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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매일경제신문》 칼럼, 이번에는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의 일에 대해서 써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자본의 공포 마케팅에 넘어가서 미리 체념하지 말고, 자본이 바라는 대로 미래를 상상하지 말고, 인류 전체의 행복을 생성하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인공지능과 공진화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저한테는 인공지능의 자기계발(^^)보다 자본의 폭주가 더 염려됩니다. 미래의 일자리는 자본이 우리에게 나누어주는 게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가 힘을 합쳐서 우리의 일을 만드는 겁니다. 자본이 일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된다면, 아마 편리한 인공지능을 없애는 것보다 불편한 자본을 삭제하는 쪽이 더 미래의 행복에 좋겠죠.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토요일마다 시골로 내려가 마을사람들과 같이 『논어』를 읽는다. 마을 청년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려고 처음 시작한 모임이 어느새 두 해를 훌쩍 넘겼다. 한 번에 다섯 구절 정도, 여러 주석들을 참고하면서 천천히 읽는 중이다. 나이 들어서 하는 공부인 만큼 속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곳 홍동 갓골마을에는 벌써 서른세 해 동안 계속된 ‘할머니 독서모임’도 있다. 마흔 살 무렵부터 이분들은 매주 모여서 함께 책을 읽어 왔다.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러준 어른들이 있으니, 부지런히 그 뒤를 좇아서 살아갈 뿐이다.

지난 주말, 공부 끝내고 이야기 나누다 세간의 화제인 ‘알파고의 은퇴’에 관심이 미쳤다. 다들 아이들 미래 때문에 걱정이 산이다. 이제 바둑에서라면 인간지능은 영원히 기계지능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의료현장이나 법률현장 등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가망이 높다. 무한을 살아가는 알파고에게 은퇴는 없다. 체스를 그만둔 왓슨이 곧바로 병원에 투입되었듯, 알파고 역시 조만간 현실의 또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되리라.

하지만 패닉을 느낄 까닭은 전혀 없다. 인류사에서 이런 일은 수없이 일어났다. 구텐베르크의 성서 역시 처음에는 ‘악마의 선물’이 아니었던가. 손으로 삽을 이기지 못하고, 삽으로 포클레인을 이기지 못한다. 하나하나가 기적이고 꿈같은 일이며, 누군가에게는 절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삽이 있고 포클레인이 있어서 손은 예술과 같은 섬세한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계의 정의는 ‘인간이 할 수 없는’이다. 본래부터 기계는 인간이 못하는 일만 한다. 인간이 할 일은 앞으로도 당연히 인간이 할 것이고, 기계와 함께할 일은 대부분 기계를 이용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존재는 인간 지능에 대한 각성을 촉발할 좋은 기회다. ‘인간만 할 수 있는’이라는 헛된 오만에서 깨어난다면, 인간은 자신이 집중할 수많은 일을 새롭게 찾아낼 수 있다. 

앞으로 인간의 주된 일은 정보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정보의 바깥에서 올 것이다. 예를 들면, 느리게 배울 때에만 간신히 알 수 있는 일, 평생에 걸쳐 배워야 깨달을 수 있는 일 같은 것 말이다. 따라서 생명을 사랑하고 평화를 이룩하고 정의를 실현하고 순간을 고양하려는 욕망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질문하고 답하며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이 길은 우리가 이미 아는 진실이고, 문학을 통해서 가장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지혜이기도 하다. 인공지능 덕분에 이제야 인류 전체가 이 문제에 집중할 여유를 얻은 것이다. 물론 새로운 출발선에 있는 만큼 또 다른 길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절망은 없다. 붓다는 말한다. “분명히 다른 길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