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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우리를 바꾼다 『뉴욕 3부작』의 세 작품에서 화자는 모두 누군가를 추적하고, 흔적을 관찰하며, 그 결과를 꼼꼼하게 공책에 기록한다. 글쓰기는 잊힌 자아를 환기할 계기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처음에 타인의 관찰로 시작된 기록은 사건 진행과 함께 묘하게 자신과 세계에 대한 기록으로 변해 간다. 블루의 말처럼, “길 건너에 있는 블랙을 염탐하는 일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저 남을 지켜보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켜보는 일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현재만 존재하는 뉴욕의 속도에 포섭된 후, 블루한테는 한순간도 자신을 돌아볼 때가 없었다. 블루는 말한다. “그는 지금껏 한 번도 자신의 내면을 이렇게 오래도록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물..
불평등과 특권층 불평등이 적을수록 사람들은 더 관대해지고 불평등이 심할수록 관대함이 사라진다. 마이클 루이스는 말한다. “불평등 자체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불평등은 소수의 특권층에게 화학반응을 일으켜서 그들의 뇌가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한다. 그러면 그들은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게 되고, 품위 있는 시민이 되기 위해 필요한 도덕적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특권층은 거울 속에서 자신의 고귀한 모습을 본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시급 14달러를 받고 식료품을 배달하거나 지하철을 청소하는 사람이 그런 경제적 운명을 겪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들은 똑똑하지도 않고, 훌륭하지도 않으며, 자기처럼 가치 있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이다. _ 스콧 갤러웨이, 『거대한 가속』, 박선령 옮김(리더스북, 2021..
난파한 세계에서 널빤지 하나씩을 붙잡고 우리는 흔히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다. 출항과 귀항, 정박과 운행, 폭풍과 잔잔함 등 항해의 여정에는 인생 전체가 압축적으로 형상화돼 있다.​ 바다는 한순간 삶을 파괴하는 무섭고 불확실한 운명을, 난파는 살면서 마주치는 끔찍한 비극들을 상징한다. 우리는 위험을 넘을 때마다 세파를 헤쳐간다고 생각하고, 쓰라린 실패와 마주치면 배가 뒤집혀 침몰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독일 철학자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난파선과 구경꾼』(새물결 펴냄)에 따르면, 호메로스, 탈레스, 루크레티우스, 몽테뉴, 파스칼, 볼테뉴, 괴테, 쇼펜하우어, 니체 등 사유의 대가들 역시 ‘삶은 항해’라는 은유에, 특히 난파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왔다. 호메로스가 오디세우스를 바다로 몰아넣어 무수한 난파 속에서 자신을 깨닫게 하듯, 수많은 사..
은유 은유(metaphore)는 우리의 앎을 너머(meta-)로 옮기는(perein) 언어다. ​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면, 그 바깥에는 언제나 은유가 있다. 앎이 쌓여서 새로운 앎을 만드는 게 아니다. 은유가 일으키는 신비, 은유를 통해 언표된 앎, 은유에 이끌리는 호기심이 우리의 인식을 이끈다. 인식은 은유 없이 생겨나지 않는다. 시가 있는 한 현실은 혁명 된다.
견디다(耐), 한마디를 꽉 붙잡고 지나가라 최근에 홍자성의 이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의 교감 작업을 거쳐서 새로운 번역으로 나왔다. 이 책의 제목은 ‘풀뿌리를 씹는 이야기’란 뜻이다. “사람이 풀뿌리를 씹을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라는 송대 학자 왕신민의 말에서 왔다. 비참할 때 어려움을 참고 견딜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은 처세의 지름길을 열어 주고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는 영원한 베스트셀러다. 1917년 한용운 번역으로 국내에 처음 출판된 후, 지난 100년 동안 수많은 책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안대회 번역본은 판본의 정미함에서 지금껏 나온 모든 책을 압도한다. 에는 크게 두 가지 원본이 존재한다. 저자 홍자성이 직접 간행에 참여한 초간본(初刊本)과 청나라 때 강희제 명령으로 출판된 청간본(淸刊..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 건물은 어느 때 가장 아름다울까. 도면 속에서 아직 상상의 존재로 머물러 있을 때일까. 완공된 직후 누구도 몸담지 않았을 때일까. 수백 수천 년 시간을 견딘 흔적을 담았을 때일까. 부서져 폐허로 남아 한때의 웅장함을 떠올리게 할 때일까. 한 인간에게 집은 언제 가장 의미 깊을까. 막 지어진 신축 아파트를 아름답고 깔끔하게 꾸며서 입주했을 때일까. 지지고 볶고 하면서 수십 년 어울려 살아서 구석구석 기억의 자국이 새겨졌을 때일까. 모센 모스타파비와 데이비드 레더베로가 함께 쓴 『풍화에 대하여』(이유출판, 2021)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다른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건물 역시 태어나자마자 소멸을 향해 기울어져 간다. “영원히 존재하는 건물은 없고, 모든 건물은 결국 자연의 힘에 굴복하고 만다.”..
스무 살에 소설을 읽고, 쉰 살에 소설을 다시 읽어라 학교에 다닐 때 대학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세계문학전집 한 질을 독파한 적이 있다. 작품마다 담고 있는 세계의 깊이와 넓이가 만만치 않았으나, 이때 힘들여 읽은 경험이 평생의 자산이 되었다. 좋은 소설은 인생을 미리, 심지어 여러 번 살도록 해준다. 타인의 슬픔과 기쁨, 상실과 회복, 고난과 승리를 내 일로 수없이 체험하는 것은 다가올 어떤 인생도 두렵지 않게 만들어 준다. 스무 살에는 반드시 소설을 읽어야 한다. 하지만 소설은 ‘중년의 예술’이다. 요즘 들어 이 말을 실감한다. 몇 해 전부터 한 달에 한두 권 정도 예전에 읽었던 고전 소설을 다시 읽는 중이다. 때때로 옛날에 내가 읽은 건 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줄거리나 내용을 잘못 기억해서가 아니다. 문학작품엔 스포일러가 없다. 좋은 작품은 결말..
편집자의 매카시즘 리처드 에번스의 『에릭 홉스봄 평전』(책과함께, 2022)에서 사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극단의 시대』의 프랑스어판 출간을 둘러싼 이상한 논란이었다. 알다시피, 20세기 역사를 다룬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영국에서 거대한 성공을 거두었고, 전 세계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비판적 논쟁과 함께 열풍을 일으켰다. 그런데 갈리마르, 알뱅 미셸, 파야르 등 프랑스 주요 출판사들이 제작비, 번역비 등을 이유로 이 책의 출판을 거부한 것이다. 전작인 『혁명의 시대』가 기대보다 안 팔린 이유는 분명히 있었으나 핑계였다. 논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극단의 시대』가 소비에트 중심으로 기울어져 미국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서구 민주주의를 폄훼하는 등 균형을 잃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극단의 시대』가 유대인 학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