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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문학의 마케팅, 어떻게 할까

이 글은 《기획회의》 419호(2016년 7월 5일)에 발표한 것이다. 문학 마케팅의 기본을 확인하고 이를 정리해 두려는 목적으로 썼다. 문학의 마케팅이 다른 책의 마케팅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겠으나, 작품은 그 비목적성과 작가 브랜드가 월등히 중요하다는 점에서 차별화 요소가 있다. 아래에 옮겨 둔다.




문학의 마케팅, 어떻게 할까


초여름 밤, 갑자기, 번개가 이루어졌다. 사실, 흔히 있는 일이다. 전화와 문자로 사발통문을 돌려 편집자들, 작가들, 기자들이 모여들고, 문학에 대한 온갖 이야기가, 여기저기 건너뛰면서, 활짝, 꽃을 피운다. 그러다 그날은, 어느새, 문학의 마케팅을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기억이 선명하다. 평소, 만드는 이야기는 많이 해도, 파는 이야기는 거의 안 한다. 마음에 상처 날까 무서우니까. 

“소설 마케팅? 잘 파는 비결 좀 알려 달라고, 해외 사례를 곁들이면서. 당연히 안 되지, 스무 해 노하우를 함부로 공개할 수 없지.”

농담으로, 이 말을 해 버린 편집자 A 탓이다. 허풍이라는 것쯤은 그 자리 있는 누구나 안다. 문학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란, 흐르는 강물에서 어쩌다 솟구치는 물결과 같아, 반복이 거의 있을 수 없다. 문학 작품의 판매를 결정하는 힘은 대부분 작품 자체로부터 나온다. 작품의 고유성, 개별성, 단일성은, 한 작품의 성공 요인을 가져다가 다른 작품에 적용하는 행위를 너무 어렵게 만든다. 문학 전문 출판사들이 판매 행위를 꼼꼼히 기록하고 평가해 사내의 무형 자산으로 축적하기보다 차라리 내외부에 좋은 편집자를 두고 작품 자체에 대한 감식안을 끌어올리는 일을 더 열심히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술을 맡았다 최근에 문학으로 건너온 기자 B가, 슬쩍,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이 농담을 두 번 입에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기사거리 하나 주는 셈치고, 이야기 좀 풀어 보시죠. 요즈음, 국내든, 해외든, 문학도 마케팅이 아주 다채로워지는 듯한데, 도대체 그 이유가 뭡니까? 자본주의 경제는, 과잉생산을 본질로 하잖아요. 제품의 시대에서 마케팅의 시대로 이행하는 건 모든 상품에서 필연입니다. 문학은 잘 몰라도, 음악이나 미술은 오래전에 이미 시장 흐름이 넘어갔어요.”

표현 매체의 특성상, 출판 영역에 들어와 있지만, 문학의 마케팅은 아주 독특하다. 전혀 어렵지 않다. 누구나 실행할 수 있고, 특별한 케이스도 드물다. 독자들 사이에서 저절로 입소문이 날 만큼 훌륭한 작품을 내는 게 전부일 뿐이다. 출판의 역사를 뒤져보아도, 전 세계 어디를 살펴보아도, 큰 줄기에서는 별다르지 않다. 예술의 세계가 가끔씩 그러하듯, ‘훌륭함’의 기준이 급변하면서, 일군의 작품들이 몰락하고, 새로운 작품군이 돌출하는 일이 벌어질 뿐이다.

“그럼, 먼저 기본을 확인해 볼까요. 전통적으로 문학 마케팅에는 세 가지 중심축이 있죠. 이건 전 세계에서 다 똑같아요. 이른바 ‘문단’이라고 불리는 전문가 영역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언론’이라고 하는 공론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독자’와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가. 이렇게 바꿔 물을 수 있습니다.

