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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소설 / 희곡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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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으로 변화하는가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고, 생활을 바꾸어 주겠다고 소리치는 목소리들이 기세등등하다. 주변에서도 온통 누가 더 잘 할까 이야기로 시끄럽다. 대선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 중 정말 인간이 무엇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생각해 본 사람은 드문 듯하다. 청년 도스토옙스키는 야심만만했다. 스물네 살 때 ‘가난한 사람들’로 데뷔해 ‘고골이 다시 태어났다’라는 칭송을 들으면서 문단에 등장했다. 자신감 넘쳤던 청년은 곧이어 유럽 전역에 몰아닥친 혁명의 물결에 뛰어들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 그룹에 참여해 차르 체제를 비판하고 농노 해방을 꿈꾸다 동료들과 함께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극적 효과를 노린 차르의 정치 쇼에 불과했으나 영문도 모른 채 처형장에 섰던 도스토옙스키는 닥쳐온 죽음의 공포 속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마지..
사랑의 고고학 ― 잃다, 파다, 스며들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사랑의 고고학’을 실천한다. 작가는 언어의 섬세한 솔질로 기억의 지층을 굴착해 사랑의 흔적을 발굴한다. 열세 살에서 열여덟 살까지, 어린 나이에 주로 첫사랑의 형태로 파묻힌 이 사랑은 퀴어의 형태로 존재하기에 낯설고 두렵고 들끓고 뜨겁고 위험하고 조심스럽다. 이 책에 담긴 청소년 퀴어 서사를 꿰뚫는 동사는 세 가지, ‘잃다, 파다, 스며들다’이다. 소설의 화자들은 모두 상실 이후를 살아간다. 「우리들의 우리들」의 은푸른하늘은 아빠가 없고, 「어리고 젊고 늙은 그녀들 스미다」의 서해림은 엄마가 세상을 떴고,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의 강희는 친구를 영원히 잃었고, 「사랑을 말할 때」의 장한나는 언어를 빼앗겼다. 사랑과 상실의 결합은 에로스를 더 애타게 하지만, 투사할 대상을 잃은..
“빌어먹을 놈들한테 절대 짓밟히지 말라.”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서른 해 전이다. 먼저 영화를 접했고, 다음에 소설을 읽었다. SF 소설을 읽기는 하지만 일부러 찾아 읽지 않는 나 같은 이들한테 흔한 경로다. 국내 개봉 영화 제목은 ‘핸드메이드’. 처음에는 handmade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handmaid였다. ‘시녀’라는 뜻이다. 지금은 영화를 보지 않지만, 당시엔 영화광이었다. 영화 의 폴커 슐렌도르프가 감독을, 노벨문학상을 나중에 수상한 해럴드 핀터가 각색을,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맡았다. 안 볼 수 없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원작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이건 습관이다. 영화를 보고 좋았는데, 원작이 있으면 거의 찾아 읽는다. (솔직히 반대 방향은 잘 안 그런다. 주로 실망하니까.) 작가 이름은 마거릿 애트우드. 흔..
“난 어쨌거나 좀 더 살아야 해요.” ― 루쉰의 『고독자』를 읽다 루쉰의 소설은 이미 모두 여러 번 읽었지만, 손에 새로운 번역본이 들어올 때마다 어떻게든 다시 읽는다. 이번에 읽은 책은 『고독자』(이욱연 옮김, 문학동네, 2020)다. 이 판본은 2002년 인민출판사에서 특별 간행되었던 것으로 중국 현대 판화의 거장 자오옌넨이 새긴 목각 판화가 삽화로 실린 것이 특징이다. 『아Q정전』(2011), 『들풀』(2011), 『광인일기』(2014)에 이어 네 권째 나왔으며, 번역은 이번에도 이욱연 교수가 맡았다. 차후에 『옛이야기, 다시 쓰다』로 완간될 예정이다. 이 책에 실린 루쉰의 작품은 「복을 비는 제사」, 「비누」, 「장명등」, 「가오 선생」, 「고독자」, 「애도」, 「이혼」 등 일곱 편이다. 역자에 따르면, 루쉰의 두 번째 소설집 『방황』에 실린 작품 중에서 고른 ..
