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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읽기에 대하여

혼자 책 읽는 시간(니나 상코비치)


혼자 책 읽는 시간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새벽에 일어나 잠깐 아파트 주변을 거닐다 들어왔다. 바람이 끝없이 불어와 살갗을 만지고 지난다. 초여름 공기는 서늘하면서도 따뜻하다. 길 건너 공원에는 사람들이 쳇바퀴 돌듯 몇 바퀴째 주위를 걷고 뛴다. 군데군데 설치된 운동 기구로 몸을 단련하는 사람들, 새벽같이 길을 나서 지하철역 쪽으로 내려가는 사람들, 당현천 산책로에도 사람들이 가득하다. 

삶과 죽음을 둘러싼 거의 모든 일이 돈과 의사의 합의에 의해 결정되는 자본주의 의료사회에서 돈과 건강은 행복의 절대 조건이 된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강박이 사람들을 연속해서 습격하고, 우리는 행복을 위한 다른 모든 선택지를 상실한 채 오로지 건강 그 자체만을 숭배하게 된다. 기분을 바꾸어 보려고 나온 새벽 산책이 어느새 이런 잡스러운 생각들로 가득 차 버린다. 잠시 걷다가 기분 내키면 되는 대로 벤치에 앉아 가지고 나간 책을 읽다가 한 시간 정도 어슬렁대다 집에 들어온다.

니나 상코비치의 『혼자 책 읽는 시간』. 예전에 사 두었다가 읽지 않고 쌓아 둔 책더미에서 산책 가는 길에 눈에 띄어 아무렇게나 들고 나간 책인데, 의외로 문장이 아름답다. 번역자가 김병화. 이분의 번역 문장은 단단하고 품격이 있어 믿을 만하다.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언니가 죽은 후, 그 상처를 잊지 못하고 방황하던 니나가 책을 통해 자기를 치유해 가는 과정은 사랑스럽고, 공명이 되고,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치게 한다. 

혼자서 읽기는 속도와 노동의 문명에 저항한다. 일정과 계획으로 가득한 현대 도시의 피로에 대항한다. 이런 삶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스란히 미치게 되리라. 갑자기, 그대로 멈추어 뇌의 능력을 다해서 어딘가로 빠져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그러니까 무위를 체험함으로써 우리는 삶이 우리에게 낸 상처들을 핥아서 치료할 수 있게 되리라. 그러니까 책의 힘은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일으킨다. 좌절했을 때, 절망했을 때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에게 책을 권하는 사람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읽기를 통해서만 우리는 삶을 온전히 다시 세울 수 있다. 이런 평범한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해 준 니나에게 박수를!

읽으면서 쳐 둔 밑줄들을 틈이 나면 하나로 모으고 싶다. 책의 새로운 사용법을 깨닫게 해 준 책이다. 서문의 다음 문장에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리라.


자리에 가만히 앉아 읽을 필요가 있었다. 그때까지 3년 동안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보냈다. 나와 내 가족의 삶을 행동과 계획과 움직임,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 무엇으로 삶을 빽빽하게 채워도, 아무리 빨리 달리고 돌아다녀도, 슬픔과 고통에서 헤어날 수는 없었다.

달리는 걸 멈춰야 한다. 모든 일을 멈출 시간이다. 이제는 읽기를 시작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