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8 공자가 말했다. “열 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나처럼 충성스럽고 신의 있는 사람이 거기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이 장에 대하여 주희는 아름다운 자질은 얻기 쉬우나 지극한 도는 듣기 어려우므로, 배움이 지극하면 곧 성인이 될 수 있고 배우지 않으면 시골뜨기에 한낱 머무를 뿐이므로 사람은 배움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정약용은 이는 공자가 자신을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배움을 좋아하는 것이 고귀한 일임을 설명한 뜻이라고 했다.
『논어』 전체에 걸쳐 충(忠)과 신(信)은 군자가 되려는 이들이 반드시 힘써야 하는 덕목으로 칭송된다. 사람됨이 충성스럽고 미덥기만 해도 이미 훌륭한 성품이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인으로 가는 중요한 한 갈래 길일 뿐 그 자체로 인한 것은 아니다. 사람이 인하려면 충과 신에서 머무를 것이 아니라, 끝없는 배움을 통해 자신을 도약해야 한다. 김용옥의 말처럼, 자기의 울타리를 넘어서 배울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설령 충성스럽고 미더운 사람일지라도 자기를 벗어던지고 성인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좁디좁은 세상을 전부로 아는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무를 뿐이다. 순자는 말한다.
“사람한테는 모두 똑같은 바가 있다. 배고플 때에는 먹으려 하고, 추울 때에는 따뜻하고자 하며, 피곤할 때에는 쉬려고 하고, 이로운 것을 좋아하고 해로운 것을 싫어하니, 사람이란 본래 이런 성품을 갖고 태어나기에 배우지 않고서도 절로 그러는 법이다. (중략) 사람은 요임금이나 우임금이 될 수도 있고, 걸임금이나 도척이 될 수도 있다. 장인이나 공인이 될 수도 있고 농부나 장사치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사람이 사물을 파악하는 방법과 습관을 통해 축적한 교육과 훈련에 달려 있다.”
사람이 배움에 힘써야 하는 이유다. 사람의 성품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관에 따라 달라지므로, 배움에 힘써야 한다는 말과도 통한다.
그렇다면 배움을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배병삼은 자신의 무지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앎에 대한 허기를 느끼고 배움에 목말라하는 과정적 개념을 호학이라고 본다. 핵심은 과정적이라는 것이다. 죽는 그날까지 배우고 또 배울 뿐, 배움을 전혀 멈출 수 없다. 배우는 일이 마치 타고난 듯 자연스러운 경지를 말한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배움을 좋아하는 경지에 이른 것은 공자의 수많은 제자 중에서 안회가 유일했다. 그만큼 배움을 좋아하는 일은 쉽지 않다. 배움을 통해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이룩하는 것, 타고난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랴.
자왈(子曰), 십실지읍(十室之邑), 필유충신여구자언(必有忠信如丘者焉), 불여구지호학야(不如丘之好學也).
십실지읍(十室之邑)은 열 가구 정도 사는 작은 시골 마을을 말한다. 배병삼은 충(忠)을 자신에 대한 성찰로, 신(信)을 타자에 대한 성실성으로 본다. 언(焉)은 어시(於是)의 준말로, ‘거기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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