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점을 책의 역사에서 과연 전자책 혁명의 시대라고 불러도 될까? 과연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책의 역사가 어떤 운명적 전환점에 와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당장 눈앞은 흐릿해졌는데 멀리 정상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매일 각종 자료를 읽고 온갖 기기들을 섭렵해 가면서 앞날을 궁구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지만, 시도 자체가 보상일 뿐 미래는 속 시원히 보이지 않는다.
책이 디지털 상품으로 바뀌면 지금까지 책을 둘러싸고 있던 프로토콜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책을 둘러싼 여러 가지 모험이 나타나면서 수많은 다양성이 갑자기 출판 안에서 개화할 것이다. 이 돌연변이 꽃들을 즐길 수 없는 이들은 요란스레 외쳐 댈 것이다. “이것은 책이 아니다.”
그러나 임계에 가까워지고 나면, 탐험가들은 관습의 법정이든 현실의 법정이든 법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법 안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음을, 더 이상 법이 의미 없는 텅 빈 공허로 가득 차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민한 이들은 이미 책으로부터 책들을 꺼내고 있는데, 그중 뚜렷한 시도 하나는 책의 사물화이다. 책은 이제 읽거나 쓰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로서 자리 잡는다. 어딘가 책이 존재하다면 그것은 읽어서 정보나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각상이나 그림처럼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책의 물질성에 주목해 이를 사물로 변환하려는 시도가 최근 미술계에서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는데, 오늘 소개할 작가는 종이책을 이용해 새로운 사물을 창조해 내는 예술가 브라이언 디트머(Brian Dettmer)이다.
Brian Dettmer, Ilia Varcev photography
브라이언 디트머는 1974년생으로 미국 일리노이 주 네이퍼빌에서 자랐다. 1997년 시카고에 있는 컬럼비아 칼리지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2006년까지 거주하다가 그 이후에는 아내와 함께 애틀랜타에서 거주하고 있다.
대학 시절 그는 간판 가게에서 일하면서 텍스트, 이미지, 언어, 부호 사이의 관계를 탐구했으며, 그림과 점자, 모르스 부호 등을 결합하는 일련의 작업을 시도했다. 그러다가 그는 화폭에 신문과 책을 찢어 붙이는 방식으로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데 몰두했다. 2000년 이후 그는 책을 풀칠하고 잘라 냄으로써 매체로서의 책의 가능성과 한계를 시험함으로써 서서히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책이 그대로/변형해서/잘린 채로/이어붙이는 방식으로 콘텐츠와 함께 미술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줌으로써 새로운 미학적 세계를 열어젖힌 것이다. 디트머는 말한다.
“책에 부여된 본래의 기능을 축소하고 비선형적 세계 속에서 책의 선형적 형태를 유지시킵니다. 정보가 표시되는 물리적 형태를 대체하고 사전에 책에 있으리라 여겨지는 기능들을 전환하면 책의 새롭고 예상치 못한 역할이 나타나게 됩니다.”
아래 그의 놀라운 작품들을 소개한다. 홈페이지에 가면 더 많은 작품들이 있으니 한번 방문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Saturation Will Result, 2011, Set of encyclopedias with pedestal, 34-1/2" x 27" x 11-3/8" (46-1/2" x 35" x 16" with pedestal) -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Kinz + Tillou Fine Art
Macmillan, 2011, Hardcover book, acrylic medium, 11-1/8" x 9-1/2" x 2-1/8" -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Toomey Tourell Fine Art
Tower of Babble, 2011, Paperback books, acrylic medium, 28” x 10-1/2” x 10-1/2” -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Kinz + Tillou Fine Art
Smith’s Scientific Series, 2011, Hardcover books with pedestal, 28” x 10-1/2” x 10-1/2” -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Kinz + Tillou Fine Art
Absolute Authority, 2011, Hardcover book, acrylic medium, 9-3/4" x 7-3/4" x 4" -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Wexler Gallery
American Peoples, 2011, Hardcover books, acrylic medium, 61" x 39" x 14" (154 x 100 x 34 cm) -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Toomey Tourell Fine Art
Lands and Peoples, 2011, Hardcover books, acrylic medium, 75 x 75 x 6 cm -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Toomey Tourell Fine Art
The Facts on File, 2011, Hardcover book, acrylic medium, 9-1/2" x 8-1/8" x 2-1/2" -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Packer Schopf
Universal Standard, 2011, Hardcover books, acrylic medium, 42-1/4" x 13" x 13" (70-1/2" x 16" x 16" with pedestal) -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Toomey Tourell Fine Art
Complete Guide, 2011, Hardcover book, acrylic medium, 15" x 10-1/8" x 2-1/4" -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Packer Schopf
Prose and Poetry of the World, 2011, Hardcover book, acrylic medium, 8-1/2" x 7-1/2" x 2" -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Packer Schopf
Prose and Poetry of the World, 2011, Ink jet print, 8-1/2" x 7-1/2" -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Packer Schopf
There’s Nothing to Fear, 2011, Paperback books, acrylic medium, 7” x 73” x 3" -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Toomey Tourell Fine Art
There’s Nothing to Fear, 2011, Paperback books, acrylic medium, 7” x 73” x 3" -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Toomey Tourell Fine Art
Wagnalls Wheel, 2010, Altered Set of Encyclopedias, 9" x 20-1/2" x 20-1/2" -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Toomey Tourell Fine Art
(출처 : 브라이언 디트머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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