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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선거

選 16획 | 선 | 가리다, 갖추어지다

형성. 성부는 巽(손). 손(巽)은 신 앞의 무대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춤추는 모양. 이렇게 신 앞에서 무악을 바치는 것을 찬(撰, 차리다, 뽑다)이라고 한다. 『시경』 「제풍(齊風)/ 의차(猗嗟)」에 “춤을 춘즉 갖추어지다”(舞則選兮)라 하여 갖추어지는 것을 말한다. 두 사람이 갖추어 춤추는 데에서 ‘갖추다’라는 뜻이 되고, 신 앞에서 춤추는 자는 뽑힌 사람이므로 ‘뽑다’라는 뜻이 된다. 신에게 바치는 주식(酒食)을 찬(饌, 차리다, 음식)이라고 한다. 

 

擧 18획 | 거 | 들다, 행하다

회의. 여(與)와 수(手)를 조합한 모양. 여(與)는 여(与, 두 개의 상아를 조합한 모양)를 네 개의 손으로 떠받치는 모양으로, 협력하여 운반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또 수(手)를 더하여 여(与)를 더 높이 들어 올리는 것이 거(擧)이고, ‘올리다, 바치다’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물건을 바쳐서 의식이나 행사를 진행하는 것을 거행(擧行)이라 하고, 또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거(擧)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협력해서 여(与)를 들어 올리는 데에서 ‘모두, 전부’라는 뜻으로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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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답니다.

시라카와 시즈카의 『상용 자해』(박영철 옮김, 도서출판 길, 2022)가 우리말로 나왔다. 아마 인문 공부를 하는 모든 이의 책상 옆에 영원히 놓일 공구서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일본 정부에서 고시한 상용 한자에 왈(曰)을 추가한 2137자의 글자에 대한 해설서이다. 

그러나 단순히 한자 사전은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시라카와 시즈카가 이끌었던 일본 갑골학과 한자학의 역사적 성과가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틴어를 알면 영어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듯이, 한자의 원류인 갑골글자와 금문을 이해하면 한자에 담긴 뜻을 더 깊게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에는 한자가 처음 만들어질 때의 뜻이 담겨 있다.

시라카와에 따르면, 언어는 그 근본에서 주술이다. 신의 뜻이 담겨 있으므로 속되게 사용해선 안 된다. 

선거란 신 앞에서 춤추는 자를 모두 힘을 합쳐 뽑는 것이다. 당연히 여러 가지 흠결로 신의 분노를 살 인간을 뽑으면 안 된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언어에는 신성한 힘이 깃들어 있다. 그 의미를 곱씹다 보면, 세상을 좀 더 잘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마 순우리말도 마찬가지로 어원에 이르면 신의 언어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책을 우리말로 깔끔하게 옮긴 번역자의 노고와 수없이 많은 글자를 새로 만들어야 했을 출판사의 애씀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이런 사전이 우리 학자의 손에 의해서도 나왔으면 좋겠다. 

ps.

표지에 있는 'ㅂ'는 시라카와 시즈카가 발견한 최대 업적 중 하나다.  (비읍 아니다....^^;;;)

사(史), 사(事), 구(口), 고(古), 명(名), 소(召), 형(兄), 축(祝) 등에 들어 있는 네모 형태가 바로 저 글자이다. 신에게 바치는 기도문, 즉 축문을 담는 그릇을 뜻한다. 

번역자는 'ㅂ'가 재(才)에서 처음 뚜렷한 모습을 보이므로 이를 '축문 그릇 재'로 읽자고 제안했다. 

재(才)는 재주라는 뜻이 아니고, '있다'라는 뜻이다. 亅은 나무 기둥이고, 一은 가로목이다. 삐침은 'ㅂ'를 축약한 형태이다. 재(才)는 나무 기둥을 세우고 가로목을 놓은 후 거기에 신성한 그릇을 매단 것이다.

재(才)가 있는 곳은 신성한 장소로 성화된다. 나중에 신성한 기물인 도끼의 머리 모양을 상형한 사(士)를 더하여 재(在)가 되고, 자(子)를 더하여 존(存)이 되었다. 

존재(存在)한다는 것은 신성한 것으로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