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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만드는 일

교보문고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출판사가 생각할 것들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고 초등학생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쓸 것, 책을 한 곳에 오래 서서 읽는 것을 절대 말리지 말 것, 책을 이것저것 빼보기만 하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 주지 말 것, 책을 앉아서 노트에 베끼더라도 그냥 둘 것, 책을 훔쳐 가더라도 도둑 취급하며 절대 망신주지 말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 좋은 말로 타이를 것.”

교보문고의 경영지침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서 엄청난 화제를 뿌리면서 ‘착한 기업’ 교보문고의 이미지를 높이는 중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출판 산업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교보문고의 움직임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1980년대 이후의 한국 출판은 교보문고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가격 할인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서점의 공세에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교보문고는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물성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책의 세계를 잘 유지하고 보전해 주었습니다. 출판사의 최대 거래처이자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가능한 역할을 충분히 한 것입니다.

이래 왔던 교보문고의 최근 전략적 움직임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뉴스에 등장한 관련 화제를 전부 살펴보면서 이 서점의 미래 지향을 조금 엿보았습니다. 이는 서점 연결을 기본으로 할 수밖에 없는 출판사의 기획과 마케팅에 장·단기적으로 전략적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제가 주목한 교보문고의 움직임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신도림, 수유, 판교에 이어서 전주에 네 번째로 226평 규모의 바로드림 센터를 오픈한 사실입니다. 인터넷 또는 모바일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책을 오프라인에서 받아볼 수 있도록 한 이 센터는 도서 3만 권 정도를 갖춘 중소형 서점인 동시에 문구, 음반, 선물용품, 카페 등을 하나로 하는 복합문화 공간이기도 합니다. 넓은 공간과 많은 인력이 필요한 지점을 열어 몸을 무겁게 하는 대신, 출판계와 독자 반응을 보면서 개설과 폐쇄가 손쉬운 미니 지점을 전국의 거점 도시들까지 확대해 갈 예정인 듯합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해서 소비자를 공략하는 O2O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10월 8일 ‘즐거운 지식 문화 공간’을 표방하면서 부산점을 11개월 동안 전면 보수하여 다시 개장한 데 이어서, 10월 21일 ‘도서관형 서점’을 내세우면서 광화문점을 부분 개장했다는 사실입니다. 허정도 대표이사가 “서점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책이 많은 게 아니라 책을 읽는 이들이 많은 것”라고 말했듯이, 변화의 방향은 “독자들이 찾는 모든 책이 있는 서점”에서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셋째, 출판계와 상생을 위해 내년부터 공급률 조정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는 점입니다.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온라인 쪽은 평균 60%선, 오프라인 쪽은 평균 70%선에 구매하던 것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합해서 70%선으로 조정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오프라인 쪽의 기존 어음 결제 관행도 전액 현금 결제로 바꾼다고 합니다. 오늘 한기호 소장님 블로그를 보니까 아마 이 문제는 현금 결제를 조건으로 60%로 통합하는 쪽으로 조정하려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를 두고 출판사 측과 치열한 다툼이 예상되지만, 도서정가제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서 현재의 영업환경을 유지하면서 경쟁 온라인 서점을 압박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국내 최대의 서점인 교보문고의 변신은 다른 서점의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낼 것이고, 연쇄적으로 출판사의 전략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등 책 생태계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출판사의 입장에서 볼 때, 교보문고의 다음과 같은 현실적 함의가 있습니다. 

첫째, 책의 발견을 위한 거대한 저장소 역할을 했던 오프라인 공간이 장기적으로 크게 축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로드림 센터의 잇따른 개점은 오프라인 서점이 책의 판매를 위한 공간보다는 교보문고의 브랜드 가치 유지를 위한 독자 서비스 공간으로 주로 이용될 것을 예고합니다. 아마도 신간 베스트셀러 중심의 쇼룸(showroom)이 될 가능성이 높고, 도서 판매는 수익성과 효율성이 높은 모바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존 매장을 리모델링해서 ‘도서관형 서점’으로 재조직하는 교보문고의 또 다른 움직임도 이 추세를 지속적으로 강화합니다.

