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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독립서점, 동네로 돌아오다

한국경제신문에서 발행하는 《머니》 2018년 2월호(제153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독립서점’이라는 별칭으로 돌아온 동네서점 이야기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조금 보충해서 올려 놓습니다.



독립서점, 동네로 돌아오다


동네서점이 돌아오고 있다. 1980년대 대학가 사회과학서점의 등장 이래, ‘문화적 맥락’을 갖춘 서점의 폭발적 증가는 한 세대 만이고, 서점 숫자가 늘어난 것은 온라인 서점의 공세에 밀려서 줄어들기 시작한 지 스무 해 만이다. 그동안 사라진 서점들과 새로 등장한 서점들은 다르다. 

참고서와 문제집이 가지런한 학교 앞 서점은 아니다. 좁은 공간에 사람 지날 틈도 없이 책을 쌓아둔 익숙한 서점도 아니다. 안타깝지만 이 서점들은 갈수록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다. ‘북 스페이스’(book space)라고 부르고 싶은 기분도 든다. 일부에서는 유행을 타고 일어섰다 스러질 ‘트렌드 서점’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동네 서점들은 ‘책의 진열과 판매’에 중점을 둔 서점이 아니라 책이 있는 독특한 공간 연출과 다양한 큐레이션을 배경 삼아 책과 관련한 여러 사업을 전개하는 서점이다.

여유 공간이 전혀 없을 정도로 책꽂이를 세우고 최대한 다양한 책을 1만 종 이상 보유한 기존 동네서점과 달리, 이 서점들은 철저하게 독자 취향에 맞춤한 책만 골라서 1000종 정도 가져다 놓은 곳이 많다. 넉넉한 형편의 일부 서점을 제외하면 많아야 3000종을 넘지 않는다. 다양함으로는 어차피 인터넷서점이나 대형 체인서점을 이길 수 없다. 그보다는 독자들이 책을 여유롭고 편안하게 즐기도록 운영하고, 사인회, 낭송회, 독서회 등 책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음악회, 전시회 등도 수시로 개최하며, 지역사람들이 직접 만든 책이나 잡지, 음반이나 소품 등도 진열해 판매해야 수지를 맞출 수 있다. 기존 동네서점과 구분해서 이들을 ‘독립서점’이라고 부른다.


청주 꿈꾸는 책방 (출처 : 꿈꾸는 책방 페이스북 페이지)


‘독립서점’이라면 무엇으로부터 독립일까. 

첫째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이들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대형 체인서점이나 다른 분야의 문화자본과 대개는 연결되어 있지 않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소규모로 창업한 것이다. 창업 이유 역시 ‘수익 창출 자체’에 목적을 두기보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책이 있는 공간에서 일하고 싶어서’ ‘책을 사랑하는 이들과 만나고 싶어서’ 등인 경우가 많다. 

둘째는 ‘베스트셀러로부터의 독립’이다. 한꺼번에 많은 책을 싼 가격에 들여놓고, 집중 진열을 통해서 빠른 속도로 팔아 치움으로써 효율을 극대화하는 베스트셀러 중심의 균질적 서점 질서로부터 독립해 있다. 사실, 출판은 본디 소수 미디어이기 때문에 대다수 책들은 독자의 특정한 취향과 연결되어 판매가 한정되어 있다. 운영상 이유로 베스트셀러 판매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는 대형 서점들과는 달리 독립서점은 철저하게 자기 독자 취향에 맞추어 책들을 선별하고 배치함으로써 다질성(多質性)을 이룩하려 애쓴다. 서점마다 다른 책의 질서를 가진 소우주를 꿈꾸는 것이다.

