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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

읽다, 일하다, 사랑하다

첫 번째 산문집이 풍월당에서 드디어 출간됐다.

생활에 대한 것은 아니고, 문학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비평하고는 상관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읽기로서  그저 삶에 대한 것이고, 

굳이 말한다면, 읽기를 통해서 다른 삶을 엿보면서 자유를 연습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이 막막한 세계에서 문학과 함께하는 상상의 실천만이 

어쩌면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를 담아서 오늘도 나는 읽고, 읽고 또 읽는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읽은 것에 대한 작은 회상 같은 것이다. 

아래는 서점 링크다.

교보문고 :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892671 

알라딘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9184450

예스24 :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2998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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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프롤로그를 발췌한 글이다. 

<책을 펴내면서>

살다 보면 누구나 문학을 갈망할 때가 있다. 미지와 마주친 순간이다. 

미지는 무지와 다르다. 무지의 눈으로 쳐다본 삶은 암흑이나 다름없어서 앞날이 컴컴할 뿐이다. 그러나 미지는 두려운 예감의 형태를 띤다. 지금의 인생 흐름을 뒤흔들 일이 분명히 일어날 듯한 기대가 그 안에는 담겨 있다. 

미지 앞에서 삶은 경악의 형태를, 우물쭈물 제자리를 맴돌면서 살길을 찾으려는 방황의 형태를 띤다. 나는 항상 이곳에 문학의 자리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로드』에서 코맥 매카시는 묘사했다. “열렬하게 신을 말하던 사람들이 이 길에는 이제 없다. 그들이 사라지면서 세계도 가져갔다.” 미지란 이렇듯 하나의 신이 죽고, 아직 새로운 신이 태어나지 않은 세계에서 우리를 찾아온다. 

멀쩡했던 삶이 무너지면서 기쁨을 슬픔이 덮치고, 달콤함을 쓰디씀이 지우며, 행복을 불행이 가린다. 이 끔찍한 부조리 앞에 선 인간은 한순간 멍해진다. 이전에 생각했던 대로 생각할 수 없고, 이전에 행했던 대로 행하지 못한다. 논리는 무너지고, 이성은 마비되며, 감각은 정지한다. 

갑자기 세상에 홀로 버려진 듯이 외로워지고, 지금껏 살아온 삶이 낯설어서 견딜 수 없어진다. 이럴 때 매카시는 묻는다. “이제 우린 뭘 하죠, 아빠? 소년이 할 말을 남자가 대신했다. 그래요, 우린 뭐죠? 소년이 우물거렸다.”

그러나 이 ‘얼음 땡’의 순간은 동시에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때이기도 하다. 요동친 삶이 소용돌이치면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어떤 선택의 기회를 빚어낸다. 실존의 위기를 견디면서 주의를 다하고 노력을 기울여 어디로 물꼬를 트느냐에 따라서 이후 삶의 모양이 아주 달라진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이 양난의 상황에서 문학이 우리를 돕는다. 더 이상 이 삶이 지속되지 않고, 지속될 수도 없을 때, 문학은 우리에게 숙명적 수동성에서 벗어나 적극적·능동적으로 삶을 바꾸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러고 보면, 문학은 자유를 가르치는 기계다. 작가는 인간을 곤란한 처지, 극단적 상황에 던져 넣은 후, 선택이 빚어내는 마법적 결과를 보여준다. 

삶이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으로, 익히 아는 무엇에서 아직 모를 수수께끼로 변했을 때 문학을 읽어야 한다. 문학은 실패를 도전으로 만들며 절망을 희망으로 이끄는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모던 클래식’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대부분 현대의 고전들을 다룬다. 주로 내가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읽었던 작품들이다. 이 시기에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변화에 따른 실패의 고통을 전적으로 개인에게 떠넘기는 야만이 횡행하면서 공동체는 해체되고, 빈익빈 부익부는 심화했으며, 약자들의 삶은 파탄 위기로 내몰렸다. 분열과 갈등이 동심원처럼 퍼져나가고, 내몰리고 탈락한 존재들이 곳곳에 넘쳐나 약자들은 세계 붕괴의 공포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우애와 평등의 가치는 잊히고, 돈과 시장으로 압축되는 물신과 탐욕의 논리가 사람들 의식을 물들였다. 생존이 윤리를 대체하고, 취향이 가치를 무찔렀으며, 좋은 삶의 기준이 증발하고, 공동체의 중심축이 무너졌다. 여성, 이주민, 장애인, 퀴어 등 소수자의 삶은 더욱 가혹했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의 비통함에 무관심한 세계는 현대문학 자체를 인간적 저항의 장으로 만들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이 보여주듯, 자본의 균일 지배가 아무 걸림돌 없이 신속하고 무참하게 실현되는 세상에서 문학은 인간의 내적 진실을 보존하고 수호하는 진정성의 공간이 되었다. 다른 현실을 상상하고 실현하는 문학의 역능은 무의미와 공허가 날뛰는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의 나침반이었다.

모던 클래식 작품들은 신자유주의에 내몰린 우리 앞에 새로운 감각 현실을 구축해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좋은 삶을 번창시키려면 주어진 자유를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가를 알려준다. 따라서 오늘날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현실, 즉 신자유주의적 물신주의에 유혹당해 인간을 돌보지 못하는 타락한 정치 서사, 탐욕스러운 경제 서사를 정지시키고, 그 진실성을 교란하고 뒤흔드는 데 참여하는 일이다.

장은수, 읽다, 일하다, 사랑하다(풍월당, 2025)

 

 

읽다, 일하다, 사랑하다 | 장은수 - 교보문고

읽다, 일하다, 사랑하다 | '아무리 가혹한 현실도 문학으로 다져진 인간의 내면을 무너뜨릴 수 없다.' 작품읽기의 길을 열어주고 작품 속에서 길어낼 수 있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 사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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