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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한시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장연우(張延祐)의 한송정(寒松亭)에서 부르는 노래(寒松亭曲)


한송정(寒松亭)에서 부르는 노래


장연우(張延祐, ?~1015)


한송정 밤에 달빛은 밝고,

경포대 가을은 물결이 고요하네.

슬피 울며 오락가락하나니

믿음 있는 갈매기 한 마리가.


寒松亭曲


月白寒松夜, 

波安鏡浦秋. 

哀鳴來又去, 

有信一沙鷗.



이 시는 지명(地名)이 들어 있기에 배경 지식이 없으면 해독되지 않습니다. 첫째 구절의 한송(寒松)은 ‘차가운 소나무’가 아니라 강릉에 아직도 남아 있는 정자인 한송정(寒松亭)을, 둘째 구절의 경포(鏡浦) 역시 ‘거울 포구’가 아니라 강릉의 호수인 경포대(鏡浦臺)를 뜻한다는 것을 모른다면 엉뚱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 구절에서 월백(月白)은 ‘달빛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구름 한 조각 없는 맑은 밤하늘에 달이 휘영청 떠올라 교교히 비추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밤은 달빛이 유난히 희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달이 밝다’고 새기면 됩니다. 둘째 구절에서 파안(波安)은 바람이 불지 않아 물결이 잔잔한 것을 가리킵니다. 경포는 본래도 물결이 잔잔해서 마치 거울 표면 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이 밤은 바람조차 없으니 물결이 고요해서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첫 두 구절은 정적(靜的)입니다. 이 고요는 임이 곁에 있다면 한없는 기쁨이요, 임이 곁에 없다면 시름을 일으키는 고요입니다. 풍경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건만,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셋째 구절에서 이 고요 속으로 한 줄기 움직임이 날아듭니다. 끼룩끼룩 소리가 들리고, 무언가 왔다 갔다 합니다. 넷째 구절을 보니 사구(沙鷗), 즉 갈매기입니다. 예전에 임과 함께 왔을 때에도 갈매기는 눈앞을 오락가락했지요. 그때는 그 소리가 노랫소리 같더니, 지금은 가슴을 찢는 듯 슬프네요. ‘애(哀, 슬픔)’ 한 글자가 시 전체의 정서를 압축합니다. ‘희(喜, 기쁨)’였다면 사랑의 기쁨을 전하는 시였을 터인데, ‘애’로 변해서 이별의 슬픔을 읊조리는 시가 되었네요. 넷째 구절의 유신(有信)은 ‘신의 있다’는 뜻입니다. 한낱 갈매기조차 다시 오겠다던 약속을 지켰는데, 임은 어는 하늘 밑으로 떠나가서 돌아오지 않을까요. 야속함에 눈앞은 흐려지고 가슴은 미어지네요.

이 시는 고려 가요를 한시로 옮겨 적은 것입니다.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노래의 유래만 전할 뿐 그 가사는 전하지 않습니다. 그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누군가 이 노래의 가사를 거문고 밑바닥에 (아마도 이두나 향찰로) 적었고, 그 거문고가 이런저런 사유로 중국까지 흘러갔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그 뜻을 몰라 궁금해 하다가, 때마침 사신으로 온 장진공(張晉公, 장연우)한테 보여 주니, 장진공이 그 가사를 풀어서 「한송정곡(寒松亭曲)」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연입니다. 

고려 때 문신인 장연우는 경종(景宗) 때 음서로 출사했습니다. 거란이 침략했을 때 현종(顯宗)을 나주(羅州)까지 호종한 공로로 호부상서(戶部尙書)까지 지냈으며, 강조(康兆)의 변 이후 조정 실권을 잡은 무신들에 맞서다 한때 유배를 가기도 했습니다. 사후에 상서우복사(尙書右僕射)로 추증되었습니다. 

조선시대 강릉의 명기 홍장(紅粧)은 이 시를 바탕으로 한 시조를 지어 남겼습니다. 김수장(金壽長)의 『해동가요(海東歌謠)』에 실려 있습니다. 


한송정(寒松亭) 달 밝은 밤에 경포대(鏡浦臺)에 물결 잔 제

유신(有信)한 백구(白鷗)는 오락가락 하건마는

어떻다 우리의 왕손(王孫)은 가고 아니 오는가. 


가요에서 한시로, 한시에서 다시 시조로, 어찌 보면 노래의 운명이 기구합니다. 하지만 노래에 담긴 마음이 얼마나 절절하기에 이렇게 많은 시인들이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하려 했을까요. 밤늦게까지 잠 못 이루면서 호숫가를 거니는 마음이여, 갈매기 우짖을 때마다 가슴은 찢어지나니, 눈앞의 물결이 잔잔할수록 마음속에는 더욱 풍랑이 거칠어졌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