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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교육의 문명화

《매일경제신문》 칼럼. 

이게 마지막이었는데, 어제 새로운 연락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한 해 동안 

매주 읽기의 세계를 주제로 기명 칼럼을 쓰게 되었습니다. 

전 저 자신을 향해서는 할 말이 많고 

세상을 향해서는 할 말이 아주 적은 사람이라 어깨가 무척 무겁네요. 


 



교육의 문명화



“당신은 어떻게 가치 있는 인간인가?” 몇 해 전부터 학생들과 수업하는 프로젝트다. 내용은 간단하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자기 가치가 무엇인지를 각자 확인하고, 그 가치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발표해 비판적 논박을 주고받는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확인된 자기 가치를 실제로 실현해 보는 일련의 실천을 기획해서 실행한 후, 그 내용을 스스로 기록해 50쪽가량 책으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수업은 스스로 저자가 됨으로써 출판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학습하는 일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왔을 때 단체나 기업에서 행할 각종 프로젝트를 수행해 보는 일이기도 하고, 하나의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수습하는 법을 실무를 통해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아주 어렵지는 않은 프로젝트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좋아도 실행할 수 없는 경우가 흔하고, 실행의 기대와 결과가 다른 경우가 잦으며, 결과가 괜찮아도 책의 육체를 입히는 일은 별개라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처음 수업을 기획할 때의 예상과 달리, 의외의 곳에서 늪에 빠져 헤매는 학생이 많았다. 학생들 대부분이 인생에서 추구할 만한 가치를 언어화해 본 경험이 없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가를 놓고, 부모나 교사 같은 어른은 물론이고 또래와도 이야기해 본 적이, 적어도 사춘기 이후에는 거의 부재했던 탓이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출세와 생존을 넘어서는 가치를 전달하지 못할 때, 이를 야만이라 한다. 한 번뿐인 목숨인데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답하는 일이 ‘진지 떠는’ 무례한 짓으로 여겨질 때, 이를 퇴폐라 한다. 한 나라의 교육이 야만과 퇴폐에 빠져 있는 땅이 바로 지옥이다. 그러고 보면 청년들이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하는 것은 좌절의 격정적 표출이 아니라 현실의 건조한 고발인 셈이다.

요즈음 인공지능이 가시화한 후, 사교육 시장을 중심으로 ‘창조성 드립’이 한창이다. 하지만 초점을 잘못 잡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수많은 작가들을 상대해 본 경험에 따르면, 창조란 일시적이고 기발한 생각이라기보다는 가치 있는 삶의 지속적 실천에 가깝다. 자신이 ‘바라보는 곳’에 대한 신념을 품고, 이를 자주, 반복해서 실행하는 것이 창조적 인간으로 사는 유일한 길이다.

창조는 지금과 다른 질서를 만들어 인간을 ‘더 나은 인간’으로, 세상을 ‘더욱 살 만한 곳’으로 바꾸는 일이다. 삶의 가치에 대한 질문 없이 이 일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아이들 대부분이 이런 질문을 자연스레 고민하는 인간으로 성장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이들을 창조적 인간으로 기르는 일에서 실패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육의 적폐를 청산하는 방법은 코딩과 같은 ‘문명의 교육’에 달리지 않았다. 독서처럼 아이들이 자연스레 삶의 의미를 묻도록 도와주는 ‘교육의 문명화’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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