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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자본도 재능도 없이 누구나 서점을 하는 세상을 위하여 _이시바시 다케후미의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을 읽다



책과 출판과 서점에 대한 담론이 사회적으로 크게 조명받으면서, 갑자기 출판이나 서점이 아무나 할 수 없는, 정말 창의적이고 지사적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일, 기적을 만들 줄 아는 사람들조차도 엄청난 간난신고를 겪어야 간신히 미미한 빛을 던질 수 있는 대단한 직업으로 우상화되었다. 1990년대에 출판계를 풍미하다 거품으로 스러진 ‘기획자’ 또는 ‘북 프로듀서’ 열풍이 옆줄로 옮겨가서 살짝 변주되어 도돌이표로 돌아온 느낌이다. ‘큐레이션’이니 ‘콩세르주’니 ‘서점의 기획’이니 하는 개념이 범람하면서, 사소하고 지루하고 고된 일상 노동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출판, 서점, 디자인, 인쇄 등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않을 것처럼 저 멀리로 밀려난 느낌이다.(나 역시 이런 부분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깊게 반성하는 중이다.) 이럴 때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이 출간된 것은 다행스럽다. 

이 책에서 민완의 서점 전문기자인 저자는 50년 동안 현장을 지켜온 전설의 책방지기 시바타 신의 목소리를 빌려서 서점의 기본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서점이란 (일부 대형서점이나 인터넷서점을 제외하면) ‘책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나날의 힘든 노동으로 이루어진 ‘소상공업’이라는 사실 말이다. 시바타 신은 말한다. 


‘책을 판다’는 건 말이지. ‘책이 좋다’든가 ‘책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에 사명감을 느낀다’든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런 것만으로는 성립되지 않아. 모두가 기분 좋게, 가능한 나쁜 감정 없이 일할 수 있는가. 이런 노무 관리가 먼저라는 거야. 단지 책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책을 판다는 행위가 완성되지 않아. (중략) 이치에 맞는 조직 속에서 책을 팔 수 있을 때, 쾌감이 있지. (중략) 서점이란 다양한 책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구조로 판매하는 곳이야. (48~49쪽)


시바타에게 서점이란 무엇보다 “휘파람을 불면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의 문제다. 책에 대한 애정이나 사명감 같은 주관적 요소로는 서점을 지킬 수 없다. 그보다는 “이치에 맞는 조직”이나 “납득할 수 있는 구조” 같은 객관적 틀을 어떻게 만들고, 이를 유지하려고 구성원 각각이 노력하는 쪽이 더욱 중요하다. 그 시스템은 단순히 서점 내부의 시스템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서점이 있는 동네에서 책에 관련된 어떤 협력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포함한다. 시바타 신의 말을 빌리면, 진열과 구성의 천재가 아니라 작은 점 같은 존재들로 이루어진 강한 시스템이 서점을 지키는 것이다.


휘파람을 불며 책을 판다는 것은 그걸 지탱하는 강한 시스템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이지. 그런 구조 속에서 일을 하자는 말이야. (중략) 다른 서점에서 ‘책의 콩셰르주(안내인)’ 같은 말이 튀어나오는 걸 보면 좀 우습기도 한 거죠. 독자에게 무언가를 지도할 필요도,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이 눈에 띌 필요도 없어. 작은 점 같은 존재면 돼. (58쪽)


시바타는 서점의 미래 같은 거창한 목소리를 거부한다. 그보다는 ‘개별성’이 중요하다고, ‘서점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는 ‘이와나미북센터의 미래’를, 이와나미북센터가 위치한 ‘진보초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게 더 소중하다고 말한다. 인간은 책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다면서, ‘어떻게 하든 [서점을] 지키려 한다’ 같은 엄포를 스스로 놓으면서 무언가를 반드시 해 내야 하는 것처럼 억지로 무리하지 말라는 것이다. 엄청난 일을 하겠다는 야심이 아니라, 서점에 더욱 소중한 것은 ‘이 물건(책)을 팔아서 하루하루를 생활한다’ 같은 소박한 태도로 나날을 견디는 일이다. “자기 가게를 보고 오는 손님을 보고 책을 주문하고 진열하고 서가를 만드는 일”(90쪽)을 매일 견디면서 ‘대박’이 터질 행운의 날을 웅크려 기다린다. 시바타 신의 ‘주먹밥론’은 이를 한마디로 정리한 것이다.


