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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만드는 일

도서정가제와 도서공급률 문제에 대하여 _ 「2015년 상반기 출판산업 지표 분석」 을 읽고

어제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에서 발표한 「2015년 상반기 출판산업 지표 분석」 자료가 출판계에서 화제로 떠올랐다. 작년 11월 도서정가제 실시 이후, 출판산업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자료로, 출판인이라면 모두 일독할 만한 자료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2분기 가구당 서적 구입비는 1만 3330원으로 지난해 동분기 대비 13.1% 감소했으며, 서적출판업 생산지수 역시 73.5까지 떨어져 기준 연도인 2010년의 거의 70% 수준까지 곤두박질쳤다. 통계청이 조사를 시작한 이래 역대 최저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

둘째, 상반기 온라인 서점 거래액은 5652억 원으로 작년 동기간 대비 9.5% 감소했으나, 예스24의 상반기 매출액은 1733억 원으로 2.8% 증가, 영업이익은 93억 원으로 무려 518% 증가했다. 반면에 출판 상장기업의 매출액은 8997억 원으로 작년 동기간 대비 2.1% 감소, 영업이익은 313억 원으로 11.3% 감소했다. 서적출판업 전체의 생산지수가 작년 동기간 대비 13.7% 감소한 것으로 보아 중소출판사의 매출액은 아마도 더 큰 폭으로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보고서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출판인이라면 이미 모두 알았던 바처럼, 예스24의 실적이 엄청 좋다는 점이다. 교보문고 역시 실적을 아직 공개하지 않았지만, 예스24와 비슷한 실적을 올렸을 것이다. 도서정가제 실시 이후, 가격에 따른 편익을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방대한 서비스 인프라를 갖춘 교보문고와 예스24로 독자들이 몰려들면서 도서판매 시장 전체를 서너 군데 서점이 과점화하고, 그에 따른 수익을 독점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연구소는 세 가지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출판사와 서점(특히 온라인 서점) 사이의 공급률을 재조정해서 양극화의 다른 극단에 있는 중소 출판사의 경영난을 해소해야 한다. 둘째, 서적 재정가 관련 제도를 손보아서 출판사의 재정가 참여율을 높여 서점에 독자를 다시 끌어들이는 유인책을 실시해야 한다. 셋째, 도서구입비 세제지원제도를 한시적으로 도입해 수요를 촉진해야 한다.

이 자료 발표를 기점으로 해서 출판계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논의되던 ‘공급률 재조정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할 것 같다. 하지만 도서정가제와 마찬가지로 공급률 조정도 출판 산업에 긍정적 요인만이 아니라 심각한 부작용도 있을 수 있으므로 선행 연구를 충분히 진행하는 등 세심하게 다루어야 할 사항이다. 이 글은 이에 대한 예비적 검토 사항을 아이디어 차원에서 적은 것이다.

이를 둘러싼 용어부터 먼저 분명히 하고 싶다. ‘공급률 재조정’이나 ‘공급률 인상’이 문제가 아니라 ‘공급률 정상화’가 우선이다. 사실, 한 출판사에서 동일한 부수에 대해 무반품 등 다른 조건이 없는데도,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서점 체인에 지역 독립서점보다 낮은 공급률을 제공하라고 요구받는 것은 사실상 지역 독립서점에 대한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 측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출판사에 대해 공공연한 압력을 행사했는지, 이를 통해 “다른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방해”했는지 여부를 출판인회의나 서점연합회가 공정거래위에 제소해서 법리를 따져볼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동일 부수, 동일 조건, 동일 공급률”을 달성하는 것이 선결해야 할 과제이다.

한편, 이번 사태를 촉발한 도서정가제의 취지를 되짚어보고 싶다. 도서정가제란 대자본을 집중한 대형(온라인)서점 등이 가격 차별화를 통해 독자들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사인회, 낭송회, 북클럽 지원, 큐레이션 서비스 제공 등 비가격 차별화를 통한 각종 편익을 개발해 독자들에게 서비스하는 다양한 서점사업 모델(출판 모델)을 활성화하도록 한 것이다. 출판사 역시 다양한 독자 편익을 구상해 서점과 제휴하여 판매하거나 직접 독자에게 서적을 판매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 모델을 개발하는 등 법 취지에 맞추어 움직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는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산업의 전반적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필요한 만큼 조급히 성패를 따질 일은 아니다. 

