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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강연

[풍월당 문학강의] 어떻게 이 부조리한 생을 사랑할 것인가 3 ― 사르트르의 『구토』


한 작품마다 특별히 사랑하는 구절이나 장면이 있습니다. 

작품의 전체 맥락이나 주제와는 아무 상관없이,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서 잊히지 않는 장면들입니다. 

『구토』의 경우에는 로캉탱이 오랜만에 온 안니의 편지를 읽은 후에 하는 짧은 회상입니다. 

다음과 같은 구절입니다.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던 동안, 우리의 가장 짧은 순간도, 또 가장 작은 걱정거리도 우리들에게서 떨어져 나가 우리의 뒤에 남는 것을 우리는 용서하지 않았다. 소리, 냄새, 그날의 기분, 서로 말로 표현하지 않는 생각까지도 우리는 모두 가슴속에 안고 살았으며, 모든 것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우리들은 그것들을 현재로서 즐기고 괴로워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추억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늘도 없고, 후퇴도 없고, 피할 곳도 없는, 강렬하고 불타는 듯한 사랑이었다.”


곧이어 로캉탱은 말합니다.

“나의 과거는 하나의 커다란 구멍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사랑이 ‘구멍’이라면, 그 내부는 분명히 충만히 불타고 있을 겁니다. 과거가 현재의 의미를 만들거나 미래를 이룩하지는 못할지라도, 어쩌면 추억이란 그 자체로도 어떤 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 달에 한 번 서울 강남 압구정동에 있는 풍월당 아카데미에서 고전문학을 같이 읽고 있습니다. 

요즈음 같이 읽는 것은 ‘실존의 문학들’입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습니다.

이번 주 목요일에는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으려고 합니다. 


로캉탱은 말합니다.

“자신의 육체만 가지고 있는 아주 고독한 사람은 추억을 간직할 수가 없다.”

하지만 세부까지 이토록 생생하게 기억하는 안니의 몸짓이 추억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일까요? 

아아, 정말로 우리는 이 부조리한 인생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언어의 숲길을 거닐면서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