급진적이고 알기 쉬운 변화보다 눈앞의 작은 성과를 믿는다. (중략) 아무 의심 없이 믿어도 되는 건 그때그때의 주먹밥뿐이야. 눈앞에 있고, 먹을 수 있고, 맛있고! 그것만이 분명한 것이지. 슬로건을 드높여 ‘이렇게 하면 모두의 가게가 개선된다’는 이야기보다는,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 하나하나에 대응하면 살아가는 쪽이 훨씬 확실하니까. (중략) ‘흘러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언제 어디서건 그게 전부야. 흘러가고 있는 바로 지금에 대응할 수 있다면 언젠간 작은 것 하나 정도는 달성할 수 있어. (231~235쪽)


소박하기에 아름답고 깔끔하다. 동시에 답답하고 고루하다. 하지만 이 어색한 동거를 훌륭한 목소리로 만드는 것은 삶의 누적이 이루어낸 깊이, 즉 연륜이다. 서점의 일상은 욕됨을 참는 것, 즉 인욕의 연속인데, 이를 어떤 태도로 참고 또 참으면서 이어가느냐가 중요하며, 그 이어감을 반복하면 오늘의 서점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바타는 말한다.


그저 단순히 견디고 참는 게 아니라 밝게 참는다, 긍정적으로 참는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불운을 한탄하며 부정적으로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셨지요. 저는 서점도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책방이 세상을 원망해 봤자 아무것도 못합니다. 일단 주어진 것을 인정하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해야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134쪽)


확실히 세상은 더 이상 책에 친화적이지 않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출판사의 매출은 떨어지고 서점의 수는 나날이 줄어든다. 시바타의 말에 따르면, 책의 전성 시대는 1990년대 초에 이미 지나 버렸다. 그렇다면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이들은 ‘쇠퇴의 시대를 사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한다. 시바타는 이를 ‘인욕’ 또는 ‘수동적 능동’이라고 부른다. 


매일 일을 반복하며, 언젠가, 어떤 박자를 타고, 엄청나게 돈을 벌 순간이 오길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견디는 거지. 그렇게 여기까지 온 거고 말이야. (중략) 보통의 서점을 계속해 왔던 곳에만 찾아오는 ‘은혜’가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중략) ‘그러다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다, 어? 이상하네. 왜 아직 안 오지?’ 이런 소리를 하며 어떻게든 매일 유지하고, 견디고, 그러다 죽는 거지. 이게 내가 생각하는 ‘보통’이야. (169~170쪽)


책을 읽다 보면 이 목소리가 왠지 우리를 평화롭게 한다. ‘보통’이니까, 특별하고 화려하지 않아도, 이쯤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특별한 서점’ 이야기가 아니라 ‘보통의 서점’ 이야기, 즉 재능이나 자본이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서점에 대한 이야기,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은 그런 식의 서점 학교다. 미션은 오직 기다리는 것, 밝은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면서 일상의 이어달리기를 계속하는 것뿐이다. 자, 안심이 되지 않는가. 이 정도는 나도, 너도,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린다. 외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일단 인정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상인으로서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다한다. (178쪽)




오늘 아침에 일본의 서점 평론가 이시바시 다케후미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획회의》에 실린 인터뷰를 위한 자리로 남해의봄날 정은영 사장의 주선으로, 쿠온의 김승복 대표가 통역을 해주어 만났다. 서교동 기획회의 사무실에서였다. 이시바시는 『서점은 죽지 않는다』(백원근 옮김, 시대의창, 2013)로 한국에 독립책방 붐이 일어나는 데 많은 영감을 불어넣었으며, 서점인의 적극적, 능동적 역할에 대한 사고를 일으켰다. 최근에는 도쿄의 서점거리인 진보초의 터줏대감으로 이와나미북센터의 사장인 시바타 신을 다룬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정영희 옮김, 남해의봄날, 2016)로 ‘서점의 원점’에 대한 고민을, 하루하루 책을 다루면서 쌓아서 이룩한 서점인의 일생을 소중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서점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을 깊게 이야기한 이 인터뷰 이야기는 《기획회의》에 실릴 예정이다. 많은 기대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