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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동네서점은 어떻게 운영되는가


책은 동일본대지진, 자연의 잔혹함이 인간에게 절망을 일으킨 자리에서 시작한다. 사와야 서점의 한 지점인 가마이시 지점은 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지역에 있었다. 전기, 수도, 가스 같은 기반 시설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도시. 쓰러질 듯 기울어진 주택,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가 곳곳에 산을 이룬 도시에서 사람들은 서점으로 몰려들었다. 

“어떤 책이라도 좋으니 아무튼 책을 좀…….”

서가가 순식간에 텅 비었다. 사람들은 왜 그 지옥 같은 상황에 책을 갈망한 것일까. 책이 없으면 왜 안 되었을까.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가공할 재난을 당해 전기가 완전히 끊어지자, 인간은 책의 소중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책은 필수품이었다.” “서점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다구치 미키토의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홍성민 옮김, 펄북스, 2016)은 감동적인 일화로 소개한다. 다구치가 근무하는 사와야 서점은 일본의 대표적 지역서점으로, 독자들을 위한 창발적 아이디어를 제시함으로써 일본 서점문화의 한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곳이다. 다구치는 사와야 서점 페잔점의 점장. 작가 소개에 있듯이, ‘판다’고 정한 책은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디어를 짜내어 파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 몇 출판사가 시도해서 화제를 부른 복면 X. 표지와 제목을 완전히 가린 채, 오직 포장지에 적힌 책방 일꾼의 추천사만 믿고 책을 구매하는 기획도, 다구치가 점장으로 있는 페잔점에서 시도하여 화제를 부른 ‘문고 X’의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이다. 

『동네서점』은 서점 폐업 시대를 맞아 분투 중인 다구치의 출사표와 같은 책이다. 그는 서점을 하는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집안일을 도우면서 자연스레 책과 함께 자랐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학교는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오로지 책만 읽어댔는데, 그런 아들을 걱정한 아버지 소개로 시즈오카에 있는 중형서점인 다이이치 서점에 들어가서 책방 일을 배웠다. 서점에서 다섯 해를 보낸 후, 고향으로 돌아와서 가업을 잇고 기울어져 가는 서점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애썼지만 실패하고 실의에 빠졌다. 

다구치 미키토를 다시 서점으로 이끈 사람은 이토 기쿠히코. 사와야 서점의 책 잘 팔기로 유명한 ‘카리스마 점장’이다. 이토는 다이이치 서점 시절, 어린 다구치에게 ‘판다는 것’의 본질을 가르쳐 준 사람으로, 아버지와 함께 다구치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다. 이토의 소개로 다구치는 사와야 서점 페잔점에서 일하게 되어,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동네서점』은 책방에서 일하는 사람은 물론, 책을 편집하고 영업하는 출판사 사람한테도 풍부한 영감을 제공한다. 출판사로부터 돈을 받고 진열해 주는 게 대형서점 영업자의 부끄러운 미덕인 나라에서 이 책은 쓰기와 읽기를 연결하는, 저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인간과 책을 연결하는 기나긴 흐름에 올라탄 이들에게 제공하는 강력한 비타민과 같다. ‘책의 최전선’에서 일어나는 이 놀라운 분투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침은 더욱 상쾌해지고 밤은 다시 아늑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록해 둔 서점 운영의 비결을 아래에 소개한다. 어쩌면 이것은 인생을 운영하는 비결인 듯도 하다.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서점의 가치는 손님이 읽고 싶은 책이 얼마나 있느냐에 달렸다.” 출판사라고 다를까. 규모는 상관없다. 자기 독자를 알고, 그 독자들이 읽고 싶어 하는 책이 많으면, 그 출판사는 반드시 흥한다. 


(1) 동네가 서점을 키운다.

“모든 교류의 장이 서점이었다. 계산대 옆에는 응접세트가 있었고, 그곳에 늘 동네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눴다. 지역 모임도 서점에서 했다. (중략) 서점이 지역 활성화의 한 역할을 해냈고, 동네가 서점을 키웠다.” “서점은 문화사업이 아니다. 서점은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략)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는 될 수 있다.”


(2) 독자와 대화를 통해 책을 판다.

동네로 자전거 배달을 나간 저자가 하는 일을 보라. 훈훈하다. “‘어떤 책을 읽으세요?’ 하는 인사로 시작해서 책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책도 재미있어요.’ 하고 제안하면 흔쾌히 주문을 한다. 책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고 그것이 판매로 이어졌다.”


(3) 손님의 타이밍에 맞는 책이 팔린다.