2014년 11월부터 실시된 도서정가제가 독립서점 활성화에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독립서점의 도전은 그 이전부터 계속되었다. 하루이틀 일은 아닌 것이다. 2011년 서울 홍대 앞에 땡스북스가 개점하면서부터 도전을 시작된 후, 독립서점은 청년 문화가 살아 있는 거리를 중심으로 조금씩 확산되어 갔다. 처음엔 독립출판물을 주로 판매하는 서점이 많았지만, 나중엔 개성 있는 책을 출판하는 소출판사 중심으로 일반 출판물 판매가 서서히 늘어났고, 지금은 중대형출판사 책들도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동네서점지도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운영하는 퍼니플랜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5년 9월 1일 전국에 70군데 정도였던 독립서점이 2017년 7월 말에는 257군데로 늘어났다.[각주:1] 2018년 1월 말 현재, 300곳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와중에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서점들이 나타났다. 문학 전문서점인 고요서사, 추리소설 전문서점인 미스터리 유니온, 밤에만 영업하는 심야책방인 밤의 서점, 책과 함께 강연도 듣고 맥주도 파는 서점 북바이북, 고양이 전문서점인 슈뢰딩거, 시집 전문서점인 위트앤시니컬, 일상을 상담하고 책을 추천받는 사적인 서점 등 형태와 특성이 다른 독립서점 목록이 서울에서만 해도 끝이 없다. 열풍이 불면서 제주도에만 두 해 만에 무려 40여 곳이나 개점하는 등, 나흘에 하나 꼴로 독립서점이 생겨나는 중이다. 물론 창업한 후 별달리 힘도 못 쓰고 폐점하는 곳도 늘어나는 등 거품이 부푸는 듯싶어 우려의 시선이 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만 독립서점이 활성화된 것은 아니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서점 아마존의 공세가 위세를 더하는 중인 미국에서도 독립서점의 숫자와 매출이 동시에 늘어나는 중이다. 미국 서점협회에 따르면, 독립서점의 매장 숫자는 2000년에서 2007년 사이에 1000군데 점포가 폐쇄된 후 2009년 이후 2009년 1651곳이었던 미국의 독립서점 숫자는 2016년에는 2311곳으로 40% 가까이 증가했다. 2016년 말, 닐슨 보고서에 따르면, 독립서점은 온라인 상점을 제외하고 시장점유율이 높아진 유일한 채널이다.[각주:2] 



2011년 대형 체인서점 보더스가 파산하면서 커다란 충격을 주고 반스앤드노블은 지점을 축소하면서 버티는 중임을 고려할 때 지극히 이채로운 일이다. 류영호에 따르면, 같은 기간 미국 서점체인의 숫자는 2009년 3만 1126곳에서 2016년 2만 4611곳으로 줄어들었다.[각주:3] 미국서적상협회 회장 오런 테이처는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독립서점들은 컴퓨터 스크린을 넘어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독자들을 찾았다. 이 독자들은 책을 입체적으로 경험하고 싶어 하며, 익명의 누군가가 추천해 주는 것보다 촉감을 통해 직접 책을 고르고 싶어 한다.”[각주:4] 

종이책은 단지 읽을거리만은 아니다. 종이책에는 저마다 고유한 물성이 있다. 피와 살을 가진 존재인 인간은 아날로그 공간에서 직접 책을 만지고 뒤적거릴 때 책의 참다운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적어도 책에 관한 한, ‘비트의 법칙’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각주:5] 독자들에게는 책을 직접 경험할 수 있고 취향의 ‘싱크’를 맞출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절실하다. 

제주도 동네책방 이듬해봄. (출처 : 이듬해봄 페이스북 페이지)

한편, 독립서점은 책을 매개로 한 여러 모임과 활동 등을 통해 ‘책의 사용성’을 확장한다. 사실, 책의 판매는 서점 운영으로 얻을 수 있는 하나의 결과일 뿐이다. ‘책이 주는 행복한 만남’이 서점의 진짜 존재 이유다. 독립서점 운영에는 ‘장소의 인접성’이나 ‘거래의 편의성’을 뛰어넘어서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가치의 제안’이나 ‘친밀성 확보’가 중요하다.

