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오늘날의 책에서는, 전통과 수학적 규범에 바탕을 둔 납활자 조판의 엄격함도, 기계적 고효율에 바탕을 둔 사진 식자의 자유분방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민숭민숭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이기도 할 것이다. 디지털과 관련한 정체성 혼란은 이전 시대를 훑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왜’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우진, 「20세기 본문 조판 유람기(1)」, 《기획회의》 415호, 2016년 5월 20일, 64쪽)
《기획회의》가 올 때마다 가장 꾸준히, 열심히 읽는 글은 심우진의 연재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이다. 그런데 이번 호에 실린 글은 특별히 흥미로웠다. 요즘 본문 편집의 비성찰적 장식성에 대한 불만을 적잖이 품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디지털과 관련한 정체성 혼란’을 언급한 첫머리가 눈길을 확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렇다 할 가로짜기용 한글 명조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글 명조체의 자간을 줄여 쓰는 습관도 이와 관련이 있다. 한글 명조체의 대표격인 SM신신명조를 세로짜기 하면 본래 자간이 넓지 않은 활자체임을 금세 알 수 있다. 너무도 성급하게 가로짜기로 바꾸었다. 그 결과 21세기 한글 가로짜기는 암중모색을 거듭하는 중이다.” 맞습니다, 옳습니다, 심 선생님, 아멘!!!
서양 조판술과 동양 조판술이 처음으로 만나 절묘한 균형을 이룬 지난 세기 초 일본 신초사의 ‘세계문학전집’을 보여주는 것에서 연재분이 끝나는 바람에 너무나 아쉬웠다. 다음 연재분을 두근거리면서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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