그전에, 누구나 알겠지만, 문학 마케팅의 작동 원리를 분명히 하죠. 문학은 철저하게 ‘체험 상품’이에요. 문학 작품은 구매하고 난 후에 읽는 것이 아니라, 읽고 나서 구매하는 거예요. 문학을 판매하려는 모든 마케팅 행위는, 사실, 독자의 체험을 어떻게 독특한 것으로 만들어 주느냐에 달려 있죠. 무엇보다도 작품 자체가 독자의 체험을 특별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 지점은 부동의 것입니다. 결국 문학 마케팅이란, 작품의 고유성을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어떤 독자도 작품을 읽지 않고, 문학을 구매하는 경우는 없다. 전부든 일부든, 일단 문학 작품을 읽은 후, 그 체험을 어떤 식으로든 지속하고 싶어서 책을 사는 것이다. 독자의 문학 체험은 아주 다양하지만, 재미, 흥미, 의미 세 가지로 크게 압축할 수 있다. 문학 마케팅은 결국 이 세 가지 체험을 어떤 식으로든 강화하려는 기획이다. 요즘은 마케팅 이야기만 하면, 귀가 쫑긋 솟는 사람이 많다. 초판을 넘기기 어려운 문학 시장의 오랜 불황 탓이다. 중쇄 좀 찍었으면 좋겠다는 하소연이 부지기수다. 다른 출판사에 다니는 후배 C가 말을 덧댄다. 

“선배, 공자님 말씀 그만하고, 문학 작품의 언론 홍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떤 걸까요?”

분위기가 살짝 뜨거워진다. 이목이 쏠리면서, A의 목소리가 조금 내려간다. 공자님 말씀 말고 덧붙일 게 별로 많지 않다. 말을 괜히 꺼냈다 싶은 표정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야기한다.

“문학 작품은 본래부터 ‘미디어셀러’라는 특징이 있어. 미디어의 종류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다른 미디어의 도움 없이 문학 작품이 독자들 관심을 끄는 건 아주 어려워. 원리적으로 작품은 어떠한 직접적 필요도 갖고 있지 않으니까. 제3자를 통해 작가의 창조성과 편집자의 감식안을 공적 이해관심으로 바꾸는 과정이 필수적이지. 작품성이라는 필수적인 요소는 괄호 쳐 두고, 언론의 관심을 끌려면 무엇이 가장 우선일까. 내 생각에는 세 가지야. 첫째, 작가의 지명도. 둘째, 투입 자본 규모. 셋째, 작품의 집필 동기. 편집자로서 가장 깊게 고민할 지점은 아마 세 번째겠지. 흔히 작가를 소개할 때, 작품의 줄거리나 문학적 의의 중심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외의 문학 출판사들은 철저하게 ‘작가가 왜 이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 중심으로 접근하지. 작품을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사연 있는 인생 이야기는 독자들 입장에서 흥미로우니까.”

새로운 자료에 기반을 둔 역사소설 같은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문학작품은 단순히 줄거리만으로 사람들 관심을 끌 수 없다. 문학의 경우, 책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큰 문학적 사건이다. 문제는 작품을 읽고 난 후에야 그 대단함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작품의 전파는 초기가 가장 어렵고 힘이 든다. 출판 마케팅을 집대성한 크레머 같은 사람은 문학작품의 마케팅에서는 작가가 ‘최고의 마케터’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계약 단계에서부터 작가의 출간 후 활동을 어떻게 마케팅에 반영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라고 말한다. 작품의 창작을 둘러싼 호소력 있는 스토리 개발은 당연히 필수다. 해외 번역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단순 판매정보나 수상기록보다는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벌어진 휴먼 스토리가 더 호소력이 있다. 작가 D가 말을 엮는다. 

“작가의 활동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거야? 요즈음은 책을 내면, 너무 많이 불려 다니는데. 판매에 반드시 도움이 되는가 싶기도 하고.”