메타포적 인생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민음사, 2004)에서 마을 청년 마리오 히메네스가 파블로 네루다에게 묻는다. 작품 배경은 1970년대 초 칠레의 이슬라네그라.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1943년부터 정착해 살았고, 현재 그의 무덤이 바다를 바라보는 어촌 마을이다. 마리오는 네루다한테 온 우편물만 배달하는 사람으로 특별 채용된다. 열일곱 살 마리오는 이 일을 계기로 처음으로 네루다의 시집을 읽기 시작한다. 시를 읽으면서, 또 네루다와 대화하면서 청년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독특함을 깨닫고 질문을 던진 것이다.‘사실대로’ 세계를 보는 것과 ‘제대로’ 세계를 보는 것은 다르다. 비의 물리적 실체는 하늘에서 떨어지..
테드 창, 과학의 문으로 들어가 철학의 출구로 나오다 모든 SF는 잠정적으로 반체제 소설이다 테드 창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2000년대 초 《Happy SF》의 작가 특집을 통해서다. 이 작가는 중단편 8편으로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함께 받았다. SF를 즐기지는 않지만, 두 상을 동시에 받은 이른바 ‘더블 크라운’ 작품이 훌륭하다는 건 안다. 『듄』, 『어둠의 왼손』, 『빼앗긴 자들』, 『뉴로맨서』, 『엔더의 게임』, 『신들의 전쟁』 등이 이 목록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자유의 양식이다. 특정 내용, 문장 스타일, 쓰는 방법 등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소설의 시학은 기성의 규칙이나 굳어진 관습 같은 것을 좀처럼 따르지 않고, 작가가 작품 내부에 이룩된 질서만을 존중한다. 이 때문에 소설은 어떤 이야기도 가능하고, 어떤 스타일도 거부하지 않는다..
낯선 사랑, 낯선 결혼, 낯선 이별 - 서유미의 『홀딩, 턴』(위즈덤하우스)를 읽다 “무엇보다도 사랑과 결혼이 겹치는 지점이 불편했다. 영진과 잘 지낼 때도 생활 속에서는 적당한 거리감 확보가 간절했다. 연애할 때는 밀착되는 게 좋았지만 그게 매일 이어지는 건 버거웠다. 지원이 꿈꾸는 건 오래 연애하는 상태에 가까웠다.”어제 오후, 서유미의 『홀딩, 턴』(위즈덤하우스, 2018)을 읽었다. 사랑과 이별의 과정이 아니라 내면을 더듬어 가는 섬세하고 느릿느릿한 이별 이야기다. 지원과 영진이 스윙댄스 동아리에서 만나 결혼하고 사소한 이유로 이혼에 이르는 다섯 해 동안의 삶을 그려 낸다. 둘의 이별은 불행하되 추접하지 않다. 침착하고 산뜻해서 신선하다.두 사람의 사랑은 ‘불행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파탄하지만, ‘쿨의 윤리’를 좇아 눈에 띄는, 아무 상처도 없이 갈라선다. 스무 해 전인 19..
어느새, ‘회사 인간’ 한 달에 한 번, 《중앙선데이》에 쓰는 칼럼입니다. 카프카의 『변신』을 통해 회사에 길들여진 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느새, ‘회사 인간’ 연초에 휴가를 갔다. 새벽 5시, 여명이 있기도 전에 저절로 눈이 뜨인다. 느긋한 게으름을 피우자고 마음먹은 것도 별무소용이다. 신체가 제멋대로 움직인다. 어둠 속에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작은 등을 켜고 가져간 책을 읽는다. 가족들 숨소리가 고르다.회사를 나왔을 때도 한참 그랬다. 몸을 추스르려 동생이 사는 시골마을로 내려갔다. 굳이 출근할 필요가 없는데도, 아침 8시면 몸이 지하철에 출렁이는 것 같고, 12시에는 어김없이 배가 고프고, 오후 4시에는 무조건 지루하고, 7시가 되면 술 벌레가 창자를 건드렸다. 어쩔 수 없음을 알지만, 나는 여유와 한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