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직(職)/책 만드는 일

롱테일 대 팬덤, 출판의 경우

롱테일에 대해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이건 기본적으로 제조업 모델이 아니라 유통업 모델이다. 예스24나 알라딘 같은 서점의 전략이다.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꼬리에서 판매를 모으고 또 모아서 수익을 남기는 것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규모로도 아마 쉽지 않을 것 같다....ㅜㅜ 

꼬리 부분은 마케팅 비용이 들지 않고 출고율 등은 높으므로, 대량으로 끌어모으면 마케팅 비용도 많이 들고 판매도 많이 되는 베스트셀러만큼 이익이 많이 남을 수 있다. 창고에 모든 제품을 쌓아 두어야 하면 당연히 이런 경제가 불가능한데, 데이터베이스로 일단 판매한 후 나중에 생산하거나 입고하는 디지털 경제에서는 롱테일이 작동 가능해진다.  (크리스 앤더슨)

물론, 전자책이면 영원히 가능하다. 아마존이 단기적으로 손해 보고라도 전자책을 하는 게 유리한 이유다. 물론, POD를 하자고 하는 이유도 롱테일 경제를 작동시키는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롱테일에 가까운 학술 서적, 전자책 등은 협상력만 있다면 출고율을 가능한 한 높이는 게 유리하다. 가령, 80% 이상이라도.

일단, 롱테일이 작동하면, 종이책 스테디셀러나 중박 등은 점차 무의미하다. 롱테일 규모에선 애매하면 창고 비용이 누적되어 이득이 줄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라리 서점 입장에선 출판사랑 협조해 광고를 태워 빠르게 소진시킨 후 롱테일 영역으로 넘기는 게 낫다. 그래서 그렇게 한다. 짧은 베스트셀러가 수없이 등장하는 보이지 않는 원인이다. 물론, 이른바 베스트-스테디셀러들은 논외다. 

롱테일 구조 아래에서는 제조업이 큰 이익을 축적하는 건 우발성 외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사 우연한 베스트셀러를 냈더라도 장기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사업을 하면, 이익률이 감소하면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먹고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면 자본은 자꾸 다른 일을 하고 싶어진다. 가령, 건물주라든지, 건물주라든지, 건물주라든지..... 결국 출판 부문에서는 개발비 투여가 정체되고, 임금 고착화에 따른 인력난에 시달리면서...ㅜㅜ (안분지족 출판은 잘하면 가능해, 이것이 1인 출판사 증가 원인 중 하나이다. 롱테일 입장에선 상관없다. 이론적으로 자꾸 롱테일 책이 늘어나니까.)

정보 사회에서 롱테일 구조의 형성을 막는 건 아주아주 어려운 일이다. 일단 롱테일 구조가 형성되면, 책을 내고 나서 독자를 확보하는 비용이 점점 책을 내기 전에 독자를 확보하는 비용보다 비싸진다. 책은 더 많이 나오고 데이터베이스에는 끝없이 쌓이는데 유통 구조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점은 롱테일이 유리하므로, 논리적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거나 빨리 롱테일로 넘기는 쪽이 유리하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롱테일로 넘기거나 유통 비용 외의 온갖 비용을 지불해서 (각자 생각한 규모로) 단기 대량 판매를 노릴 수밖에 없다. (가령, 굿즈라거나 저자와의 만남이거나 특별판이거나 협찬비이거나 광고비이거나....) 

따라서 롱테일 구조에서 판매되는 것 말고, 제조사는 별도의 수익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팬덤이다. 책을 내기 전에 독자를 확보하는 비용을 들이고, 모아들인 독자를 이용해서 콘텐츠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하나의 콘텐츠를 이용한 최대 수익 구조를 출판사 스스로 힘으로 실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