D는 데뷔한 지 스무 해 정도 되는 중견이다. A와는 여러 책을 출간하면서 함께 각종 작업을 했다. 작품성은 높지만 독자가 좀처럼 붙지 않아, 한때 대중성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 꾸준히 질 좋은 작품은 쓰다 보니, 이제는 3000명 정도 고정팬이 생겨서 무난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구름은 잔뜩 끼었으나 그동안 비가 오지 않았지만, 씨앗이 마련되었으니 언젠가 폭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A가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문학 편집자 입장에서, 작가와 마케팅을 이야기하는 건 언제나 까다로운 주제다. 한마디 어긋난 말로, 자칫 관계 자체가 엎어질 수 있다.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문단 공간은 작품을 독자들에게로 퍼뜨릴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장소지. 작가, 편집자, 비평가, 서점 직원, 사서, 교사, 전문 기자 등으로 이루어진 이 공간의 멤버들은 사회 전체로 뻗어 있는 문학 네트워크의 그물코에 위치해 있는, 문학 담론의 생산자이자 확산자니까. 특히 이들은 작품 자체의 질에 주로 주목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장기적 생존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 작가와 독자가 직접 연결되어 소통하는 소셜 미디어의 확산에 따라 이들의 영향력이 다소 줄어들기는 했지만, 학교, 도서관 등 문학 작품의 가치 전파에 거멀못이 되는 사회물리적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정말 힘이 세지. 여기에서 어떻게 이야기되느냐에 따라서 추천도서, 문학상 등 작품의 질적 성과에 대한 사회적 지표를 얻으니까, 그리고 그게 장단기적 판매로 이어지니까 한 작가가 자기 문학의 고유성을 문단 내부에 어떻게 퍼뜨릴 것인가, 그리고 그 일을 편집자가 어떤 식으로 조정해 갈 것인가는 출간 전후에 필요한 핵심 논의 대상이지. 물론 눈치를 볼 필요야 없겠지. 작품이란 그 자체로도 위엄이 있어서 저절로 공론성을 불러일으키거든.

두 번째로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미디어를 소유한 요즈음에는, 독자와 어떤 소통을 만들어 내느냐가 점점 중요해지지. 문학의 마케팅도 점차 이 부분에 집중하는 쪽이야. 최근에는 블로그, 팟캐스트,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를 많이 이용하지만, 가장 중요한 수단은 당연히 강연회, 낭독회, 사인회 등 독자와 직접 대면해서 만나는 행사들이지. 작가가 독자를 만나는 접속 행위는 그 자체로 문학적 사건이지. 이 행사를 어떻게 세심하게 기획하느냐에 따라 한 출판사의 마케팅 역량을 짐작할 수 있어. 독자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물리적 접촉을 생성하고, 사진이나 문서 등으로 기록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건, 한 독자를 작가의 팬으로 만들어 내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니까.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어. 사진 등 현장 기록 자체가 갖는 홍보 효과가 일차적이고 중요하지만, 그 효과 유무에 지나치게 매몰되어선 안 돼. 사진 하나 온라인에 올린다고 곧바로 책이 팔리는 건 물론 아니지.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행사 기념사진이나 강연 내용이나 감사 편지를 보내 주는 등 마케팅 행위를 통해 독자의 데이터베이스를, 적어도 독자의 관심을 확보하는 거야. 해외의 문학 마케팅에서 가장 열을 올리는 지점이지. 사실 이런 행사를 하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고. 작은 연결을 기회 삼아 커다란 연결을 만들려면, 독자 정보를 직접 관리할 수 있어야 하거든. 이번에만 작품을 쓸 것도 아니고, 책을 한 번만 출간할 것도 아니니, 독자 정보가 있으면 다음 작품을 출간했을 때 맨땅에서 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되지. 비독자를 독자로 만들고, 독자를 팬으로 만들어, 장기적으로 관리해 가는 것이 문학의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작가든, 출판사든 말이야.”

