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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

건물은 어느 때 가장 아름다울까. 

도면 속에서 아직 상상의 존재로 머물러 있을 때일까. 완공된 직후 누구도 몸담지 않았을 때일까. 수백 수천 년 시간을 견딘 흔적을 담았을 때일까. 부서져 폐허로 남아 한때의 웅장함을 떠올리게 할 때일까. 

한 인간에게 집은 언제 가장 의미 깊을까. 

막 지어진 신축 아파트를 아름답고 깔끔하게 꾸며서 입주했을 때일까. 지지고 볶고 하면서 수십 년 어울려 살아서 구석구석 기억의 자국이 새겨졌을 때일까. 

모센 모스타파비와 데이비드 레더베로가 함께 쓴 『풍화에 대하여』(이유출판, 2021)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다른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건물 역시 태어나자마자 소멸을 향해 기울어져 간다. “영원히 존재하는 건물은 없고, 모든 건물은 결국 자연의 힘에 굴복하고 만다.” 풍화, 즉 시간은 건물을 바람으로 만든다.

근대의 건축가는 풍화의 힘을 못내 싫어한다. 근대 건축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인 르코르뷔지에는 “공사가 완료되었을 때 나타나는 완결성”을 이상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건물이 완공되고 아직 사람들이 들어서기 전 모습을 사진으로 붙잡아 둔다. 

‘이대로 영원히!’ 시간이 침투하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 아직 오염되지 않은 완벽한 흰색(whiteness)을 사랑하는 것이다. (건축 잡지, 인테리어 잡지 사진은 대부분 이런 사진이다.)

르코르뷔지에에게 “건물의 생애는 (중략) 완벽한 상태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과정”에 불과하다. 완공 직후부터 비와 바람과 햇빛과 인간은 건물의 궁극적 존재성을 파괴하는 힘, 즉 뺄셈의 흐름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파트 입주 직후가 어떤 집의 절정이라면, 삶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건물의 완공 직후가 가장 훌륭한 상태라면 아무도 그 안에 살아서는 안 된다. 풍화가 “건물의 마감을 앗아가는 과정”이요 건물의 파멸과 종말로 가는 운동이라면, 그것이 최상의 건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풍화가 불가피하다면, 바람과 빗물의 힘을 이용해서 나날이 아름다워지는 건축은 불가능할까. 이 질문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 자연스레 새로운 건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마감 공사가 끝난 시점을 건물의 완성으로 보는 게 아니라 건물이 완공된 이후, 풍화에 의해 생기는 건물 자체의 지속적인 변형을 건물의 새로운 시작으로, 건물이 계속해서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가는 ‘완성’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 

건물을 눈부신 흰색으로 깔끔하게 마감하려 한 르 코르뷔지에와 달리, 카를로 스카르파는 건물 파라펫 중간을 “끊어 틈새를 만들고, 그 사이로 스며든 빗물로 벽면 중앙에 검은 흔적이 생기도록 유도”했다. 그러면 “풍화가 진행되면서 이 흔적”은 “자연의 시간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스카르파는 건축의 미를 백색성이 아니라 ‘시간의 흔적’에 두고, “풍화로 인한 재마감을 건축의 새로운 출발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돌프 로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집을 “예술품이 아니라 가족들이 살아온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우리의 식탁이었지, 바로 우리 거였다고!” 그는 집에 있는 가구와 물건이 “추억을 들려주며 가족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을 사랑했다. 

로스는 “거주자에게 취향을 강요하는 태도를 거부”했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입장을 “가엾고 불쌍한 부자”라고 비판했다. 실내 공간은 “거주자 자신이 만드는 것이고, 거기 사는 사람에 따라 독특한 것이 되어야 했다.” 

이처럼 완공 직후부터 서서히 뒤틀리고 삭아가고 변형되는 건물의 흐름을 처음부터 고려해서 설계하고 시공하는 건물이 존재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을 “건물이 풍요롭게 변화하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이를 건물의 한 부분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알로이스 리글은 이를 “세월의 가치”라고 부른다. 이에 따르면, “건물은 연륜이 쌓일수록 가치가 높아지고, 다양한 흠집이나 겹겹이 누적된 표면층이 해당 건물의 과거사와 그와 관련된 삶을 기록해서 사람들에게 기억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하나의 테제로 압축한다. “건물은 마감 공사로 완성되지만, 풍화는 마감 작업을 새로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창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창조 행위란 건축가와 시공자가 자연의 힘을 예측하면서 작업하는 가운데 생기는 것이다.” 시인이 물과 바람과 돌의 힘을 재료 삼아 시를 자아내듯이 말이다.

물은 돌에 구멍을 내고/ 바람은 물을 흩뜨리며/ 돌은 바람을 막는다/ 물과 바람과 돌 ―옥타비오 파스, 「그림자 초(草)」
이 책은 건축에 관한 것이지만, 인생에 대한 유비로 자꾸 읽힌다. 

세월의 힘을 거부하기보다 세월의 흔적이 있는 그대로 몸에 새겨지도록 받아들이려면, 그러니까 시간의 흔적이 쌓여서 하나의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게 하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도무지 떠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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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책입니다.

오후에 우연히 손에 들었다, 내려놓지 못하고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