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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2014년 출판산업통계로부터 출판사가 생각할 것들



2014년 KPIPA 출판산업동향이 지난 8월 5일 발표되었다. 보통 이런 자료가 나오면 다른 업계에서는 그 내용을 분석해서 이후 사업의 지침으로 삼느라 바쁘지만, 출판산업에서는 심지어 기획자들조차 이런 통계들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물론 통계 자체의 신뢰도 문제도 있겠고, 산업 전반의 동향보다는 독자들의 구체적 니즈를 더 주목해야 하는 책이라는 상품의 특성 탓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장기 통계 자료들은 최소한 출판산업의 움직임에 대한 장기 추세를 제공하므로, 출판산업의 종사자라면 반드시 챙겨 읽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래의 글은 출판사의 입장에서 이 자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 본 것이다. 자료집에 실려 있지만, 따로 블로그에 올려 둔다.



KPIPA 출판산업 동향(2014 하반기).pdf



1. 개관 


도서정가제 실시 직전 출혈적 경쟁의 여파로 

하반기 신간 발행종수 상반기 대비 1500종 감소

2014년 11월 21일, 도서 할인율을 최대 15% 이내로 제한하는 ‘도서정가제’가 전면적으로 실시되었다. 이에 따라 가격 할인을 중심으로 한 도서 마케팅 방식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출판사들은 독자들에게 좀 더 문화적인 형태로 가치를 제공할 임무를 새로 부여받았다. 

‘도서정가제’라는 환경에서는 무엇보다 독자들의 주목을 끌 수 있는 질 높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출판사의 최우선적 의무로 된다. 뿐만 아니라 가격에 의한 노출 전략을 넘어서서 앞으로 출판사가 독자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에 따라 기존 서점 채널을 이용한 판매 방식 외에도 회원제, 오픈 마켓, 강연 결합 등 도서 직접 판매 모델을 비롯해 온오프라인 커뮤니티와 장단기로 제휴하는 등 책과 독자를 연결하는 다종다양한 비즈니스모델이 출판 산업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콘텐츠 전략과 마케팅 전략을 적절히 결합한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을 통해 연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미래 전략의 수립에 온 역량을 쏟아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물론 도서정가제는 정착 과정의 혼란을 거쳐 2015년 하반기 이후에야 출판 산업에 본격적 영향을 끼치면서 실질적으로 정착할 것이다. 출판계에서 오랫동안 염원했던 제도이니만큼 선순환을 통해 안정적으로 제도가 실시될 수 있도록 정부를 필두로 출판계 전체가 여러모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단 2014년 하반기 도서 생산에는 도서정가제의 영향이 충분한 형태로 반영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작년 9월 이후에는 정가제 실시를 앞두고 재고 도서에 대해 정가의 90%에 이르는 출혈 할인이 기승을 부리면서, 신간도서의 서점 내 노출 부족과 그에 따른 판매 저하를 우려한 많은 출판사에서 신간도서 발행을 정가제 실시 이후로 미루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에 따라 2014년 하반기 신간도서의 발행량(32,781종)이 상반기 대비 4.6%(1,500종) 감소하는 등 도서 생산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 같다.


2014년 신간도서 발행종수 67,062종,

서적 문구 판매액 추이 15.1포인트 감소

그러나 2014년 한 해 전체를 놓고 보면, 신간 도서의 발행종수는 총 67,062종에 이르렀다. 이는 전년도 발행종수 61,548종에 비해 무려 8.2%(5,514종)나 증가한 수치로 교육, 문학, 인문, 과학, 실용 등 대분류만 볼 때에는 출판 전 분야에 걸쳐 모두 발행 종수가 늘어났다. 한편, 통계청 <서비스업 동향조사>의 서적 문구 판매액 추이의 불변지수 기준으로 15.1포인트나 감소하고, 역시 통계청의 <가계 동향 조사>의 오락·문화비에서 가구당 서적 구입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2008년 이래로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면서 11.6%까지 떨어진 것을 감안할 때, 실제 도서 판매량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생산의 지속적 증가와 소비의 지속적 축소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러한 공황적 상황은 현재 한국 출판이 맞이한 위기를 명료한 숫자로 보여 준다.



