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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규탄당한 자로서 살아가기 _『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2017~2013』(루페, 2017)를 보다




『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2017~2013』(루페, 2017)은 다큐멘터리 사진집이다. 먼저 솔직히 말하자. 사진집을 들여다보면서 내면에서 쏟아지는 구토를 견딜 수 없었다. 

아이에카(ayyeka), 즉 ‘너 어디에 있느냐?’는 아담에게 던져진 ‘신의 첫 번째 질문’이다. 배철현 교수에 따르면, 이 질문은 ‘네가 있어야 하는 마땅한 그 자리에 있느냐’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무섭고 엄중한 질문이다. 

김봉규, 김흥구, 신웅재, 윤성희, 이상엽, 정운, 정택용, 채승우, 홍진훤, 최형락 등 열 명의 사진 작가가 참여하고 후지이 다케시가 해설을 한 이 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거로 뽑힌 그날로부터 탄핵으로 사라진 그날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편집한 이상엽은 「기억을 소환하기 위한, 사진」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시간이 만든 엔트로피를 거슬러 올라가려 했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모습 이전, 이 모순이 응결된 지점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흐려진 기억을 다시 불러 모으기 위해 이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현장들을 사진으로 재현하려 했다. 이 사진들이 진실 그 자체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기억을 좀 더 선명하게 떠올려줄 진실의 보조 장치 구실을 한다면 좋을 것이다.”







사진이 성실히 보존한 이 현장에 나의 존재가 부재함을, 사진집을 가득 메우면서 울려 퍼지는 ‘그날 어디’라는 질문에 ‘마땅함’으로 답할 수 없는 자괴가 속을 뒤집어놓는 메스꺼움을 견디기 어려웠다. 누선이 간질대는 것을 끝내 막을 수 없었다. 가끔은 그날 어디의 현장을 함께한 적도 있었지만, 질문의 준엄함을 이기기에는 한 일이 너무 없었다. 루쉰의 글에서 제목을 빌려온 해설 「물에 빠진 개는 쳐라」를 붙인 후지이 다케시의 표현을 빌리면, ‘작은 개’로 살아간 날이 더 많지 않았나 싶은 기분이다. 그저 창피할 뿐, 더 할 말이 없다.

후지이 다케시는 해설 중간에 브레히트의 시 「나, 살아남은 자」를 인용한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나 자신이 미워졌다.” 그리고 덧붙여 말한다. “이 시를 통해 브레히트가 말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살아남은 자에 대한 규탄이다. 죽은 자들의 규탄에 우선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죽게 만든 이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며 무엇을 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영 죽은 자들을 두려워해야만 하게 된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모든 악을 뒤집어쓰고 탄핵당한 것이 아니다. 탄핵당하고 규탄된 것은 살아남은 자 전체다. 그리고 우리는 승리자로서 선인인 양 의기양양한 채 살아갈 수 없다. 이 책의 사진들은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고 선언한다. 유대인들이 신에 의해 구원받음과 동시에 신을 못 박은 죄로 탄핵을 당했듯, 그리고 탄핵의 죄를 갚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땅 끝까지 기쁜 소식을 퍼뜨릴 임무를 받았듯, 우리는 규탄된 자로서 앞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 사진집에 응고된 현장들은, 죽은 자의 얼굴들은 땀 흘리고 수고롭게 살아갈 바로 그 사명을 우리에게 요청한다. 

후지이 다케시는 그 사명의 선지자로서 여성들과 성 소수자들을 호명한다. 특히, 성 소수자들은 “사회적 규범에 저항하면서 스스로의 욕망을 드러내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일상 자체가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실험이 된다. ‘나중은 없다’는 구호가 나올 수 있는 것도 그들이 이미 새로운 사회를 향한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우리의 구호이자 희망이 될 수 있다.”

살아남은 자라면 누구나 이 사진집 앞에 서서, 메스꺼움을 견디면서 죽은 자의 질문과 선지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