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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시와 에세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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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헤밍웨이는 어떻게 글을 썼을까 기자 헤밍웨이는 어떻게 글을 썼을까― 사실을 말하기, 오직 진실만을 이야기하기 “전쟁은 작가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노년의 대가 헤밍웨이가 말한다. 확실히 그럴 만하다. 전쟁과 같은 끔찍한 경험은 작가에게 인생의 비밀을 깨닫게 해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말에 대해 당신이 작게라도 매혹을 느꼈다면, 덧붙은 한마디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나는 전쟁을 깊이 증오합니다.”청년 헤밍웨이가 기자 생활을 했다는 것, 그리고 작가가 된 이후에도 때때로 종군 기자의 임무를 즐겼음은 잘 알려져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을 입었고, 스페인 내전에 직접 뛰어들어 반파시스트 전선에 섰다는 것은 ‘극한의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신화를 이룬다.헤밍웨이가 기자로 쓴 글이..
행복에 맞추어 돈을 벌자 행복에 맞추어 돈을 버는 사람 오늘의 추천도서!!오하라 헨리의 『나는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기로 했다』, 정현옥 옮김(루비박스, 2017)나는 도무지 이와 비슷하게 살고 있지 못하지만ㅜㅜ 일과 삶의 균형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읽고 싶다. 이 책은 돈에 맞추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에 맞추어 살려고, 일을 최소한만 하기로 한 사람의 이야기다. “학교에서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돈 버는 방법이다. 그런데 더욱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은 돈을 벌기 전의 마음가짐이다. 주어진 환경이나 물욕, 필요한 돈의 액수도 사람에 따라 다른데, 왜 다들 일주일에 5일씩 일해야 하는 건지 의문을 가져 본 사람? 필요한 만큼 일하면 만족하는지, 토 나올 정도로 바쁘게 일하는 게 좋은지, 나는 사회가 ..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는 다시는 반복할 수 없는 백민석의 아바나 여행기 당신은 볼거리가 많은 나라에서 왔다. 아바나에서 보내는 일상이 벌써부터 지루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볼거리가 많다는 것은 당신이 소파에 앉아 줄곧 텔레비전과 휴대전화만 들여다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에 볼거리가 없다는 말은 당신 스스로 볼거리를 찾아 나서고, 스스로 볼거리를 창출하고, 스스로 볼거리가 되기 위해 엉덩이를 떼고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바나의 시민들이 거실에 캔버스를 놓고 그림을 그리고, 플로리다 해협을 등지고 앉아 트럼펫을 불고, 광장에 이천 명씩 모여 살사 댄스를 주고, 프라도 거리에서 시민 노래 경연을 벌이듯이. 글은 이인칭으로 쓰여 있다. 소설도 아니고 쿠바 아바나에 대한 여행기인데, 웬 이인칭? 여행을 다녀와 사진을 고르는 민석과, 사진을 고른 후 자신한테 중얼거..
부러움에 지치면서 읽은 책 ― 김혜형의 『자연에서 읽다』(낮은산, 2017) 부러움에 지치면서 읽은 책― 김혜형의 『자연에서 읽다』(낮은산, 2017) 하루 종일 논물 위에 엎드려 피를 뽑으며 생각했어요. 밥이 내 입으로 들어올 때 이젠 이 모든 것들이 오버랩 될 거야, 하고요. 갓 발아한 볍씨, 연둣빛 모판, 발가락 사이로 감겨드는 논흙의 감촉, 흙때 낀 손톱, 끊어질 듯한 허리, 햇빛에 반짝이는 수면, 논둑을 걷는 아이들의 물그림자……. 체감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들은 쉽게 망각되지 않습니다. (중략) 머릿속으로 아는 것의 뿌리는 참 얕아서, 알았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모르는 것일 수 있겠구나 싶어요. 내가 보는 세상의 피상성, 상투화가 은폐하는 삶의 세부, ‘안다’는 생각이 일으키는 착시와 결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부러움에 지치면서 읽는 책이 있다. 김혜형의 『자연에서 읽..
