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자주 이용하는 논문 사이트 첫 화면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다운로드 숫자가 가장 많은 논문 열 편의 제목에 모두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이 정도면 제4차 산업혁명은 업계의 호들갑을 넘어선 국가적 재앙에 가깝다. 학자들 공부가 편벽되면 사회 전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정부 부처는 또 어떤가. 가는 곳마다 모두 제4차 산업혁명 타령이다. 이 말만 쥐고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요술방망이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제4차 산업혁명은 이 시대의 남근숭배다. 절대적 쾌락을 보장할 것 같아서 모두가 제사에 참여하고, 자신도 참여했다는 사실로부터 얻는 미시권력적 위안에 몸을 떠는 중이다. 초연결성에 기반을 둔 사회의 혁신은 분명히 일어나는 중이다. 누구도 이 흐름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이 양극화, 저출산,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해 우리를 행복하게 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될 우려가 높다.
특정 개념은 세상을 명료하게 보이게 만들지만, 동시에 자유로운 사고를 파괴하는 부작용도 있다. 그러니 우두머리가 바다의 유혹을 받은 레밍 떼처럼 굴지 말자. 대학에 여러 학과가 있고 정부에 여러 부처가 있으며 세상에 여러 기업이 있는 이유는 다양한 추구를 통해 사회적 욕구의 균형을 달성하라는 뜻이다. 모두가 한쪽으로만 사고할 때, 우리의 미래는 다보스적 이해의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작년에 ‘알파고 사건’을 눈앞에서 본 충격이 우리에게서 차분함을 빼앗은 것 같다. 인공지능 탓에 속절없이 사라질 직업을 우려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지나치다. 거의 패닉에 가깝다. 독서 관련 강의를 할 때마다 아이들의 미래를 염려한 부모들의 질문이 쇄도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맞추어 교육혁신이 필요한 것은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코딩 교육 의무화 같은 어이없는 해법이 난무하고 있다. 물론 먹고살려면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 코딩도 물론 좋은 수단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 전부가 낚시로 물고기를 잡을 까닭은 없다. 그러면 분명히 굶어 죽는다.
미래를 걱정한다면 코딩 같은 새로운 의무 학습을 늘리기보다 창조의 시대에 걸맞도록 교과서 자체를 폐지해 버리자. 창조는 차이를 이룩하는 것이다. 기존의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연결할 때 간신히 새것을 얻을 수 있다. 모두 같은 책으로 공부하기보다 다양한 독서에 바탕을 두고 학습하도록 도우면, 오래지 않은 미래에 자율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을 길러낼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 폐지가 힘들면 일단 일본을 따르는 것도 좋겠다. 암기에 의존하는 고독한 천재의 시대는 끝났다.(알파고가 이미 보여주었듯이, 이것은 분명히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잘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인재를 기르려고 일본은 2020년부터 대학 입시에서 사지선다형 시험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때마침 부산시에서도 내년부터 초등학교에서 객관식 시험이 사라진다. 이런 유형의 접근이야말로 우리가 조속히 참여해야 하는 혁명일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전 지구에서 유일하게 객관식 시험을 치르는 나라로 남을지 모른다.
제4차 산업혁명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문제는 창조하는 인간을 길러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창조하는 인간이 있는 한, 혁명은 항상 진행 중이다. 모두가 제4차 산업혁명 따위에 몰려드는 한, 창조하는 인간은 분명히 억압될 것이다. 이제는 제발 ‘레밍 코리아’에서 벗어나는 다양한 시도를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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