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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무대인가요, 지하철역 수놓은 함량 미달 詩(한국일보)


한국일보에 드디어 지하철 시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드디어라고 말한 것은 이미 문단에서는 이에 대한 불만이 아주 심했기 때문이다. 현재 지하철 스크린 도어 곳곳에 게재된 시들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이 문제는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질 떨어지는 시들이 노출되면, 문학이 활성화되기는커녕 오히려 그 역작용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문학과 시민의 삶터를 이으려는 이러한 노력들 자체를 폄훼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격려하고 지원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물론 지금과 같은 방식은 곤란하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는 쪽으로 움직여야지 그 반대쪽은 곤란하다. 가령, 이럴 바에야 차라리 없애라는 둥...


이 같은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생존한 국내 문인들의 시는 지하철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역 문인의 경우 문단 내 친분이나 권력 문제로부터 자유롭기 힘들기 때문이다. 장은수 문학평론가는 “살아 있는 시인들의 시를 싣기 위해 공공장소를 대여하는 건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며 “애초에 나눠주지 말아야 할 것을 나눠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반적인 내용의 이해를 위해 아래 전문을 소개한다. 




아마추어 무대인가요, 지하철역 수놓은 함량 미달 詩


서울시, 스크린도어 4841곳에 게시

"상당수가 질 논하기 힘든 수준"

신생 단체 작품 등 선정 기준 부적절

단체들 장사 수단으로 악용도


직장인 A씨는 퇴근길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다가 스크린도어에 적힌 시를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문학을 깊이 공부한 적은 없지만 학창시절 배운 김소월, 서정주의 시만 떠올려 봐도, 시의 범주에 넣기엔 한참 못 미치는 글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친구들과 이야깃거리로 삼기 위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있는 그의 뒤에서 한 대학생이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저게 뭐 좋은 시라고 사진까지 찍고 있어?”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의 시가 ‘함량미달’ 작품들로 도마에 올랐다. 서울시가 주관하는 지하철 시 사업은 2008년부터 시작, 2015년 8월 현재 299개역의 4,841개 스크린도어에 시가 게시돼 있다. 그러나 “바쁜 일상에 쫓기는 시민들에게 문학을 통해 잠시나마 정서적 여유를 제공한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수준 낮은 작품들 때문에 ‘부작용’만 일으킨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수백 만원에서 수천 만원에 이르는 지하철 스크린도어의 광고 수익을 포기하고 시민의 문학적 소양에 투자하려는 좋은 의도가, 부적절하고 안이한 선정 방식 때문에 아마추어 문인들의 뽐내기에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지하철 시 중 상당수는 낡고 낡은 생각과 진부한 표현으로 질을 논하기 힘든 수준”이라며 “공공장소에 시를 올릴 때는 적어도 표준이 될 만한, ‘시란 이런 것이다’고 할만 한 작품을 걸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한 시인은 “대부분의 시민에겐 이게 일상에서 접하는 시의 전부일 텐데, 시에 대한 편견을 강화할 걸 생각하면 볼 때마다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좋은 시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인간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는 게 통상 문학의 미덕이라고 할 때 지하철 시 중 이에 근접한 작품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시를 선정하는 기준이다. 서울시의 시 선정 기준은 “일반 시민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용기나 위로 등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시가 선호된다. 폭력적인 표현이나 부정적 내용이 담긴 시는 문학적으로 의미가 있더라도 배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에 대해 함성호 시인은 “시의 기능을 위안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이미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평소와 다른 생각을 갖게끔 하는 게 시인데, 이의나 반발이 나오는 게 정상적”이라며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시를 무난한 것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시를 선정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지하철 시는 7개 문인단체 회원들의 작품과 시민 공모작 중 문학ㆍ교육ㆍ언론계 인사들로 구성된 심사위원 11명이 가려 뽑는다. 시민 공모작은 그렇다 쳐도 문인단체로부터 받은 시의 수준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문인단체 관계자는 “7개 단체 중 2~3곳을 뺀 나머지는 거의 활동이 없거나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신생단체”라며 “한 단체라도 뺄 경우 공평하지 않다는 반발이 나올까 봐 서울시가 7개 단체에서 똑같이 시를 받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시 측에 검증되지 않은 단체는 제외해야 한다고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름 있는 단체라도 좋은 시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한 문학평론가는 “지하철 시가 홍보효과가 있다 보니, 잘 쓰는 시인보다는 시집을 못 내는 시인에게 동정하는 마음으로 기회를 주는 경향이 크다”고 귀띔했다.

지하철의 거대한 홍보효과는 장사수단으로 전용될 위험도 있다. 올 2월 창립하자마자 지하철 시 원고청탁 단체로 선정된 서울시인협회는 협회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정기구독자에 한해 회원 자격 및 시 응모 자격을 주고 있다. 협회 측은 “회비가 없다”고 말하지만 연 10만5,600원의 월간지 구독료가 사실상 회비이자 응모비다. 이 협회 민윤기 시인은 6월 ‘지하철 시 특별설명회’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써야 지하철 시에 선정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족집게 강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같은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생존한 국내 문인들의 시는 지하철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역 문인의 경우 문단 내 친분이나 권력 문제로부터 자유롭기 힘들기 때문이다. 장은수 문학평론가는 “살아 있는 시인들의 시를 싣기 위해 공공장소를 대여하는 건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며 “애초에 나눠주지 말아야 할 것을 나눠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지하철을 시 발표장으로 만들 게 아니라, 작고한 시인의 시나 외국의 시, 옛 시조, 기발표된 시 중 엄선해서 고르는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일반인들이 시를 발표하는 데 의의를 둔다면 시민들이 만드는 페이지라고 성격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