 우리 자신을 알고, 삶의 지혜를 얻는 좋은 지름길 중 하나다. 『천 개의 뇌』(이충호 옮김, 이데아, 2022)에서 미국 신경과학자 제프 호킨스는 우리 뇌가 본래 민주적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막 태어났을 때, 우리 뇌는 보고 듣고 배우도록 조직은 되어 있으나, 실제로 아는 건 하나도 없다. 태어나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느냐에 따라서 우리 뇌는 다르게 발달한다. 우리 뇌가 세상을 배우는 방식은 독특하다. 뇌는 구체적 사물이나 ..
오리엔트 1만 2000년, 그 장대한 역사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동양과 서양으로 나눠 이해하고, 특히 서양 문명 중심으로 서사화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인류의 실제 발자취를 돌이켜볼 때, 동서양 중간에는 중양(中洋), 즉 오리엔트가 있어서 인류 문명의 토대를 놓고 동서양을 연결하면서 언제나 역사의 주역으로 활약해 왔다. 인류의 뿌리 문명에 속하는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 문명이 모두 오리엔트 땅에 속해 수천 년간 서로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았고, 인류 정신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가 이곳에서 발원했다. 오리엔트를 알아야 역사를 더 잘 알 수 있다. 이희수의 『인류본사(人類本史)』(휴머니스트, 2022)는 오리엔트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던 서양 중심의 인류사에 도전해 오리엔트의 역사를 포함하는 본래의 인류사를 보여주겠다는 포..
단지 조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화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상에는 ‘우영우’를 보고 말하는 다수와 아직 보지 않은 소수만 있는 듯하다. 우영우 변호사 앞에 ‘이상한’이 붙은 것은 독특한 행동 때문이다. 그녀는 법조문과 판례를 줄줄 외우는 비상한 기억력에, 틀에 박히지 않은 발상을 거듭하는 창조성을 보이는 한편, 회전문을 통과하는 게 남들보다 힘들고 예민한 감각 탓에 불안에 자주 빠진다. ‘자폐 스펙트럼’ 현상이다. 『뉴로트라이브』(알마 펴냄)에서 미국의 과학 전문 기자 스티브 실버만은 자폐인을 ‘뉴로트라이브’라고 부른다. ‘신경’을 뜻하는 뉴로(Neuro)와 ‘부족’을 뜻하는 트라이브(Tribe)를 합쳐 만든 신조어이다. 뇌가 독특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신경학적 소수자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는..
한국 능력주의의 역사적 기원 황경문 호주국립대 교수의 『출생을 넘어서』(백광열 옮김, 너머북스, 2022)가 출간되었다. 이 책의 주장은 상당히 논쟁적이다. 1 신분 의식은 현대 한국을 특징짓는 주요 요소이다. 고도로 근대화, 산업화한 나라 중에서 한국만큼 학력, 집안, 지역을 따지는 나라는 드물다. 높은 신분 의식과 고위 관료(명문대, 대기업, 언론사 등)를 향한 욕망은 한국 근대화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이다. 2 한국의 근대화는 제2신분집단, 즉 서얼, 중인, 무반, 향리, 서북 출신의 신분 변동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신분을 향한 현대 한국인의 끝 모를 갈망에는 이들의 욕망이 큰 영향을 끼쳤다. 3 조선 시대 내내, 이들은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절대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조선 특유의 관료제를 통해 억압당했다. 조선의..
파시즘 바이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1852)에서 마르크스는 말했다. “헤겔은 어딘가에서 세계사의 모든 위대한 사건과 인물은 두 번 등장한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그가 잊고 덧붙이지 않은 말이 있다. 첫 번째는 비극, 두 번째는 소극(farce)이라는 점이다.” 비극의 주인공은 프랑스 혁명 직후에 등장한 나폴레옹이고, 소극의 주인공은 1848년 혁명 이후에 나타난 그 조카 나폴레옹 3세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 사건은 부르주아의 본질을 폭로했다. “만일 민주주의의 가치(자유, 평등, 박애)를 버리는 것이 곧 경제적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라면, 부르주아 계급은 언제든지 그 가치를 차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새로운 보나파르트인 ‘스트롱맨’ 도널드 트럼프 역시 같은 사실을 드러낸다. “미국의 많..
스파이크, 우리 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1) 스파이크란 무엇인가? “우리 뇌는 소통을 위해 전기를 사용한다. 신경세포 각각, 뇌 속 860억 개 뉴런 각각이 미세하고 짧은 전압 신호를 전송함으로써 다른 뉴런들에게 말을 건다. 신경과학자들은 그 짧은 신호를 ‘스파이크(spike)’라고 부른다.” 우리는 스파이크를 통해 보고 듣고 느끼며, 생각하고 계획하고 행동한다. “스파이크는 뉴런들이 대화하는 방식이다.”(1-17쪽) 이 대화를 통해 우리의 모든 활동이 이루어진다. (2) 대뇌 겉질과 스파이크 우리 뇌는 크게 겉질(cortex)과 속질(medulla)로 나누어진다. 겉질은 뇌의 외곽 층이다. 우리 대뇌의 겉질에는 다른 어떤 동물의 겉질보다 많은 뉴런이 들어 있다. 스파이크는 그 뉴런들 사이를 오가며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시각에 종사하는 구..
쓰기는 언제나 읽기에서 시작한다 글쓰기 전성시대다. 이처럼 많은 이가 온갖 곳에 다양한 글을 쏟아내는 시대는 역사상 없었다. 그러나 정작 좋은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은 듯하다. 글쓰기 강좌는 호황을 누리고, 관련 책의 판매 부수도 늘지만, 사람들은 자꾸 묻는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좋은 글을 쓰려면 단순한 요령을 넘어서는 더 큰 배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신혜경 옮김, 밤의책, 2022)에서 프랑스 페미니스트 철학자 엘렌 식수는 글쓰기가 H를 닮았다고 말한다. H는 “글이 오르내리는 사다리”를 말한다. 왼쪽 기둥(I)이 한 언어이고, 오른쪽 기둥(I)은 다른 언어이며, 둘을 이어주는 선이 있다. “글쓰기는 두 해안을 잇는 통로를 만든다.” 글쓰기는 널리 알려진 것과 아직 알려지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