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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우리가 하는 식사에 와인을 곁들입니다. 와인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지요. 우선 향미가 있습니다. 요리를 보완해주는 풍성한 맛이 있습니다. 또 알코올이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이 살아 있도록 해주는 알코올 말입니다. 와인은 우리가 가진 모든 감각을 풍부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식사 마지막에는 그라파(포도로 만드는 독한 술)를 마실 겁니다. 그런데 그라파는 한 가지뿐입니다. 알코올뿐이죠. 그라파는 와인을 증류한 것입니다. 인간성에는 많은 것이 포함됩니다. 열정, 호기심, 이성, 이타주의, 창의성, 이기심… 그러나 시장에는 단 하나, 이기심만 있습니다. 시장은 인간성을 증류한 것이지요. 여러분이 할 일은 그라파를 다시 와인으로 돌리는 것, 시장을 다시 인간성으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이건 신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
여성은 왜 출세하지 못하는가 노동을 통해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고 자신이 꿈꾸는 바를 사회 속에 구현할 힘을 갖추는 일은 한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근본적 수단이다. 한 사람이 노년에 이르러 은퇴할 때까지 역량과 성과 이외의 이유로 차이 나지 않게 경력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성공을 이룩할 수 있는가는 행복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2021년 한국사회학회에서 엄유식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등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성별 격차는 최근 들어 더 나빠지고 있다. 관리직과 비관리직을 가리지 않고 지난 10년 동안 격차가 꾸준히 증가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격차는 더 심해졌다. 연령, 학력, 근속 연수의 성별 분포가 동등해지는 상황에서도 성별 관리직 비율 차이는 설명되지 않는 이유로 심화했다. 여성이 남성만큼..
부(富)와 저축의 진화 인간은 부(富)와 덕(德)이라는 독특한 형질을 가지고 있다. 여유가 있을 때 자원을 체외에 저장한 후, 나중에 활용하는 행동 전략이 부이고, 자신의 여유 자원을 주변과 나눈 후 나중에 돌려받는 행동 전략이 덕이다. (1-204쪽) ​부와 덕은 약한 수준의 공변성(한 변수가 변하면 다른 변수도 변하는 성질)이 있다. 둘 다 적합도를 높이는 형질이기 때문이다. (1-203쪽) 동물은 대개 덕이 없다. 여유가 있을 때 동종 내 비친족에게 도움을 주고 나중에 그 대가를 돌려받는 ‘시간 지연 상리 공생’ 행위를 동물은 하지 않는다. 동물은 또한 체외 식량 저장 행위, 즉 저축도 대부분 하지 않는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식으로 살아간다. 동물은 대개 빈털터리다. (1-204쪽) 진화생태학적으로 볼 때, 부는 적합..
셀라(selah) ​셀라(selah)는 히브리 성서에서 74번 발견된다. 학자들은 그 말이 본문에 등장할 때마다 독자는 읽기를 멈추고 잠시 동안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전 문장이 깊이 되새길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전 속의 시는 필연적으로 변화를 의도하며, 옮겨 적은 이는 그 변화가 읽기를 통해 시작되고 동시에 고요한 명상 속에서만 완성될 수 있음을 알았다. 셀라는 히브리 음악에도 나타난다. 합창단 지휘자가 한동안 합창단을 침묵시키는 표시라고 알려져 있다. 악곡 사이에 여백을 두는 것이다. 물론 침묵은 음악이 잦아들 때 존재한다. 셀라는 성스러운 침묵이다. 변혁을 일으키는 말, 음악, 그리고 산부인과 접수원으로부터 대략적인 정보를 얻은 이들이 영원한 변화를 앞두고 겪는 잠깐의 정지 상태이다. 셀..
고정관념 고정관념의 기원 인간에게는 마음의 눈으로 주변 환경을 최대한 깊고 넓게 탐색해 그 비밀을 해독하고 위험과 기회에 대처하는 데 유용한 심상 지도를 그리는 성향이 있다. 호모사피엔스한테는 진화를 통해 형성된 선천적, 보편적 성질, 즉 세계를 정돈하려는 성질이 있다. 우리는 강박적 의미 탐색자이다. (2-128쪽) 우리가 의미롭게 여기는 것들은 대부분 특정한 문화적 배경에서 우리 경험을 처리하는 통계적 능력에서 연유한다. “사람들은 타고난 확률 전문가이자 통계 전문가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간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것을 기억에 저장하고 그 빈도에 대한 대략적 통계를 계산한다.” 경험적 통계에 바탕을 두고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 때, “특정 조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을 자연스럽게 알아낸다. 누가 가르..
읽기 ― ​문장(sentence)이라는 단어가 말 그대로 생각의 방법(sententia, 라틴어로 이 말은 생각하는 법을 뜻한다.)이라는 의미임을 감안하면, (중략) 문장은 생각의 기회이자 한계임을 깨닫게 됩니다. 문장으로 생각해야 하고 또 문장 안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뜻에서 그렇습니다. 나아가 그것은 느낄 수 있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중략) 그것은 느껴지는 감각의 양식(pattern)입니다. (웬델 베리). ― ​읽는 동안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가 저자와 더불어 심상을 고동 창조하도록 도움을 준다. (피터 멘델선드)
부모와 싸우는 아이들이 더 행복하고, 말다툼 잦은 연애가 만족도를 높인다 분노와 적대의 시대, 대화가 사라지다 갈등의 시대다. ​공적 대화가 완연히 엉망이 된 듯한 정치가 우리를 짜증 나게 한다. 화해보다 분노를, 화합보다 적대를 부추기는 말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내 말만을 거듭하는 세태가 우리를 불안에 빠뜨린다. 소셜 미디어는 ‘공공의 소리 지르기’ 경연장이다. 극단적이고 부도덕한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올린 사용자가 좋아요나 공유를 통해 인플루언서가 된다. 적대감, 두려움, 분노를 생산할수록 돈이 되기에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을 음모를 퍼뜨리고 분노를 자극하는 포스팅을 올리도록 독려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나 배려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그사이에 흔적도 없이 묻혀버린다. 의견 다른 이들끼리 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하고, 웃으면서 헤어지는 일은 갈수록 보..
로마는 세 번 세상을 통일했다 로마는 세계를 세 번 지배했고, 수많은 민족을 세 번 결합하여 통일했다. ​첫째, 로마가 가장 강성했을 때 여러 국가를 통일했다. 둘째, 로마제국이 몰락한 후 교회들을 통일했다. 셋째, 중세에 계승되어 서양 법의 근간을 제공할 로마법 체계를 발전시켰다. 첫 번째는 무력을 이용해서 강제로 한 통일이었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통일은 정신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 로마가 세계사에서 갖는 의미와 사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민족적 원리를 보편성의 사상에 의해 극복하는 것이다. _루돌프 폰 예링 ​ ==== 정신성, 그러니까 민족적 원리를 보편성의 사상에 의해 극복하는 것, 이게 늘 문제죠. 이 말은 정기문 선생의 쫄깃한 역사 뒷이야기 기행 『역사를 재미난 이야기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역사책』(책과함께,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