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매일경제신문》에 제 이름으로 나가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저의 관심사는 책이 기록한, 또 제가 경험했던 책의 인간들 이야기입니다. 저자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발상하고, 일하고, 사랑하고, 저술하면서 창조성을 유지하는 것일까요.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인간들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칼럼이니까, 100% 맞출 수는 없겠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들을 써보려고 합니다. 아래에 옮겨 둡니다. 칼럼마다 반드시 제가 읽었던 책이 하나씩 들어갑니다.
아이들은 왜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옛날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단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싫어하는 아이는 이상하게도 전혀 없다. 졸린 눈을 억지로 비벼 뜨고, 부모가 지칠 때까지 ‘하나 더’ 이야기를 갈구한다. 본능적으로 아이들은 이야기의 중요성을 느낀다. 이야기에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힘’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에 따르면, 인간은 논리로 사고하는 게 아니라 내러티브, 즉 서사를 통해 사고한다. 이야기에는 사랑과 미움, 우정과 질시, 용기와 비겁, 환대와 경멸, 연대와 분열, 모험과 위험, 타락과 구원, 상실과 회복, 성취와 환멸 등 아이가 장차 살아갈 세계에서 마주칠, 그리고 그 세계에서 겪어야 할 온갖 시행착오들이 담겨 있다.
잠들기 직전에 이야기를 듣는 경험을 통해 아이를 미지의 세계를 배우고, 낯선 세계에서 다른 이들과 살아가는 법을 익힌다. 아이가 하나 더 이야기를 들으려는 것은, 인간으로서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의 간절한 표현인 셈이다.
아이가 혼자 책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소설 등의 풍요로운 이야기 세계를 접한 후에는, 어른들과 본격 전쟁이 시작된다. 성적을 우려하는 부모의 제지와 선생의 눈총을 견디면서도 아이들은 교과서 사이로 온갖 이야기에 빠져든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 재밌는 이야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웹 소설이 있어서, 가볍게 읽을 만한 라이트노블이 많아서 다행이다.
제롬 브루너는 말한다.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이다. 자신의 삶을 통일된 이야기로 구성할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한 인간이다. 교육은 자신의 삶에 대한 서사적 통일성을 기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다.”
이야기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필수 자질이다. 이 일에서 어른이 아이를 돕기는커녕 방해할 때, 즉 ‘공부에 도움이 되는’이 ‘인생에 도움이 되는’과 충돌할 때, 아이들은 진화적 충동에 따라 당연히 후자를 선택한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형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 이야기를 참조하고 탐구하고 체험하면서, 미래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간다. 설사 부모라 해도 이 엄연함을 가로막을 권리는 없다.
최근 만난 『미생』의 작가 윤태호는 말했다.
“백과사전식 정보는 기억나지 않는다. 서사가 없기 때문이다. 서사가 있어야 기억에 남기기 좋다.”
지식과 정보의 수용에서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 것이다. 단어 백 개를 낱낱이 외는 것보다 백 단어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를 환기해 보라.
내년부터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교사와 학생이 함께 책을 읽도록 의무화된다.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 나라면 물론 소설이다. 이야기를 만들 줄 아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뿐만 아니라 무한대 정보가 널려 있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갖추어야 할 핵심 자질에 해당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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