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문(雜文)/공감과 성찰

생각 좀 하고 살아


《매일경제》 칼럼, 이번에는 ‘생각하기’를 다루었습니다. 본래 글을 조금 보충했습니다. 전 6.5매에 아직 적응할 수가 없네요.ㅜㅜ

사람들은 흔히 정보를 생각이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죠. 오히려 정보는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2020년부터 일본은 대입시험을 개혁하면서, 학력과 생각하는 힘 중에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후, 교육 개혁 방향은 교과서를 폐지하고 일제 고사를 없애는 쪽으로 갈 가망성이 높습니다. 교과서와 일제 고사는 생각하는 힘에 역행하니까요. 그렇다면 생각하는 힘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그 이전에 생각이란 게 무엇인지 좀 살펴보았습니다. 




생각 좀 하고 살아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파스칼의 유명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엔 조리가 없다. 만약 이 말이 진실이라면, 사람들은 늘 생각하고 사는 중일 테니까, 더 이상 잔소리는 필요 없을 것이다.

“생각 좀 하고 살아.” 

그러나 진실은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은 좀처럼, 아니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정보를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고 습관적으로 전달하거나 거기에 적힌 명령을 수행할 뿐이다.

소셜미디어를 보라. 사람들 대부분은 복제 기계에 가깝다. 타임라인에 흐르는 정보를 좋아하거나 공유하기에도 시간이 아주 바쁘다. 자기 의견을 한 줄 덧말로 적어 넣는 일조차 극히 드물다. 소셜미디어에서 인간은 ‘정보의 숙주’로 존재한다. 니콜라스 카의 표현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시대의 ‘표준인간’이다.

따라서 파스칼은 틀렸다. 진실에 더 가까워지려면 그의 명제를 뒤집어야 한다.

“사람들은 갈대일 때만 생각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그녀’를 보고 싶다면 아주 간단하다. 그/그녀를 갈대로 만들면 된다. “저녁 때 일찍 들어와. 할 이야기가 있어.” 아침에 집을 나설 때 한마디만 하면, 인간은 갈대로 바뀐다. 하루 종일 무슨 폭탄 선언이 있을까를 고민할 테니까.

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생각하는 그/그녀를 보고 싶다면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우리 그만 만날까. 지금대로는 아닌 것 같아.” 말을 듣고도 인간이 갈대가 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이미 글렀다.

국가 같은 거대 조직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쉽다. 갈대로 만들면 되니까. “올해부터 우리는 애를 안 낳겠습니다.” 청년들이 이미 실천 중이고, 국가는 골머리를 썩는 중이다.

사람들은 정보를 얻어듣고 전하는 것을 흔히 생각이라고 부른다. 언감생심이다. 정보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이 필요없도록 소음을 정제한 것을 ‘정보’라고 한다.

정보는 ‘미지(未知)를 제거한 생각’이다. 어떤 정보에 ‘알 수 없는 무엇’이 딸려 있으면, 신속하고 효율적 교환이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정보는 가능하면 미지를 무시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정보와 달리 생각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을 재료로 삼는다. 익히 아는 것이어서 익숙하다면 ‘생각’이란 필요하지 않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을 때, 인간은 생각하지 않는다. 기대한 일상이 무너지고 미지의 일이 벌어지려 할 때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한다.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 정보의 숙주에 불과하다면, 아무도 그 존재를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랑이라고 다를까. 사랑은 대상에 대한 미지를 생산하는 실천이다. 우치다 타츠루가 말했듯, 사랑은 ‘당신을 더 알고 싶다’에서 시작해서 ‘너, 다 알아봤어’에서 끝난다. 그/그녀를 다 안다고 여길 때, 거기엔 사랑이 없다. 출근할 때 본 연인이 저녁에도 그 사람이라고 믿으면, 그 사이엔 정보가 있을 뿐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저녁에는 그/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 둘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까를 하루 종일 번민할 때, 그/그녀가 없을 때조차 곁에서 말을 거는 듯 한없이 그 목소리를 들을 때 비로소 사랑이 있다. 그러고 보면 미지의 불안이 가져오는 탐구의 불꽃이야말로 사랑의 진짜 모습이다.

“정보는 명령이다.”

하이데거의 말이다. 자신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세간의 이야기만 반복하는 인간을 경고한 것이다. 명령엔 수행이 있을 뿐, 미지로부터 오는 질문은 없다. 질문이 없는 곳에 당연히 생각도 없다. 생각하는 인간이 되려면 기존의 명령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 자주 노출되어야 한다. 그중에는 전쟁이나 실업이나 기아 등과 같은 외부의 거대한 폭력이 주체를 압도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도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등 자신을 갈대로 만드는 훈련을 통해 미지를 더 사랑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아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생각 좀 하고 살아.” 

예, 알겠습니다. 페이스북 그만 보고 이제 사랑할게요.


--------------------------------------------------
Related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