2. 동향 읽기


인문서 및 자연과학은 증가, 

소설, 유아, 여행은 소폭 감소

경제경영, 외국어는 대폭 감소

2014년 하반기 발행 종수를 분야별로 살펴보면, 인문서 분야(16.0%)와 자연과학 분야(12.3%)의 지속적 상승이 도드라져 보인다. 이는 모바일로는 무료로 가벼운 콘텐츠를 소비하고, 유료로는 깊이가 부여된 구조적 콘텐츠를 소비하려는 독자들의 열망과 맞아떨어진다. 혼란한 세상에서 세계의 근원적 의미를 탐구하는 인문학과, 급변하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첨단의 지적 탐색을 제공하는 자연과학의 영역은 그동안 대중적 접근이 아직 충분하지 않은 만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분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2014년 전체를 대상으로 출판 산업 각 분야를 살펴보면, 소설(-1.5%), 유아(-0.7%), 여행(-0.5%) 등이 소폭 감소했으며, 경제/경영(-6.1%) 및 외국어(-25.0%) 분야의 경우 전년 대비 감소세가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중 소설 분야의 축소는 대중문학 독자의 모바일 이동과 본격문학의 장기 침체를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소설은 비독자를 독자로 끌어올려서 출판 전체 분야로 퍼뜨리는 독서 사관학교 구실을 해왔다는 점에서, 소설 생산의 감소는 실제로 출판 산업 전체의 장기적 침체 기미를 보여주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극히 우려되는 현상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문학의 대중적인 확산 통로를 만드는 시급한 대책이 빠른 시일 내에 논의될 필요가 있다. 경제/경영 분야의 축소는 회사를 통한 자기표현이라는 성공신화가 후퇴하고 인문적 지식의 축적을 통한 자기성장이 시대의 트렌드로 부각된 현실을 반영하고, 유아동 분야의 축소는 인구감소의 충격이 서서히 다가오는 증거로 보이며, 여행 분야의 축소는 모바일 콘텐츠 소비의 확산과 직접적 연관을 맺고 있다. 이 분야들에서 콘텐츠/마케팅 전략의 장기적인 재조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것이다.


학습 출판 분야는 1.2% 성장, 

단행본 출판 분야는 2.1% 감소

출판 산업의 전체 생산량 중 4분의 1이 넘는 비중을 교육 분야가 차지한 것은 해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다. 하지만 출판 산업 중 다른 분야의 매출이 축소되었는데도 교육 분야의 매출만은 오히려 상승한 것은 주목할 현상이다. <2014 콘텐츠산업통계>에 따르면, 2013년 출판 산업 전체의 매출 규모는 약 20조 7997억 원이다. 이 수치는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했으며, 2012년에 비해서도 소폭으로 감소했다. 그런데 일반 단행본 출판이 주로 포함되어 있는 ‘서적출판업’은 매출액이 2013년 기준 약 1조 2,48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1% 감소한 반면, ‘교과서 및 학습서적 출판업’은 약 2조 7,56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2% 증가했다. 이는 가구당 서적 구입비가 줄어드는 환경에서도 각종 교육도서의 경우에는 독자들이 이를 필수재로 인식함을 드러낸다. 따라서 오늘날 급격히 확산 중인 모바일 영역을 비롯한 온오프라인 환경에서 교육 또는 학습과 출판을 결합해서 출판의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적극적으로 탐구할 이유를 제공한다. 이 분야에서 시도된 파괴적인 혁신과 거기에 이어지는 수많은 파생 사업은 오랫동안 출판에 신선한 먹거리를 공급해 왔다.


전자책 인증 종수 3년 연속 감소

2014년 출판 산업의 생산 측면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항은 전자출판물의 인증 종수가 총 368,404종으로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2014년 하반기 인증 종수는 223,606건으로 2013년 동기의 179,679건에 비해 24.4% 증가했지만, 한 해 전체로 보았을 때에는 2012년 505,215종으로 절정에 이른 이후 해마다 축소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출판계의 꾸준한 투자로 기존의 종이책 서적 중 전환 가치가 높은 서적들이 이미 대부분 전자책으로 전환이 이루어진 결과이기도 하고, 동시에 전자책 판매량이 전체 서적 판매량의 3% 내외에 그치는 등 사전 예측보다 성장세가 가파르지 않은 점을 반영해 관련 업계 등에서 투자를 축소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이책 중심의 출판 산업이 쇠퇴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전자책은 출판 산업의 대안 중 외부 자본까지 투여된 가장 강한 시도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영미 출판계의 경우 25%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성장세가 가팔랐다는 점에서, 세 해째 계속된 전자책 생산 위축이 출판 산업의 미래까지 함께 어둡게 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이에 대한 종합적, 입체적 재점검이 긴급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대형 출판사 감소, 소형 출판사 증가로 ‘분자화’ 현상 더욱 심화

2014년 1종 이상 발행 출판사 6,131곳 6.8% 증가, 101종 이상 발행 대형 출판사 87곳 1.1% 감소 

한편, 2014년 하반기에 들어 41종 이상을 출판하는 중대형 출판사가 점차 줄어들고, 출판 산업 전체가 소형 또는 1인 출판 규모로 한없이 세포분열 하는 ‘분자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었다. 이는 성숙기를 지나서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개발하는 모험을 즐겨야 하는 산업 전환기에 접어든 출판 산업의 현황을 생각할 때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혁신적 콘텐츠 또는 사업 모델에 투자하려면 모험을 위협으로 느끼지 않을 정도의 일정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어 있다면 유리하기 때문이다. 