물론 이런 마케팅 방식은 영미나 유럽 쪽에서 더 유리하다. 한 작가가 한 편집자나 한 출판사와 계속 일하지 않는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출판사 주도로 작가의 팬덤을 이룩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 팬덤을 이룩해 봐야 소용없기도 하다. 자칫하면 다른 출판사 좋은 일만 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문학의 마케팅은 저자의 브랜드 가치를 장기적 관점에서 끌어올리는 쪽보다는 굿즈 제공 등 온갖 기기묘묘한 이벤트를 통해서 한 작품의 단기 판매에 치우치는 점이 없지 않다. 물론 일정 수준의 판매량을 기록하지 못한 작가가 다음 작품에서 주목받는 경우는 드물므로 이런 단기 전략도 불가피하기는 하다. 그러나 한국 문학 시장의 경우, 지난 십여 년 동안 문학 작품의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나서 발견성 경쟁이 너무나 심각한 상황이다. 훌륭한 작품이 나왔다고 해도 독자들에게 거의 주목받지 못한 채 조용히 퇴장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 판매 모델은 결국 문학 시장의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문학의 마케팅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독자 체험은 뒤늦게 확산되는 경우가 많아서, 단기 수익을 노리는 투기적 자본 활동에는 그다지 유리하지 않다. 돈만 쏟아 붓고 성과가 없는 일이 많아지자, 시장 자체에 대한 투자 자체가 위축되는 상황이다. 서점에서 MD로 일하는 E가 말한다. 

“그러면 작가와 출판사 관계가 장기적으로 맺어지지 않은 한국 같은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면 최선일까요? 이런 답답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은 없나요.” 

A는 침묵한다. ‘연대’라는 준비된 답은 있지만, 말을 꺼내기 쉽지 않다. 한국 출판에는 함께 길을 잡아 공동 목표를 달성하는 경험이 축적되지 않았기에, 자칫 잘못하면 자사의 이익을 위해 다른 출판사들이 동원된다는 오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사람이 연신 재촉하자 A가 어쩔 수 없이 운을 뗀다. 

“작품 하나하나보다 문학 자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이 점은 프랑스한테 배우면 좋겠죠. 문보배 씨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한 해 동안 1000종가량 문학 신간이 나오는데, 그중에서 60% 정도가 이른바 ‘문학의 시기’에 쏟아져 나옵니다. ‘문학의 시기’란 프랑스 사람들이 바캉스를 떠나는 7월부터 11월까지 넉 달 동안 서점과 출판사가 힘을 합쳐서 온갖 문학 행사를 집중해서 진행하는 시기를 말합니다. 일종의 문학 출판사들의 연합 마케팅 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는 8월 20일까지 주요 신간을 쏟아 냄과 동시에 프랑스 전역에서 각종 행사를 기획해 문학 붐을 일으킵니다. 이 시기 내내 권위 있는 문학상들도 연속해서 후보작을 발표하고, 각종 이벤트를 진행한 후 9월 말부터 10월 말에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시민들의 문학적 관심을 같이 끌어올립니다. 가령, 공쿠르 상의 경우, 예비 후보는 9월 3일에, 결선 작품은 10월 6일에, 수상작은 10월 27일에 발표함으로써 ‘문학의 시기’를 마감하고, 그 여파를 겨울 시즌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했죠. 이 시기 동안 후보작에 오른 작품의 해당 작가들은 서점에서 직접 독자를 만나는 게 일반적입니다. 프랑스 문화부도 행사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 덕분인지 프랑스에서는 문학 작품이 전체 출판 시장의 40% 정도를 점유합니다. 문학 출판에 관련된 모든 주체들이 힘을 합쳐서 문학적 축제의 장을 이룩하는 거죠. 궁극의 독자 서비스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르몽드》는 문학의 시기를 일컬어 ‘열린 시기’라고 이야기합니다. 한 작가들의 유명세가 다른 작가들의 등장을 가리지 않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이런 연대를 통해서 기울어져 가는 한국문학을 다시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요.”

밤이 이슥해졌다. 우연히, 벌어진 마케팅 이야기도 덧붙일 말이 별로 없다. 사족일 뿐이다. 이제 술자리에 집중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다시 작품을 쓰고 만들고 읽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