2000년대 초반, 충주의 대표적인 지역서점인 ‘책이 있는 글터’ 이연호 사장은 ‘서점의 위기’를 이렇게 진단한 바 있다. “서점이 완결된 텍스트의 전달이 아니라 책의 향기를 전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떠난 것이다.” 서점에 책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독자가 만들어지는 시대는 지났다. 독자들이 책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을 때, 책의 판매는 ‘인접성의 원리’를 좇아서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집이나 학교나 직장에 있다가 책이 필요하면 가까운 곳에 있는 서점에 가서 보유 유무를 물어 본 후 책을 구매했다. 이러한 세상에선 서점의 입지조건이 중요하다. 적당한 공간을 마련해 책을 채워 두면, 거의 자동으로 독자가 생겨나고 필요한 거래가 이루어진다. 물론 아직도 서점을 이와 같은 식으로 이용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음을 충분히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초연결사회는 정보의 비대칭 상태를 해소한다. 검색이나 추천을 통해 서점보다 독자가 책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는 일도 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책, 책과 책을 잇는 새로운 연결을 상상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제안할 줄 아는 능력이 무엇보다 서점 쪽에 요구된다. 서점의 운영이 친밀성의 원리, 즉 얼마나 밀도 높은 관계로 서점과 독자가 연결되었느냐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책 판매는 물론이고 독립서점이 주 수입원으로 삼는 모임 운영도, 강연 참여도, 하룻밤 숙박도, 책 상담도 모두 이러한 친밀성이 사업적으로 실현된 결과일 뿐이다. 

독립서점의 경쟁력은 인간으로부터 나온다. 서점이 추구하는 의미와 가치를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을 때, 독자들은 서점을 사랑하고 기꺼이 수고를 들여 서점을 찾는다. 신문이나 잡지와 마찬가지로 책도 정보의 사회화 또는 민주화를 촉진한다. 하지만 ‘즉시성’을 특징으로 하는 온라인 뉴스 미디어와 달리, 책은 충분한 숙고를 통해 공동의 사회적 관심사와 문제에 집중하는 ‘슬로 미디어’다. ‘나’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공공화하고, 순간의 문제를 영원의 지혜로 승화하는 것이 책의 중요한 역할이다. 동네서점은 독자 공동체를 구축하고, 세상의 여러 문제들을 환기함으로써 책의 이러한 본질적 기능을 지역사회로 실어 나른다.


북바이북 판교점에서 열린 특강(출처 : 북마이북 판교 페이스북 페이지)


존스홉킨스 대학의 아자르 나피시는 주장한다.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서점은 공동체를 창조”하며, 서점은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세상에서 가장 민주적인 공간”이다.[각주:6] 우리는 책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고, 대화를 통해 이를 표현한다. 세계적으로 독립서점은 지역사회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공동체 대화의 중심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지역주민들이 서점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내에서는 아직 이 전통이 얕지만, 지역사회와 결합해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등으로 발전을 모색하는 독립서점들도 서서히 늘어나는 중이다.

책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책의 인간들’은 도무지 지지 않는다. 앞으로 더 다양하고 색다른 독립서점들이 나타나 흥망을 거듭할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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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135890&memberNo=1990002 [본문으로]
  2. http://www.nielsen.com/us/en/insights/reports/2016/2015-us-book-industry-year-end-review.html 2015년 미국 서적 시장 점유율 현황은 다음과 같다. 전년 대비 온라인 판매는 35%에서 40%로 증가하고, 대형 체인서점 판매는 22%에서 20%로, [코스트코 같은] 대형 유통매장 판매는 9%에서 6%로 줄어들었다. 이에 비하여 독립서점의 시장 점유율은 7%에서 10%로 크게 증가했다. [본문으로]
  3. 류영호, 「제4차 산업혁명과 서점의 미래」,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른 출판의 오늘과 내일》(출판콘텐츠마케팅연구회 연례발표회 자료집, 2017). [본문으로]
  4. 김윤경, 「독서는 어쩌면 혁명적 커뮤니케이션」, 《이투데이》 2016년 2월 25일.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294325 [본문으로]
  5. 음악 산업의 경우에도, 최근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LP 판매가 전 세계에서 급증하는 중이다. 이에 대해서는 데이비드 색스, 『아날로그의 반격』, 박상현, 이승연 옮김(어크로스, 2017)을 참고하라. [본문으로]
  6. https://www.buzzfeed.com/michelefilgate/the-rise-of-the-independent-bookseller-in-the-time-of-amazon?utm_term=.diNBq4Jlv#.viMnEl07B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