2014년 하반기에 1종이라도 도서를 발행한 출판사 숫자는 모두 4,613곳이다. 이중 10종 이내를 발행한 출판사가 전체의 86.4%인 3,984곳에 달하는데, 이는 2013년 하반기의 3,783곳에 비해 5.3%(201곳)가 증가한 수치다. 그나마 6~10종을 발행한 출판사는 –9.7%(-51곳)로 가장 큰 감소폭을 나타낸 반면에, 1~5종을 발행한 출판사는 다른 구간과 달리 7.3%(252곳)가 늘어나 전년 대비로 유일하게 증가했다. 출판시장의 구조적 불황과 도서정가제 실시에 따른 불확실성의 증가 등으로 신규 투자를 망설인 탓으로 보인다. 아울러 장기 불황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의 결과로 출판사 창업이 꾸준히 증가한 것도 중요한 한 원인일 것이다. 

2014년 전체를 살펴보아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2014년 동안 1종이라도 도서를 발행한 출판사 숫자는 2013년(5,740곳) 대비 6.8%(391곳)이 증가한 6,131곳에 이른다. 이중 101종 이상을 발행한 대형 출판사는 87곳으로 2013년 대비 1.1% 감소한 데 비해, 1종만을 발행한 출판사의 비율이 가장 높아서 무려 32.3%(1,983곳)에 달하며 이는 2013년에 비해서 무려 10.5%나 증가한 숫자다. 

발행종수만을 놓고 보자면, 대형 출판사들은 성장의 벽에 부딪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며, 신규 출판사가 계속 등장해서 한 해 소량의 책을 펴냄으로써 산업 전 분야에 걸쳐 시장경쟁은 점점 강화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중대형 출판사의 신규 투자를 활성화할 정책적인 대안을 내놓고, 클러스트 구축 등을 통해 소형 출판사 간 공동 협업을 늘려나가도록 함으로써 빠른 성장을 유도하는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게다가 출판 산업에 뛰어드는 신규 도전자가 아직도 대부분 종이책을 생산해서 서점에서 판매하는 전통적 모델에 집중되는 것은 장기적으로 산업 발전에 좋지 않다. 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시험될 수 있도록 출판 벤처를 육성하는 데 각종 정책자금을 우선 배정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평균 발행부수(1,979권) -1.3% 축소, 

평균 정가(15,631원) 6.5% 상승, 평균 면수(272면) -1.4% 감소

독자 부담 증가, 도서 소비 위축 우려

대한출판문화협회 통계에 따르면, 2014년 발행된 신간 서적 신간 서적 1종당 평균 발행부수는 2013년 2,005권에서 2014년 1,979권으로 –1.3% 축소되었는데, 오히려 평균 정가는 14,678원에서 15,631원으로 6.5% 상승했으며, 평균 면수는 276면에서 272면으로 –1.4% 소폭 감소했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신간서적의 평균 판매부수가 줄어든 가운데 재료비, 인건비 등 각종 원가상승에 따른 출혈을 견디지 못한 출판사의 자구책으로 보이지만, 할인을 기본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하기 위한 관행적 고가 정책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도서정가제 실시 이후 추이를 일단은 지켜볼 필요가 생각하지만, 프로세스 혁신 등을 통한 원가절감 등 출판계의 집중적인 노력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3. 결어


서두에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앞으로 출판은 독자에게 어떤 혁신적 연결성을 제공하느냐에 따라서 눈부시게 진화할 것이다. 책(콘텐츠)과 독자를 연결하는 출판 산업의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는 방식은 현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영역으로까지 움직일 수도 있다. 

멤버십 비즈니스와 콘텐츠 큐레이션과 금융 서비스를 한꺼번에 결합한 출판의 형식이 방문판매다. 많은 출판사들이 이 혁신적 출판모델을 통해서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단행본식 질 높은 콘텐츠 생산 방식과 대형서점 체인의 진열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따로 또 같이 세계적인 고전들을 싼 가격에 독자들에게 서비스할 수 있었던 출판의 형식이 세계문학전집과 같은 문고형 시리즈물들이다. 역시 많은 출판사들이 이 파격적 출판모델을 통해서 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과거의 선배들이 위기를 헤쳐 간 방법들을 연구하고, 그 정신을 오늘의 산업 환경에 적용함으로써 새로운 산업적 비전을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