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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질문의 엘리트’가 필요한 시대

《서울신문》에 쓴 칼럼입니다. 인공지능시대는 미래 인재의 모습을 급속히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질문의 엘리트’가 필요한 시대



“‘제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못 들어봤다. 영미권에서 쓰는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어디 산속에서 살다 온 철없는 사람 이야기가 아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놀랍게도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세계는 평평하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등의 저서를 통해 ‘지구화 시대의 전도사’를 자부해 온 사람이다. 언어가 있는 곳에 인식이 있다. 우리가 ‘마법의 주문’에 홀려서 호들갑을 떠는 사이, 세계는 정보기술이 가져온 격변을 자기 시각에서 수용하고 소화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면 실제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무엇일까? 초연결사회는 피하지 못한다.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면서, 인간지능이 추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또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 정보의 흐름들이 곳곳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빅데이터라 불리는 정보의 흐름을 처리하고, 그 흐름으로부터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정보를 추출할 줄 아는 새로운 지능이 필요해졌다. 필요는 창조의 어머니이므로, 결국 인간지능은 인공지능을 낳았다. 그리고 알파고가 보여주듯, 인공지능은 그동안 인간지능이 해왔던 임무를 빠르게 대체하는 중이다.

이것은 인류의 종말일까? 인간지능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할까? 인간만의 일로 생각했던 수많은 일들이 차례로 사라질 것은 뻔하다. 500만 개? 1000만 개? 규모를 예측할 수 없다. 그동안 사람들이 부러워했던 의사, 약사, 변호사, 회계사 등 ‘사들의 사(死)’가 다가온다는 말들이 넘쳐난다. 기자, 교육자, 기술자 등 ‘자들의 운명’도 별다르지 않다. 정부기관 등 공공부문에서 아무리 일자리를 늘리더라도, 그것만으로 사라지는 일자리를 메우기에는 아마도 역부족일 것이다. 따라서 일자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알파고의 거듭된 충격 이후, 교육 현장은 벌집을 쑤신 듯 난리다. 인공지능시대에 맞추어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잡아달라는 학부모들 요구가 빗발이다. 작년에 서울대 학생들을 멘토링하면서 서울대 등 현재의 명문대 학생들로 대표되는 휴먼 데이터베이스 시대가 곧 끝날 것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정보를 대량으로 암기했다가 정해진 시간에 선다형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데 능숙한 ‘수험 엘리트’(성능 좋은 휴먼 데이터베이스)의 몰락은 피할 수 없다.

벌써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서울대 등 명문대 기득권이 얼마나 강고한데 그러냐고. 실상은 이렇다. 몇 달 전, 몇몇 학자들하고 저녁을 먹다가 충격적 이야기를 들었다. 하버드 등 미국 유수 대학 대학원에서 한국의 명문대생을 기피하는 기미가 역력하다는 것이다. 주어진 문제는 잘 해결하지만 새로운 문제를 잘 만드는 데에는 젬병이라서 그렇다. 이미 드러난 문제는 앞으로 점점 인공지능한테 맡기는 쪽이 나으므로, 좋은 질문을 못하는 사람은 창조적 연구에 방해가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한국형 수험 엘리트의 퇴락한 현실이다. 서울대 자연대생 중 40%가 작문 수업을 듣기 힘들 지경도 형편없는 글을 쓴다는 최근의 평가 결과도 이를 시사한다. 생각의 조리가 없는 이들이 질문을 잘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알파고란 무엇인가. 어떤 인간지능도 따라잡지 못할 ‘대답의 엘리트’라고 할 수 있다. 조만간 우리는 검색엔진을 활용하듯이 누구나 인공지능을 거의 무료로 이용하는 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특정된 문제에 대한 대답을 찾는 일에는 인공지능이 인간지능보다 더 빠르고 뛰어나다. 드러난 질문의 대부분을 검색엔진 등 인공지능과 함께 처리하는 시대가 다가오는 중이다. 이런 시대의 인재는 ‘대답의 엘리트’가 아니라 ‘질문의 엘리트’다. 

필자는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노트북 등을 가져와 검색엔진을 활용해서 답해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한 주일 전에 시험 문제를 미리 알려주기도 한다. 인공지능과의 공생은 이미 아이들에게는 자연이나 마찬가지다. 아마도 학생들은 평생 두뇌의 연장이자 자아의 확장인 스마트폰을 곁에 두고 살아갈 것이다. 이제 좋은 학생을 가려내는 데에는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답하도록 하는 쪽이 훨씬 낫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내달리는 세상 속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사색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때의 생각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인공지능만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정보가 존재하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 그리고 좋은 질문에는 무지를 지(知)로 바꾸는 거대한 힘이 담겨 있다.

어떻게 ‘질문하는 인간’을 길러낼 수 있을까. 공자와 소크라테스가 모범을 보여준 밀도 높은 대화술이 떠오른다. 하지만 좋은 스승은 드물고, 또 대부분 주변에 없다. 학부모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 된다. 독서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이들과 나누는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독서 과정은 내면의 바다에 질문의 파도를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책은 ‘질문하는 인간’을 만드는 유일한 미디어다. 따라서 인공지능시대의 교육혁명은 책을 중심으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첨단이 점차 가속화할수록 가장 오래된 미디어가 인간을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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