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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읽기중독자로 살아가기

이번 주부터 《매일경제신문》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첫 번째 칼럼은 읽기중독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읽기중독자로 살아가기



도서관이나 박물관이나 학교나 사회단체에 강연 가는 일이 잦다. 읽기를 퍼뜨리는 일이 소명임을 받아들인 후, 일정을 가릴 뿐 비용을 따지지 않아서다. 약력을 요청받으면 첫 줄에 정성껏 적는다. 

‘읽기중독자’.

큰 축복을 받아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왔다. 한눈팔 겨를도 없었다. 책을 읽고 만들고 쓰는 일로 인생 전부를 채울 수 있었다. 다른 일을 한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다. 일주일에 두세 권쯤 책을 읽고, 밑줄 그은 것을 가끔씩 옮겨 적고, 때때로 무슨 책을 만들까 고민하면서 살아왔을 뿐이다. 아마 앞으로도 이 일만 계속할 것이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영화도 벌써 포기했다. 가능하면 포털 첫 화면을 보지 않는다. 쓸데없는 콘텐츠에 넋 잃는 버릇을 알기 때문이다. 뉴스는 주로 신문으로 해결하고, 하루에 한 번 분야별로 사람들이 많이 본 기사를 챙겨 읽을 뿐이다. 중요한 일은 며칠 후에도 여전히 중요하고, 긴급하면 지인에게서 통화나 문자가 온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화면 속의 세계는 인간을 ‘반응 노동자’로 만든다. 솔직히 말하면, ‘가짜뉴스’가 있는 게 아니라 뉴스 자체가 가짜다. 실시간 뉴스는 소식이라기보다 ‘조작된 자극’에 가깝다. 곧바로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아, 사람들은 사건을 퍼 나르고 의견을 붙이고 댓글을 달면서 호들갑을 떤다. 때때로 하루 종일 난리다. 하지만 사흘만 지나도 대부분 다른 곳에서, 때때로 완전히 반대편에서 자지러져 버린다.

소셜미디어는 인간의 부스러기 시간을 빼앗아 공짜로 정보를 생산하도록 만드는 뉴스 공장이다. 가상의 거대한 작업장에서 사람들은 서로 연결된 채, 자발적이고 열정적으로 ‘그림자 노동’을 제공한다. 그런데 소셜미디어를 위해 값도 없이 노동하는 이 시간은 본래 인간이 밥벌이에서 놓여나 휴식을 취하면서 자신의 자아를 확인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유대를 즐기던 때였다.

요즈음 무슨 모임에 갈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음식이 나오면 각기 사진을 찍고 글을 달아 어딘가로 보내느라 바쁘다. 그리고 모임 자리 내내, 그 글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느라 정신없다. 곁에 있는 사람은 아랑곳없다. 부끄럽지만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가 이렇듯 자투리시간을 바쳐 일하는 소셜미디어 노동자가 아니었다면,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까지 공허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진짜 결론은 누구나 똑같다. 결국에는 죽음이 찾아오고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간다. 그래서 인생은 오직 과정만이 소중하다. 각자의 인생에서 한 번뿐인 ‘지금 이 순간’을 허무하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면,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나한테는 그 일이 ‘읽기’다. 정확히 하자면, 읽기와 함께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는 일이다. 다른 일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창직(創職)의 시대다. 명함을 받으면, 새롭고 기발한 직업이 넘쳐난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 일을 하나 만들었다. 시인이나 화가처럼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불렸으면 좋겠다. ‘읽기중독자.’ 앞으로 나를 이렇게 불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