“이 [제한된] 공간 내에서 이 책을 언제 팔지 생각하며 일하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는 무의미해지는 거야.” 이토의 말이다. “과일에 제철이 있듯이 책에도 ‘철’이 있다. (중략) 어떻게 그 타이밍에 손님에게 제안할까. 제때를 아는 것이 서점원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4) 서가는 손님이 만든다.

책방 일꾼은 진열을 통해 상황과 계기를 제공할 뿐이다. “서점은 책은 진열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독자인 손님의 손에 책이 전달되어야 비로소 완결된다. 서점이 무얼 하고 싶은가가 아니라, 손님이 서가에서 어떤 책을 가지고 가느냐, 그것으로 서가의 방향이 정해진다.”


(5) 서점은 농사다. 작물에 맞추어 밭을 만들듯, 서가 역시 일구어야 한다.

“내가 특별히 신경 썼던 것은 서점을 ‘일구는’ 것이었다. (중략) 적극적으로 손님과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관계를 일구는 것이다. (중략) 이미 잘 팔리는 책을 매입하는 게 아니라 팔릴 수 있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매장에서 일구는 단계를 밟지 않은 것은 진짜 판 책이라고 할 수 없다.”


(6) 서점은 책과의 만남을 연출할 수 있어야 한다.

“서점은 [손님이] 지금 찾는 책 다음으로 읽을 만한 책과의 만남을 연출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지 못한 새로운 책과의 만남이야말로 서점을 찾는 묘미다. 그 만남이 서점과 손님을 이어준다.” 그러려면 POP 등을 활용한 고도의 연출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책을 진열하는 것은 책은 절대 팔리지 않는다. (중략) 손님이 그 책과 어떤 식으로 만나면 그 책의 매력을 최대한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서가를 만드는 서점원이 추측해야 한다.”


(7) 반드시 팔지 않으면 안 되는 하는 책이 있어야 한다.

“독자인 손님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만한 책을 제공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중략) 손님이 어떤 책이 필요할지 상상해서 스스로 책을 만날 수 있도록 여러 길을 만드는 것이 서점의 역할이자 즐거움이다. (중략) 우리의 의지가 드러나고 지역에 도움이 되는 책”을 팔아야 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왜 이 책을 팔고 싶은지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8) 문예서는 서점의 얼굴이다.

소설이나 시집과 같은 문학 서적은 서점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학 서적을 어떻게 진열했는지를 보면, 그 서점의 실력을 알 수 있다. 다구치는 말한다. “문예서는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그대로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즐거움을 위해서 책을 읽는 독자들을 이론서나 실용서 같은 다른 책도 읽는다. 하지만 그 역은 좀처럼 성립하지 않는다. 문예서를 잘 팔지 못하는 서점은 반드시 약해진다.


(9) 손님이 알고 싶은 정보는 미리 알려준다.

“내가 손님으로 서점으로 왔을 때 어떤 정보를 알고 싶을까. 그 ‘알고 싶은’ 정보를 문의하기 전에 먼저 알려주면 어떨까.” 문고본, 잡지, 만화 등 연속해서 나오는 책들의 신간 발매일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고마워한다. “고객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실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손님이 이용하기 편한 서점으로 만드는 것이다.”


(10) 서점의 긍지를 보여주는 책이 있어야 한다.

데이터로만 서점을 경영해서는 안 된다. 사실, 데이터는 정말로 중요하다. 한 서점이 자기 독자들과 오랜 관계를 통해서 축적한 데이터야말로, 그 서점의 미래 흐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다구치의 말도 옳다. “데이터란 과거의 축적으로 책과의 만남을 차단해 버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략) 서점에 왔을 때 이 책이 있으니까 역시 좋다고 생각하는 한 권, 그 한 권을 어떤 책으로 했느냐에 따라서 서점의 색깔이 달라진다.”


이상은 책을 뒤적이면서 대충 메모한 것들이다. 이 책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넘쳐난다. 오래전부터 이 책에 대해서만은 꼭 소개하고 싶었는데, 메모해 둔 것들을 잃어버렸다가 이번에 책을 정리하면서 다시 찾아내서 여기에 소개하는 기쁨을 맛본다. 언젠가 이 책을 가지고 서점 사람들하고 본격적으로 책방 살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 

덧붙이자면,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최근에는 책이 되기 전 교정쇄 단계에서 검토할 기회가 늘었다.” 일본의 출판사 영업자들은 과거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책이 나오기 전에 전국의 ‘카리스마 서점원’에게 교정쇄를 보내서 검토를 요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우리도 이제 출판사와 서점 사이의 관계를 근본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도대체 무슨 소용 있으랴. ‘책의 힘’을 믿는 사람만이 이 작은 책에서 수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책을 읽는 것으로 그 사람에게서 변화가 생기고 무언가가 달라지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서점의 역할”이다. 출판의 역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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