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심원(天尋院) 벽에 부쳐서
이인로(李仁老)
손님을 기다렸는데 손님은 아직 이르지 않았고,
스님을 찾았는데 스님 역시 보이지 않네.
남아 있기는 오직 숲 너머 새 한 마리,
고이고이 권하시네, 술병을 들라고.
題天尋院壁
待客客未到,
尋僧僧亦無.
惟餘林外鳥,
款款勸提壺.
지난주에 이어 이인로의 시를 읽겠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연인에게서 사랑할 이유를 찾아내듯이, 술꾼 역시 언제, 어디서든 술 마실 이유를 찾고야 말지요. 이 작품은 천심원(天尋院) 벽에 써 붙인 시입니다. 천심원은 고려시대 때 개성 바깥에 있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길 떠나는 이들을 배웅하면서 정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화자는 천심원에서 홀로 술병을 기울입니다. 기다리는 손님은 아직 이르지 않았고, 천심원을 관리하는 스님 역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멀리 숲 너머에서 새 한 마리가 연신 울어 대는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그런데 새 우는 소리를 자세히 들으니 제호로(提壺蘆), 제호로(提壺蘆) 하고 웁니다. 제호로는 직박구리 울음소리를 한자로 옮겨 적은 것입니다. 재미난 것은 ‘제호’를 뜻으로는 ‘술병을 당기다’, ‘술병을 들다’로 풀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직박구리 울 때마다 술 생각이 점차 간절해지니 비록 손님이 오지 않았더라도 어찌 한잔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리 애절히 울면서 고이고이 술을 권하는데 말입니다.
‘관관(款款)’은 ‘간절히, 정성스럽게’라는 뜻입니다. 굴원의 『초사(楚辭)』 「복거(卜居)」에서 유래한 표현입니다. 복거(卜居)란 살 만한 곳을 점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뜻으로 풀 수 있습니다. 굴원은 쫓겨난 지 세 해가 넘도록 임금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지혜를 짜내고 충성을 다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괴로워한 끝에 굴원은 태복(太卜) 정첨윤(鄭詹尹)을 찾아가 자신의 씁쓸한 심사를 토로하고 점을 치게 합니다. ‘관관’이라는 표현은 굴원의 질문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정녕 간절하고 정성스레 살면서 순박함으로써 충성을 다해야 할까요, 아니면 오고 가는 대로 보내고 맞이하면서 이 곤궁함을 없애야 할까요(吾寧悃悃款款朴以忠乎, 將送往勞來斯無窮乎).” 절절합니다. 우리말로는 ‘고이고이’로 옮기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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