수면 기계 속의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 강성은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문학과지성사, 2013)을 읽다 강성은의 두 번째 시집을 읽으면서 작은 글을 하나 쓰고 싶어졌다. 하지만 주중에는 전혀 틈을 낼 수 없었는데, 오늘밤 잠시 틈을 내어 글을 하나 쓸 수 있게 되었다. 읽으면서 순간순간 메모해 둔 것들을 이어붙인 것이라서 미숙하다. 하지만 즐겁다. 읽고 쓴다, 읽고 쓴다, 읽고 쓴다. 이 반복은 얼마나 즐거운가. 다른 수많은 반복들에 비하여 얼마나 기쁜가. 그 기쁨을 다시 반복하기 위해 여기에 올려 둔다. 수면 기계 속의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 강성은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문학과지성사, 2013)을 읽다 1 이상한 일이다. 나는 강성은의 첫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창비, 2009)를 읽었을 때, 전혀 '잠'에 대해 의식하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제목에 ‘잠’이라고 적혀 있는데..
박강 시집 『박카스 만세』를 읽고 1어제는 박강의 첫 시집 『박카스 만세』(민음사, 2013) 출판 기념회가 대학로에서 있었다. 광화문 모임에 나갔다가 문정희 선생님을 비롯해 권혁웅, 조강석, 이재훈, 주영중, 손미 등을 만났다. 역시 시를, 문학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있을 때 나는 가장 뜨거워진다. 즐겁고 기뻤다. 새벽에 술에 취한 채 작은 글을 하나 썼다. 미완이지만, 여기에 일단 옮겨 둔다. 2박강의 시는 대개 "새로 손금을 파고 싶"(「폭설」)어 하는 청년들의 불우를 재료로 삼는다. "실패" "좌절" "비명" "해직" 등 죽음을 향해 느리게 이동하는 하강의 단어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죽지 못해 삶을 사는 이들의 삶을 그저 직관할 때 그의 시들은 역설적으로 놀라운 활력과 충격을 만들어 낸다. 크면 꼭 빤스 입은 슈퍼맨이 되야 하나..
이원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 한겨레 게재 칼럼 지하철 옆자리의 한 여학생이 번개처럼 손을 놀린다. 손바닥의 반만한 휴대폰을 들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문자판을 번개같이 훑어가면서 어딘가로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낸다. 그 모습이 신통방통하여 한참을 쳐다보고 있자니, 고개를 홱 돌려 외면해 버린다. 그렇다. 그들에게도 소통이 필요하다.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와 마음을 털어놓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전자 소통 도구와 연결된 새로운 신체를 갖고 있다. 그래서인가? 스크린 위에서 쏜살같이 스쳐가는 그들의 내면은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조차 꽤 힘들다. 아니, 거부당한다. 그 여학생의 고개 돌리기, 완강한 부정과 몸을 섞어 소통하기 위해 젊은 시인 이원은 자신의 자아를 전자 신체로 개조하고 그들의 언어로 시를 쓴다. 소통을 위해 몸을 바꾸고 언어..
시여, 사랑이여, 비극이여 _ 이응준 시집 [애인]의 발문 이응준 시집 [애인](민음사)이 출간되다. 그와의 우정을 표시하기 위해 오랜만에 짤막한 글을 발문의 형태로 한 편 쓰다. 시여, 사랑이여, 비극이여 이응준 시집 [애인] 발문 하나가 둘을, 이별이 사랑을, 고독이 공존을, 고요가 환호를 침식한다. 사랑의 소멸, 이것은 낭만적 환영의 결과가 아니다. 희망의 끝자리, 좌절의 절벽 앞에 선 자의 절망이 아니다. 거기에 숙명적 체념이나 운명적 슬픔 같은 것은 없다. 생계와 생명을, 고여 썩어 가는 삶과 약동하는 죽음을 맞바꾼 자의 분투가 있을 뿐이다. 그 분투는 모든 것을 대가로 치른다. 한없이 사랑을 갈망하지만 오로지 혼자로서만 살아 있을 수 있는 짐승이 모든 곳에서 출현한다. 연애하는 짐승의 무정함과 무정한 짐승의 연애가 빚어내는 기이한 변증이 빛을 어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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