둘째, 온라인 공급률을 끌어올리고 오프라인 대금을 현금 결제로 바꾸는 조처는 도서정가제에 따른 출판사의 유동성 약화라는 부작용을 줄이는 점에서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 조처는 재고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온라인(모바일) 판매로 교보문고의 사업 중심을 자연스레 옮겨가도록 합니다. 온라인 판매분에 대한 출판사의 수익을 보전해 주는 것을 대가로, 현금 결제에 따른 오프라인 매장의 재고 부담을 줄이기 위한 각종 조치가 뒤따를 것입니다. 가령, 신간 배본 자체를 거절한다든지, 배본을 조건으로 판촉비용을 받는다든지, 초기 반응이 약하면 결제일 이전에 곧바로 반품한다든지, 구간 스테디셀러 도서의 보유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것 등이 예상됩니다.

요컨대, 교보문고의 최근 움직임은 ‘모바일 퍼스트’라는 세계적 쇼핑 트렌드를 반영하여 오프라인 서점의 몸을 가볍게 하는 전략을 선제적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착한 기업’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는 훌륭한 수순마저 밟고 있기에 박수라도 보내고 싶은 기분입니다. 하지만 이 전략이 현실로 드러날 경우, 출판사 입장에서는 ‘배본을 통한 발견’이라는 기본 마케팅 전략은 더 이상 예전처럼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프라인에 책을 최소한으로 배본하면서도 독자와 연결되어 빠른 속도로 책을 회전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출판사의 창고는 순식간에 넘쳐버릴 게 틀림없습니다. 아울러 구간의 진열이나 판매가 과거보다 더 어려운 조건에서 이루어지기에 아마도 연 300부 내외 판매량을 보이는 책들이 대량으로 재고로 남거나 절판될 수도 있습니다. POD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구간 관리 및 판매 전략’에도 분명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런 일이 현실화되지 않으려면 이미 여러 번 강조했지만, 독자가 서점에 들어서기 전에 책이 이미 발견되거나, 출판사가 직접 또는 서점 외 공간에서 독자에게 책을 판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출간 여섯 달 전부터 마케팅을 시작하라든지, 독자를 출판사 가까이로 끌어들여 속삭이라든지, 독자 직접 판매 모델을 구축하라든지 하는 ‘서점 연결’을 넘어서는 ‘비서점 연결’을 실행하지 못하는 출판사는 점차 약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미리 대비하지 않는 출판사는 간혹 ‘대박’이라도 나지 않는 한 유동성 문제에 지속적으로 시달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세계적인 트렌드입니다. 올해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논의된 것 중 하나가 이런 환경에서 출판의 미래를 묻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도 책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출판의 미래는 누구나 고민한다.” 분위기는 이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종이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전자책이 가져다주는 여러 기회가 출판 산업을 혁신하면서 지속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중이지만, 독자들은 촉감이나 냄새 등 종이책의 물성이 가져다주는 각종 혜택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출판 산업의 모습은 지금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바뀔 수 있습니다. 출판은 앞으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요? 화요일 저녁(11월 10일)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세미나에서 같이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뽑아본 출판의 열 가지 트렌드입니다. 

(1) The Era of Super-Giant

(2) Return of Editing

(3) Reconstruction of Reading Habits

(4) The Author will be Small Publisher

(5) Flexibility

(6) Data and Marketing

(7) Making Fandom

(8) Go Global!

(9) The Period of Accesibility

(10) Collaboration

* 자리가 모두 마감되어서 17일에 한 번 더 하라고 연락 왔습니다.^^ㅠㅠ 


교보문고 광화문점 입구(출처 : Fii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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