다만, 지난 여섯 달 동안을 돌이켜보면, 중소 출판사나 중소 서점 측의 준비가 완전히 미흡했다고 보인다. 언론을 통한 ‘책의 발견’이 크게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가격을 통한 ‘책의 발견’마저 억제했다면, 눈에 확 띄는 이벤트라도 하지 않는 한 ‘책의 발견’이 전반적으로 떨어질 것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도서정가제의 실시는 서점 측이나 출판사 측에서 볼 때 당연히 ‘책의 발견을 위한 가혹한 서비스 개발 경쟁’을 뜻한다. 특히 서비스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온오프라인 중소 서점의 경우에는 독자들의 발길을 끌어들일 만큼의 서비스 혁신 없이 예스24나 교보문고에 대항해 생존하기 어렵다. 출판사 역시 마찬가지다. ‘가격을 통한 발견’이 아니라 ‘다른 발견’을 생성하려면 콘텐츠마케팅 등 비서점 공간에서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도서정가제란 ‘가격 경쟁의 약화’를 뜻할 뿐이지, ‘비가격 경쟁’ 쪽에서는 ‘독자 서비스 무한도전 시대’의 개막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도서 판매라는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출판사와 서점은 도서정가제 실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도 높은 독자 서비스를 제공하고, 더 자주 제휴를 수행해야만 간신히 독자를 유지할 수 있다. 상반기 출판 산업의 지표를 보면, 독자 입장에서는 중소 출판사와 서점의 서비스 개발 노력이 크게 미흡한 것으로 보였고, 그것이 추정치이지만 20%가량의 매출 감소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도서 공급률 정상화를 주장할 때에는 “도서정가제 시대는 가혹한 독자 서비스 경쟁의 시대”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도서 공급률 정상화가 “출판사 공급률 인상 → 서점 독자서비스 축소 → 독자 이탈 → 서적판매 감소”의 구조적 악순환을 가져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도 저수익에 시달리는 중소 서점들이 공급률을 인상할 경우 생존할 수 있을지도 한 축으로 고려해야 한다. 물론 대형(온라인)서점의 경우는 처지가 다를 수 있다. 이들에게 제공하는 공급률을 정상화하고 이를 다시 마케팅 형태로 집행함으로써 독자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은 출판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예스24의 수익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공시 자료를 보면 베트남 및 인도네시아 지사의 사업 활성화가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공식이기는 하지만, 그런 이슈가 없는 교보문고 역시 비슷한 실적을 보인 것은 “도서 판매량이 감소하였으나 할인 폭이 줄어들어 권당 판매 단가가 올라갔기 때문에 전체 도서 매출은 오히려 늘었거나 비교적 적은 폭으로 감소하였다. 반면에 출판사로부터의 도서 매입률(공급률)은 변화가 없어 권당 마진이 늘어났기 때문에 영업이익은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공시자료에 따르면, 예스24 역시 “도서 관련 DB 강화 및 배송시간 단축 및 당일배송권역 확대 등 질적인 서비스 향상”을 이야기하나 줄어드는 도서판매량을 보충할 만큼 충분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확보된 순이익을 두산동아와 같은 출판사를 추가로 매입하여 콘텐츠를 확보하려 한다든지, 베트남 등 해외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사용하는 등 도서정가제 실시에 따른 부담을 출판사 측에서만 감당하도록 하는 사업을 전개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대형 온라인서점 측에서 이러한 행태를 벌인다면, 이는 도서정가제 실시 취지에 대한 실질적 배반이다.

“공급률 정상화”란, 도서정가제 실시로 인한 서점의 수익을 독자 서비스의 폭발적 강화로 돌릴 수 있도록 출판사 쪽에서 직접 관리하겠다는 약속과 같은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약속이 없다면, 독자 이탈을 불러오는 구조적 악순환의 고리에 출판계가 손대는 꼴이 될 우려가 있다. 공급률이 자꾸 이야기되는 듯해서 여기에 잠깐 기록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